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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레터] 담화의 승부수

중앙일보 2016.11.29 17:58
박근혜 대통령이 또 다시 대국민 담화를 내놨습니다. 자신의 진퇴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는 게 핵심입니다. 임기 전 퇴진을 밝힌 것처럼 보이지만, 해석의 여지가 큽니다. 국회 결정이라 함은 무엇인지 막연합니다. 과반수 또는 3분의 2 찬성으로 가결시킨 것을 말하는지, 그냥 여야 합의를 가리키는지 불분명합니다. 게다가 현실적으론 여야간에 쉽게 합의를 이룰 상황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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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야당은 기존 탄핵일정을 계속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대국민 담화는 탄핵을 모면해보려는 꼼수라고 비난했습니다. 문제는 야당이 탄핵안 가결 정족수를 확보할 수 있느냐입니다.

오늘 박 대통령의 담화문 한 장에 여당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탄핵 일정의 원점 재검토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만하면 됐다는 동정여론을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캐스팅 보트인 비박계도 여야 합의를 봐가며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주춤거리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12일 2일 탄핵안 발의는 어려워 보입니다. 박 대통령의 담화문은 결과적으로 탄핵 대오에 금을 가게 만들었습니다. 정국의 시계(視界)는 더 좁혀진 셈입니다. 이게 담화문에 담긴 승부수였는지도 모릅니다.

탄핵은 의심할 수 없는 국회의 결정입니다. 이게 통과된다면 박 대통령이 제시한 퇴진 요건이 충족되는 셈입니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탄핵안 통과 이후 헌재 심판이 시작되기 전 퇴진하는 게 옳은 순서입니다. 하지만 담화문엔 그런 구체적인 언급이 없기에 불편한 해석들이 나오는 겁니다.

몇몇 언론사가 담화문 발표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박 대통령의 퇴진을 원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입니다. 이를 위한 헌법 절차인 탄핵에 차질이 빚어지면 촛불의 분노는 청와대는 물론 여야로도 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결과 박 대통령은 계속 청와대에 머물고, 국정은 속절없이 마비상태를 이어갈 듯합니다. 지금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하고 평화롭되 합법적인 국정 정상화입니다. 박 대통령의 담화문이 과연 이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곱씹어볼 여지가 있습니다. 담화문 낭독을 마치고 살짝 보일까말까 하던 박 대통령의 미소 역시 구구한 추측을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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