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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자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남자

중앙일보 2016.12.03 01:00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형경 소설가

김형경
소설가

30대 중반의 그녀는 근거 모를 불안과 위축감 때문에 마음을 돌보기 시작했다. 유아기부터 지속된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자신의 ‘내면아이’가 공포에 얼어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건을 부수고 엄마를 때리는 아버지 이미지가 내면에 고착되어 현실의 남자에게 과도하게 온순하거나 이유 없이 오만했다는 점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마음의 어려움과 그 근원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했다. “아빠가 그 폭력에 대해 사과해 준다면….” 기대 없이, 감정이나 표현해보자는 심산이었다. 그 아버지는 생각에 잠긴 채 며칠을 보낸 후 딸과 가족 모두에게 일일이 사과했다. 이야기를 전하는 후배 여성은 입꼬리가 절로 벌어질 정도로 행복해 보였다.

개인의 정서와 정신 형성에 부모의 양육방식이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마음을 돌보는 이들이 회복 과정에서 만나는 중요한 지점도 그곳이다. 진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개인에 따라 대처 방법이 다르다. “다 지난 일을 이제 와서…”라며 회피하는 유형이 있다. 부모와 대화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입을 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막상 이야기하더라도 내면의 격랑과는 달리 온순한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도 있다. 폭력이 섞인 사랑이라도 여전히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간혹, 부모가 준 폭력만큼 분노를 돌려주면서 왜 그랬는지 묻는 자녀도 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의 반응이 아니라 당사자의 내면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아차리게 되는 더 깊은 마음이다.
 
그럼에도 자녀의 질문에 답하는 부모 태도는 연금술 같다. 대부분의 엄마는 양육 방식에 의문을 표하는 자녀에게 금세 미안함을 드러낸다. 그때는 엄마가 어렸고 정서적 양육 개념도 몰랐다면서 지금이라도 어떻게 도와줬으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엄마의 태도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자녀의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목격한다. 하지만 아빠들의 태도는 좀 다르다. 다 지난 일을 끄집어내면서 유난을 떠느냐, 그 시대에 그만큼 안 맞고 산 여자가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를 때렸다니 기억이 없다 등등. 직접 전해 들은 아버지들의 반응이다. 예전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는 아빠도 사과에는 인색하다. “내가 예전에 때린 것 때문에 마음이 안 좋다고? 그래, 미안하다.” 설렁설렁한 말투로 어깨를 치고 지나간다.

자녀에게 사과한다고 부모가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모가 미안하다고 말해 주지 않으면 자녀는 오래도록 심리적 죽음 상태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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