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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용서 못 해”…철원서 흑산도까지 ‘분노의 촛불’

중앙일보 2016.11.29 01:27 종합 21면 지면보기
최순실 게이트 규탄 한 달, 현장 기자들이 본 전국 민심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60)씨의 국정 농단 의혹으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29일이면 꼬박 한 달째다. 분노한 시민들은 매주 토요일 서울 광화문과 전국 주요 거점 도시의 거리로 몰려나오고 있다. 초기에는 최순실에 의혹이 집중됐으나 시간이 가면서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하야·퇴진·탄핵·구속 목소리까지 분출하고 있다. 최순실·차은택씨 등의 공소장을 통해 박 대통령의 위법 행위가 속속 드러나면서 민심에 기름을 부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여성 내세워 약자 행세”
TK도 “배신 당했다” 완전히 등돌려
기존 정치인들 구태에 거부감 커
“위기를 국가 대혁신 기회로 삼아야”


민심 최일선에서 박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으로서 신뢰와 권위를 상실했다고 중앙일보 5개 지역 총국 소속 현장 기자들은 전하고 있다. 장세정 내셔널데스크가 묻고 현장 기자들이 답하는 ‘카톡방 문답’ 형식으로 촛불 한 달 현장 민심을 들어봤다.
도시의 아파트 베란다에 ‘박근혜 퇴진’ 현수막이 내걸렸다.
“도시 뿐 아니라 농촌과 섬마을까지 전국 에서 민심이 폭발했다. 19일에는 강원도 철원군을 비롯한 전국의 농촌에서, 26일에는 전남 흑산도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교수와 학생들이 거리로 몰려 나왔는데.
“박 대통령이 재단 이사장을 지낸 영남대에서도 교수들이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20)씨의 이대 입학 비리가 폭로되면서 중고생들까지 자극했다. 수능시험이 끝난 뒤 분노한 고3 학생들까지 거리로 몰려나왔다. 전북 김제에서는 지난 1일 저녁에 중학생 10여 명이 시가 행진을 했다.”
국민 분노가 폭발한 가장 큰 이유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과 함께 국정을 사유화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대통령이 최씨의 꼭두각시이자 ‘영업사원’ 역할을 하면서 최씨 일가의 배를 불려줬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나라 망신을 시켜 국민으로서 자괴감이 든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고 한 발언이 공분을 일으켰는데.
“새누리당 김진태(춘천) 의원의 그 발언이 전해지자 춘천과 서울 등지에서 시민들은 LED촛불로 본때를 보여줬다. 19일보다 수은주가 떨어진 26일에는 ‘분노의 열기’가 오히려 더 상승했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라는 대구·경북은 어떤가.
“지난 대선에서 대구·경북 유권자는 80% 이상이 박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지금은 배신과 분노로 바뀌었다. 박 대통령 생가터 표지판과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 훼손 사건이 있었다. ‘부녀 대통령’의 상징물 훼손이 지역 민심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광주에서는 오랜만에 ‘횃불’이 등장했다.
“80년 광주 5·18민주화운동 당시 진행된 ‘횃불시위’를 지난 19일 재현했다. 옛 전남도청 앞에서 80년에 대학생들이 벌였던 평화시위인 ‘민주성회’도 36년 만에 재현했다.”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상경시위도 했는데.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전봉준 투쟁단’을 결성해 경남 진주와 전남 해남에서 각각 출발해 서울로 ‘진격’했다. 쌀값 폭락과 농민 백남기씨 사망에 이어 국정 농단에 분노한 농민들의 절박한 심정이 표출됐다.”
‘첫 여성 대통령’의 추락을 보는 여성 반응은.
“입소문이 빠른 주부를 비롯해 여성들의 박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더 악화한 듯하다. 여성 대통령의 사생활 보호를 주장한 유영하 변호사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발언이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박 대통령이 필요할 때만 여성이란 점을 내세워 약자 코스프레(흉내내기)를 한다는 비난도 많다. 이런 발언들 때문에 다른 여성에게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고 여성의 권익을 더 떨어뜨린다고 분노하는 여성들이 주변에 아주 많다. 대통령은 여성이기 전에 공인 아닌가.”
‘박근혜 마케팅’을 하던 곳에서 ‘박근혜 흔적 지우기’가 진행중이다.
“박 대통령이 7월말 여름 휴가때 들렀던 울산 남구 신정시장 상인들은 박 대통령 방문 기념 사진을 떼냈다. 박 대통령이 2014년 7월 다녀갔던 충북 청주시 삼겹살 거리 상인들도 벽에 걸어놨던 대통령 사진을 없앴다. 상인들은 ‘손님들이 대통령 얼굴을 보기 싫으니 사진을 떼달라’는 항의가 빗발쳤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이 영세상인들의 생계활동에까지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말이다.”
‘하야 이벤트’가 전국적으로 유행인데.
“대전의 한 음식점은 박 대통령이 하야하는 날부터 3일간 손님에게 소주를 무제한 제공하기로 했다. 인천 남동구의 한 카페에는 ‘사장님의 염원을 담은 하야빵’과 ‘순시리 깜빵’이 등장했는데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매진됐다.”
여당인 새누리당과 야당을 보는 시선은.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공범이라며 해체를 주장한다. 특히 맹목적으로 충성해온 친박에 대한 분노가 강하다. 민심과 엇박자 나는 돌출발언을 쏟아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에 대한 비호감도 커졌다. 국가 위기를 정치공학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거부감과 경계심도 강하다.”
 한 주부는 시위 현장에서 “추운데 국민 고생시키지 말고 대통령은 빨리 퇴진하라”고 외쳤다.
“박 대통령은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해 놓고 실제로는 국민을 고생시켜 ‘국민 불행 대통령’이란 원망을 촛불시위 현장에서 듣고 있다.”
 
 시위 현장에 나온 시민들의 정국해법은.
“정치권이 중심을 잡고 탄핵이든 하야든 뭔가 매듭을 지으라고 촉구한다.”
시민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비관하나.
“걱정을 많이 하면서도 국민의 저력을 모아 위기를 국가 대혁신의 기회로 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광주·대전·대구·춘천=최경호·신진호·김윤호·박진호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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