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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한 시대가 가고 있다

중앙일보 2016.12.03 01:00 종합 24면 지면보기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영문학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영문학

며칠 전 독일 연방대법원은 95세의 나치 조력자에게 징역 4년형을 확정 지었다. 지난 6월 94세의 나치 전범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지 불과 여섯 달 만이다. 지옥까지는 아닐지라도 국가적 전범을 끝까지 추적해 소탕하겠다는 독일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박근혜 게이트로 온 나라가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식민 잔재와 봉건 잔재의 근본적 척결 없이 근대로, 탈근대로 얼렁뚱땅 대충 넘어왔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21세기 한국 사회는 식민성, 봉건성, 근대성, 탈근대성이 마구 뒤섞인 기형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머리와 가슴은 봉건을, 팔다리는 따로따로 근대와 탈근대를 향하고 있다고나 할까. 식민 잔재세력은 척결되기는커녕 해방 후 한국 사회의 실질적 헤게모니를 장악하였고 독재세력으로 전화(轉化)되면서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봉건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최근의 동요(動搖)는 이렇게 가부장적 봉건성에 기대온 한 시대가, 그 악몽의 패러다임이 드디어 가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치의 층위에서 가장 극명하게 이런 파열이 드러나고 있지만 반가운 것은 얼마 전부터 봉건시대의 모든 ‘팔루스(phallus)’, 즉 대문자 아버지의 법칙(Father’s law)을 거부하는 다양한 징후가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층위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가장이라는 이유로, 선생이나 사장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타자들을 억압하고 전유하고 사물화하는 횡포는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당장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봉건제에서 근대 시민사회로의 대이행을 가져온 프랑스대혁명도 자유, 평등, 박애의 윤곽을 그리는 데만도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징후는 우리 사회의 전 영역에서 이미 깊이, 그리고 확실하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가정 단위에서 그 어느 때보다 엄마와 자녀의 목소리가 커진 시대에 살고 있으며, 노동현장에서도 불의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성을 타자화하는 행위에 대해 지금보다 더 분노했던 시절은 없다. 물론 아직도 멀고 멀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징후는 우리 사회가 중대한 변혁의 기로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진행되는 최근의 정치적 사태는, 죽어가는 앙시앵 레짐의 배 위에서 한심하게도 내려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몰락하는 체제의 주변에서 원리나 원칙도 없이 떡고물을 챙기느라 정신없는 정치인들을 보여주고, 다가오는 ‘누보 레짐(nouveau rêgime)’의 한가운데에서 불을 밝히며 앞장서고 있는 위대한 ‘다중(多衆)’을 보여준다. 최근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회는 과거 그 어느 시대의 시위와도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특정 계급의 사람도 아니고, 특정 연령이나 종교, 특정 문화의 집단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자유롭고도 평등한 개인들의 총계, 즉 다중이다. 100만~200만 명이 모인 집회는 동일한 목적을 가졌지만 통일성으로 서로를 억압하지 않고, ‘유쾌한 상대성’을 존중하며, 엄숙주의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목소리를 동원해 새로운 출구를 열고 있다. 거기에는 이미 무너지고 있는 낡은 체제의 권위적 중심이 없다. 이 중심 없는 중심, 하나이되 동시에 다양한, 잘못된 위계에서 해방된 다중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새로운 희망이고 힘이다.

아직도 구체제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개인 혹은 공적 단위의 삶의 어느 단계에서 역사의 큰 망치 세례를 면치 못할 것이다. 자신만은 어느 순간 한 방에 ‘훅’ 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시대의 대변화를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죽어가는 구체제 옆에서 당리당략에만 빠져 있는 여야 정치인들에게 영화 제목을 빌려 고한다. 다중은 당신들이 하는 짓을 다 알고 있다. 낡은 배는 이미 떠나가고 있고, 저기 새 배가 들어오고 있다. 조금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앙시앵 레짐이여, 안녕.

오 민 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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