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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인 더 룸 #2

중앙일보 2016.12.03 00:01
더러운 돼지가 다리 사이에 처박혔나 봐
 
한동안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소리를 크게 질렀는지 목이 따끔거렸다. 고함소리에 방문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돼지들의 이상한 노랫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쟁쟁거린다. 간신히 기운을 내 고개를 돌려보니, 창문 앞엔 검은 천사의 날개 같은 달빛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늘 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지만, 그 순간엔 간절했다. 돼지의 노랫소리가 사라지자 이불 위에 적막이 묵직하게 눌렸다. 어둠 때문에 숨이 막혀 이불 위에 그대로 누워있을 수 없었다.
몸을 일으키자 목에선 쇠를 가는 듯한 쉰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보았다. 빙글 돈다. 뱅뱅 도는 팽이 위에 앉은 듯 어지러워 털썩 주저앉았다. 팔과 다리 근육에 힘을 주면 유리 조각에 몸이 찢기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눈앞에는 나를 제치고 결승점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아른거렸다. 다른 아이들을 응원하는 거친 함성이 어느새 돼지들의 노랫소리와 겹친다. 머릿속에선 날카로운 돌덩어리가 굴러다니고 흐르는 식은땀이 머리칼을 적셨다.
 
‘이제 그만 좀 해…’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 머리가 베갯속으로 쭈욱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내쉬었다. 잠시 후 머릿속이 느린 속도로 하얗게 변한다.
 
날이 밝았는지 눈꺼풀 아래로 흐릿하게 빛이 새어 들어왔다. 이불 안이 분무기로 뿌린 듯 땀이 축축했다. 움직이려고 배에 힘을 주니 왈칵, 하고 뭔가가 쏟아진다. 몸이 심하게 흔들린다. 눈을 뜨니 엄마가 차갑게 내려다보며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일어나. 학교 가야지."
 
“아픈 것 같아요... "
 
"...어디가 아픈데.”
 
“몸살... 같은데...”
 
“...나는 환자 싫다. 죽을 만큼 아픈 거 아니면 환자 행세하지 마."
 
"몸에 힘이…엄마…”
 
이마에 닿은 엄마의 손은 차가웠다. 춥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엄살 부리지 말라며 이불을 힘껏 잡아당겼다. 사색이 되어 엄마를 바라보았지만, 열을 잰 후에도 엄마의 표정은 싸늘했다. 이불을 걷어내자 오한으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죄인처럼 다리를 구부려 두 팔로 꼭 끌어안았다.
 
“안방 서랍에 해열제 있어. 갖다 먹어.”
 
이불을 걷어낸 엄마는 미간을 심하게 찡그린 채 한참을 서 있었다. 내가 입고 있는 노란색 츄리닝 바지만 쳐다보고 있었다. 느닷없이 시작된 월경, 피가 뚝뚝 흐르는 돼지 생간 하나를 구두로 밟아 이불에 짓이겨놓은 것 같았다. 엄마는 생리혈이 묻은 꽃무늬 침대 시트를 신경질적으로 벗겨냈다. 그리고 문을 닫기 전 엄마가 내뱉는 혼잣말이 들렸다.
 
“지긋지긋하다, 지긋지긋해.”
 
시트를 들고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다 다시 베개에 고개를 묻었다. ‘지긋지긋해…’엄마는 이 말을 늘 껌처럼 씹었다. 엄마에겐 왜 모든 것이 지긋지긋하기만 했던 걸까.
 
늘 인상을 쓰고 있는, 검게 그은 얼굴과 왜소한 체격의 볼품없는 여자. 어렸을 적엔 친척 집에서 온종일 외양간 청소나 밭일을 했다고 들었다. 열 살 때 우리 집 간병인으로 팔려왔고 그때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살고 있었다.
 
매일 병상에 누워있었다던 여자, 나는 사진으로도 보지 못 했던 여자. 엄마는 모노드라마처럼 그 여자의 말투를 흉내 내기도 했었는데, 그중 처음 만났던 추억을 이야기할 때는 눈에 초점이 없었다.
 
"예쁘게 생겼구나. 몇 살이니?
 
“열 살이요...”
 
"저런, 아직 한참 어리네. 그런데 네 체격이 너무 작아서 한 예닐곱이나 된 줄 알았다. 얼굴이 까만 걸 보니 아주 건강한 아이 같구나. 하하. 애기야 이리 와봐. 이것 맛 좀 볼래?”
 
“이거 이름이 뭐예요? 너무 달아요! 아가씨…”
 
“앞으로는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고 언니라고 불러줄래?”
 
“언니...라고 해봐.”
 
 
“어서, 아가야.”
 
“언... 니....”
 
네모난 종이에서 흘러나온 하얀 설탕을 처음 맛본 엄마는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고 했다. 처음 맛본 설탕을 엄마는 ‘시름을 잊게 하는 맛’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그 여자는 자신이 입었던 저고리와 다홍색의 부드러운 비단 치마도 며칠 뒤 몸이 왜소한 엄마에게 주었고, 그 치마는 지금도 엄마의 장롱 깊숙이 빛바랜 추억으로 보관되어있다.
 
‘언니! 이 옷 참 보들보들해요.’
 
‘그래, 잘 어울리네. 아직 좀 큰 것 같긴 한데 금방 자랄 테니 아껴 입도록 해.’
흉년에 팔려온, 부모의 생사도 모르던 고아가 이때부터 호사를 누리기 시작했다고. 엄마는 그 여자 덕택에 새로운 삶을 누리기 시작했다. 헌 옷만 물려받았던 나는 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나도 그 기분 알아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애달픈 눈으로, 오로지 언니만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다소 몸이 약하긴 해도 환자는 아니었던 언니. 엄마는 이 집에 팔려오면서부터 쭉 간병인이다. 예전에는 그 여자, 지금은 언니의 간병인. 엄마는 내게 그 여자를 큰엄마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아프기만 했다던 그녀를 나는 ‘해파리'라고 몰래 별명을 붙였다. 엄마는 해파리의 헌 물건을 물려받았고, 나는 언니가 쓰던 물건을 물려받았다. 언제나 내 방은 폐품 보관소를 방불케 했다. 언니가 입던 꿰맨 팬티는 내 옷장 한 칸을 가득 채웠지만 그것에 크게 불평을 하지 않았다.
 
학교를 마친 어느 하루는 평소와 다르게 음악 시간에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을 낙엽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좋았다. 마침 시장에 다녀온 엄마의 장바구니에는 당시 유행하던 핑크색 후드 티가 들려있었다. 쇼윈도에 진열된 그 옷을 며칠 전에 한참 쳐다보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괜한 사심이 들었던 나는 엄마와 옷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마치 개가 먹이를 기다리는 것처럼. 엄마가 돌아왔을 때는 인기척이 없던 언니가 방문을 빠끔히 열고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우당탕 거실을 가로질러 장바구니에서 꺼내놓은 옷을 집어 들고 재빨리 방으로 가버렸다. 평소에는 아프다는 핑계로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더니, 도둑고양이처럼 금세 방으로 사라졌다. 그때는 이미 언니와 내 키가 똑같아졌을 때였다. 금세 울상이 되었지만 가족 아무도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음 해에는 내 키가 세 살 많은 언니를 앞질렀다. 언니에게서 받은 물건은 이제 너무 작아져 새로운 것들을 구비해야 했다. 하필 그때 아버지는 허리를 다쳐 육 개월 간 방 안에서 끙끙 앓기만 하셨다. 작년에 언니에게서 물려받았던 겨울옷은 소매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짧았다. 생활비에 쪼들린다고 불평을 하던 엄마에게 말을 했지만 시장에서 돌아오는 엄마의 장바구니에는 내 물건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며칠 뒤 엄마에게 다시 겨울 잠바 이야기를 하자, 아버지의 누런 잠바를 수선해 내 앞에 놓으셨다. 참으려고 해도 울분이 북받쳐 올랐다. 너무 화가 나 잠바를 집어던지고 방문을 걸어 잠갔다. 누가 보더라도 나이 든 노인이 입던 옷이 분명했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고 엄마는 문을 두드리셨지만, 문을 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는 않으셨다. 방 안에서 시위하던 나는 방안을 구석구석 쳐다보며 애착이 갈만한 것을 찾아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살펴보니 책상 위에 미영이와 사이가 벌어지기 전에 받았던 손거울이 보였다. 손거울을 집어 들고 이불 위에 누웠다. 거울 속엔 아빠의 얼굴이 많이 보였다. 엄마가 그리워하고 늘 아프기만 했다던 해파리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이었을까. 언니는 해파리를 많이 닮았을까, 갑자기 그것이 궁금했다. 거울을 두 손에 꼭 쥔 채 잠들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굶었다. 외풍이 세고 빛이 잘 들지 않는 방에서 하루 동안 나가지 않았다. 별수 없이 방문을 열어보았다. 다른 방에서 누가 나오는지 두리번거렸다. 주방으로 살금살금 몰래 들어갔다. 쉰밥이라도 게 눈 감추듯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밥솥을 열었을 때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젓가락으로 파헤친 고등어 반 토막을 냉장고에서 꺼내어 그대로 서서 먹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고 가족들이 깨기 전, 소매를 줄인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가족들이 깨기 전에 그것을 입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그때도 엄마는 아버지 몰래 화려한 옷을 사 장롱 속에 감추었다. 아버지의 허리는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엄마는 장롱에 감춰둔 옷을 꺼내 입고 평소처럼 집안일을 시작했다.
 
그런 엄마를 볼 때면 망할 해파리의 귀신이 붙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해파리의 추억하고만 사는 것처럼 여겨졌다. 집안에 해파리가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해파리를 통해 한 글자씩 한글을 익혔고, 열 살의 어린 엄마는 새로운 눈이 생겼지만 나는 해파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관심이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단지 엄마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부모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고 했다. 아버지는 엄마가 나를 낳기 전, 마을을 수소문해 가장 비싸다는 미역과 소고기를 준비하셨다. 엄마의 배를 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아들이 들어있는 배라고 아빠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팔삭둥이인 언니와 달리 나는 열 달 동안 뱃속에 눈치 없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오랜 진통 끝에 엄마의 질구를 찢고 내가 빠져나왔다. 만신창이의 몸으로 엄마는 한 가지만 물어보셨다.
 
‘아들 맞죠? 틀림없죠?’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씻기지도 않은 나를 하얀 옥양목에 쌌고 말없이 방을 나가셨다.
 
 
고추. 그 고추를 나는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 미영이가 속삭이던 은밀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 고추가 여기에 들어가는 거 알아?”
 
오물오물 미영이의 작은 입에서 음탕하게 새어 나온 고추라는 단어.
 
아버지는 늘 엄격하셨다. 그중 한 가지는 깨끗한 수건이 욕실에 구비되어 있지 않을 때였고 그때마다 엄마를 호되게 꾸중하셨다. 집안일을 소홀히 한다는 반복되는 잔소리였다. 유달리 햇볕에 잘 마른 수건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욕실 앞에서 시중을 들게 하셨다. 엄마는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늘 욕실 문 앞에서 햇볕에 잘 마른 수건을 들고 아버지가 나올 때까지 대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외출로 집을 비우게 되었고 나에게 단단히 타일렀다. 아버지가 돌아오는 시간엔 잘 마른 수건을 개어 욕실 앞에서 대기하라는 당부였다. 얼마 후 아버지는 퇴근하셨고 나는 엄마가 집을 비우셨노라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기분이 나빠진 아버지는 들고 다니던 가방을 마룻바닥에 신경질적으로 던진 채 방으로 들어가셨다. 잠시 후 샤워를 하기 위해 아버지는 욕실로 들어가셨고 나는 엄마가 지시한 데로 수건을 들고 샤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물소리가 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욕실 문이 열렸고, 갑자기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아버지가 나오셨다. 나는 그때 남자의 고추를 처음 보았다. 내 몸에 있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시커멓고 흉측한 고추. 본인의 요구대로 모든 것이 갖춰져야 하는 권위적인 남성이 문을 열고 나와 고추가 없는 작은 여자 앞에 수직적으로 섰다.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아버지는 본인이 원했던 잘 마른 수건을 들고는 별다른 내색 없이 욕실로 들어가셨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돌아서던 나는 다시 한 번 심장이 오그라들 만큼 놀랐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걸까. 고개를 돌리자 방문이 천천히 닫혔다.
 
언니가 방 안에서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작가 소개  
조금 어린 나이의 결혼 그리고 빠른 나이의 이혼, 통신회사, 콜센터, 어학원 운영 중 경영악화로 빈털터리가 됨. 2년간 낙오자라는 패배감으로 자폐적인 시간을 보내던 중 무작정 세계 여행을 시작. 1년 정도 해외 여행 중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 성을 사회적, 문화적으로 조망하는 시와 수필을 SNS에 연재 중이다.
 
<아스팔트에 핀 꽃> 동인 시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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