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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무용] 당신의 바닥은 누군가의 하늘?

중앙일보 2016.12.03 01:00 종합 27면 지면보기
장인주 무용평론가

장인주
무용평론가

쓰레기통 앞에 한 소녀가 추위에 떨고 있다. 작고 여리지만, 당차고 의욕적이다. 작은 공간을 헤집으며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소녀 앞에 나타난 속칭 된장녀. 선베드(sunbed)에 몸을 싣고 한껏 여유를 부린다. 그의 세상에는 고급 잔디 융단이 깔려 있다. 쓰레기통과 선베드, 소녀와 된장녀. ‘있는 자와 없는 자’로 이분된 사회의 한 단면이다. 여기에 일용직 근로자와 목욕가운 차림의 남자가 등장하면서 인간 계층은 더욱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다. 그들은 더 높은 곳을 차지하려고 서로를 짓밟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한다. 머리싸움과 몸싸움이 무서우리만큼 치열하다.

안영준의 ‘당신의 바닥’


안무가 안영준의 ‘당신의 바닥’(11월 26~27일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은 자본주의 계급사회를 꼬집었다. 대사 없이 움직임으로 주제를 풀어 나가는 무용작품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담기란 쉽지 않은 터인데, 안영준은 캐릭터 등장인물 넷의 분명한 캐릭터와 증폭되는 몸의 에너지로 이를 해결했다. 60분 동안 한순간의 숨돌림도 없이 솔로에서 4인무까지 단계별로 가속을 가한다. 소녀 역 진다운의 솔로는 신체의 한계를 극복한 유연함의 극치를, 근로자 역 김관지와 쓰레기통을 사이에 두고 펼친 2인무는 마술에 가까운 곡예를 보여 주었다. 된장녀 김유정이 합세한 3인무는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최고 높은 곳의 주인공 안영준을 포함한 피날레 군무는 진흙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추악한 인간상과 같다.
안무가 안영준의 ‘당신의 바닥’.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속살을 꿰뚫어본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안무가 안영준의 ‘당신의 바닥’.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속살을 꿰뚫어본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안영준의 화법엔 은유가 없다. 서정적이지도 않고, 아름답게 보이려는 어떤 포장도 없다. 추상성과는 거리가 멀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춤을 추지만, 일상에 돌아온 인간 안영준은 늘 바닥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꼈던 때문일까. 그의 춤엔 삶에 대한 강한 의지만 있을 뿐이다. 움직임의 속도가 빠르고, 위험을 불사할 만큼 과격하다. 쉼표 없이 작은 음표로 그려진 악보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동작이 수없는 반복연습을 통해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쓰레기통에서 쏟아져 나온 파쇄지, 세상을 온통 요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정작 당사자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 방관자가 되어 지켜보는 주인공. 요즘 한국 상황과 닮았다. 안영준의 세계엔 은유 대신 풍자가 가득하다. 덕분에 무대는 생동감이 넘친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는 비관적 결말로 끝을 맺지만, 역설적이게도 안영준은 우리에게 희망을 말한다. 우리가 꿈꾸는 평등한 사회는 허황된 꿈에 그칠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신의 바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창작산실’ 무용 신작 중 하나다. 제작비는 물론 극장 대관과 홍보 등을 전폭 지원하며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게 이 사업의 목표다. 무용을 시작으로 내년 3월까지 연극·뮤지컬·전통예술까지 이어질 릴레이 공연을 통해 시대를 대표할 만한 레퍼토리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장 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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