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양선희의 시시각각] 대통령 비리 토양 됐던 국회의 실력

중앙일보 2016.11.29 18:45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선희  논설위원

양선희
논설위원

‘이런 창조경제를!’. 박근혜 대통령의 ‘제3자 뇌물수수’ 혐의 중 하나가 SK와 롯데그룹의 면세점 추가 인허가를 둘러싼 비리 가능성에 맞춰지는 걸 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세상은 넓고 권력형 비리는 무궁무진하다’는 깨달음.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시작된 면세점 업계의 무질서한 시장 재편을 먹잇감으로 삼았다는 이 혐의는 웬만한 상상력을 넘어서는 ‘창의적’인 것이었다. 사실이라면 정부가 “시장 참여 자격이 없다”며 퇴출시킨 기업을 대통령이 따로 불러 “돌려줄 테니 돈 내놔” 했다는 것 아닌가.

 관세청발 면세점 업계 재편 과정은 처음부터 뭔가 미심쩍었다. 복기하면 이렇다. 면세점이 중국인 관광객 급증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부각되면서 국회는 3년 전 홍종학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한 관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면세점 특허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등의 법안이다. ‘재벌 면세점의 독과점을 줄이고 중소업체들과 공정하게 경쟁하는 환경을 만든다’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지난해 서울에 신규 면세점 4곳을 선정하고 기존 면세점인 롯데월드점과 워커힐면세점(SK)의 허가를 취소하면서 곧장 시장 혼란이 왔다.

 허가 취소된 두 면세점 근로자 2300명의 일자리가 날아갔고, 해외 명품업계는 5년짜리 면세점엔 물건을 줄 수 없다고 버텼고, 시장경쟁은 혼탁해졌으며, 신규 면세점들은 누적적자에 시달리고…. 당초 취지였던 대기업 견제도 없었다. 신규사업자는 신세계, 두산, 한화, 현대산업개발과 신라호텔이 손잡은 HDC신라 등 대기업이었다. 이후 정부의 갈팡질팡도 점입가경이었다. 몇 개월 만에 특허기간을 다시 10년으로 연장하겠다며 개선안을 내놓더니 또 얼마 후 박 대통령이 “일자리 차원에서 면세점 정책이 우려된다”고 하자 곧바로 면세점 6곳을 더 지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알게 된 거지만 대통령이 발언 직전에 두 탈락 기업 오너를 만나 돈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뒷돈 챙긴 대통령이 면세점 정책 파행의 주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태는 ‘재주는 국회가 넘고 관세청이 바람 잡는 가운데 돈은 대통령이 챙긴 사례’ 혹은 ‘대통령이 입법·행정기관이 어질러놓은 시장판에 팽개쳐진 물건 주워다 마수걸이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진짜 문제는 무지하고 무능한 입법·행정기관 덕에 대통령의 부정한 먹잇감이 차곡차곡 쌓였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정한 경쟁. 명분은 좋다. 그러나 명분을 실현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시장구조와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접근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면세점은 세계적으로 대기업형이고 장기간 시장 참여자에게 유리한 업종이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이 들고, 세계 명품업계와 협상하며 바잉파워를 발휘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소기업이 물건만 잘 만들면 돈 많이 드는 판매는 대기업이 맡는 게 상생의 구조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이 이런 구조에 따라 제대로 굴러가도록 관리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속된 말로 ‘길목 지켜 삥 뜯는’ 대기업 면세점 관행 하나만 잘 잡아도 중소기업은 살 만해질 거다. 롯데 신영자 이사장의 면세점 납품 비리에서 일면이 드러났듯이 오너 가족들이 컨설팅 업체를 차려놓고 납품 업체에 컨설팅 명목으로 돈을 받고 좋은 자리에 진열해주는 ‘합법적 삥 뜯기’ 관행처럼 재벌들의 길목 지키기를 통한 깨알 같은 각종 돈벌이 편법만 잘 관리해도 좋겠다는 말이다.

 면세점 사태는 시장환경엔 무지하고 대의명분만 앞세운 국회의 탁상입법과 무능한 행정기관이 합작해 시장을 어떻게 망치는지 보여준 생생한 사례였다. 국회와 정부가 시장 혼란의 와중에 떡고물 챙긴 대통령의 뒤에 숨어 무고한 척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대통령은 이 혼란의 와중에 자신의 거취 문제를 국회로 넘겼다. 이번엔 국회가 이런 무능한 헛발질을 해선 안 된다. 그래도 이번만은 국회가 나라 살릴 방안을 제시하는 실력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양선희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