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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수 “박 대통령, 세월호 선창 깨서라도 구조하라 지시”

중앙일보 2016.11.29 01:48 종합 8면 지면보기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당시 국가안보실장이던 김장수(사진) 주중 대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김 대사는 28일 베이징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질문을 받자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과 6∼7차례 통화했으며 ‘선창(船窓)을 깨서라도 구조하라’는 지시를 받은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당일 첫 보고는 오전 10시 서면으로
서면보고 이유? 청와대에 물어봐라
6~7회 통화…대통령 위치는 몰라
전원 구조 사실 아닌 것으로 확인 돼
오후 2시 정정보고 드리자 질책도”

김 대사는 또 “세월호 사건 발생에 관한 최초 보고는 오전 10시 지나 안보실장인 내가 서면으로 했다”며 “오후 2시 넘은 시각에 (전원 구조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는) 정정보고를 드리자 ‘왜 구했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하느냐’며 질책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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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긴박한 상황에서 최초 보고를 유선이나 대면보고가 아닌 서면보고를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청와대에 물어보라”며 답변을 회피했다가 나중에 “상황을 취합해 서면으로 보고 드리는 것과는 10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세월호 참사 당일 유선보고를 했다는데 대통령이 직접 보고를 받았나.
“10시 넘어 처음 서면보고를 했다. 그 뒤 내가 걸기도 하고 대통령이 걸어오기도 해서 합치면 모두 6∼7차례 통화했다.”
대통령이 유선보고는 어디서 받았나.
“보고를 어디서 받았는지는 (당시에도 몰랐고) 아직도 모르겠다. (최근) 청와대는 관저 집무실이라고 했다.”
선체가 기울어져 있고 그 안에 학생들이 있다는 상황이 정확하게 보고됐나.
“그랬다. 내가 지금 기록을 갖고 있지 않아 정확하게 말 못하지만 상식적으로 일어난 상황을 다 보고했다. 대통령 집무실과는 화면도 공유된다. 점심도 안 먹고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언론에 전원 구조라고 나왔다. 오후 2시 넘어 (사실이 아니라고) 정정보고를 드리니 불확실성에 대한 질책까지 받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오후 2시 몇 분에 보고하고 그 뒤로는 사회안전비서관이 직접 했다. 재난안전 대책은 안행부(안전행정부)와 중대본(중앙재난대책본부)이 있으니 그쪽이 컨트롤타워다. 내가 최초 상황을 먼저 캐치했기에 초기 보고를 한 것이다.”
 
그날 빨리 대통령이 상황실로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상하게 못 느꼈나.
“상황실이 아주 복잡해 대통령이 왔어도 제대로 설명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개인 생각엔 대통령이 중대본으로 바로 가신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대통령은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된 듯이 구명조끼 발언을 했을까.
“순수하게 ‘왜냐고 물은 것이지…’. 통화 중에 ‘선창을 깨서라도 선실을 다 뒤져 구해라’고 지시한 것으로 기억한다.”
긴박한 상황인데 왜 최초 보고를 유선이 아닌 서면으로 했나.
“유선이냐 서면, 대면보고는 상황마다 다르다. (그날 왜 최초 보고가 유선이었는지) 그건 청와대에 물어보라. 내가 설명하기 부적합하다. 청와대 발표 이상으로 답하기 어렵다.”

김 대사는 나중에 대사관 홍보관을 통해 “유선과 상황 보고의 차이는 10분 이내이고 유선보다는 서면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며 “구조 인력과 상황, 학생 숫자, 사고 경위와 위치 등 세부 사항을 포함해 서면보고를 했다”고 밝혔다. 김 대사는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재직하다가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 물러났고, 2015년 3월 주중 대사로 부임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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