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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혼란 느낀 유년의 고통, 글쓰기가 축복으로 바꿨죠”

중앙일보 2016.11.29 01:20 종합 22면 지면보기
유럽서 문학상 받은 한국계 작가 『속초에서…』 엘리자 수아 뒤사팽
프랑스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를 둔 프랑스 여성작가가 한국인이 주인공인 장편소설 『속초에서의 겨울』을 출간했다. 최근 번역돼 국내 출간됐다.

프랑스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를 둔 프랑스 여성작가가 한국인이 주인공인 장편소설 『속초에서의 겨울』을 출간했다. 최근 번역돼 국내 출간됐다.

소녀는 수줍음을 잘 탔다. 엄마 때문이었다. 반 친구들은 낯선 외모의 엄마가 중국 사람 아니냐고 묻곤 했다. 아버지의 직업이 스위스에서는 보기 드문 침술사라는 점도 어린 마음에는 짐이었다. 자연스럽게 소녀는 글쓰기에 매달렸다. 이제는 20대 숙녀인 저자의 첫 장편소설에는 그런 유년의 고통과 상처가 비릿하게 배어 있다. 자신처럼 프랑스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20대 중반의 소설 속 여주인공은 폭식을 하거나 자해충동에 사로잡힌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몸에 대한 불만 표출이다.
『속초에서의 겨울』(북레시피·사진)이라는 짧은 장편으로 프랑스·스위스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한국계 여성 작가 엘리자 수아 뒤사팽(24) 얘기다. 프랑스에서 자란 작가와는 정반대로 한국 속초에서 나고 자란 주인공이 아버지의 나라 프랑스를 동경하는 구도의 소설은 프랑스·스위스·벨기에·퀘벡(캐나다) 등 프랑스어 사용권에서 비중 있는 로베르트발저상을 단숨에 수상했다. 2년 마다 프랑스어나 독일어로 쓰인 첫 소설책에 주어지는 상이다. 24일 스카이프·국제전화 인터뷰에서 뒤사팽은 “첫 소설의 성공으로 인생 계획이 바뀌었다”고 했다. 8월 출간 후 세 달 동안 1만5000부 가량이 팔려 주머니가 넉넉해진 데다 프랑스·뉴욕의 작가 입주 프로그램에 잇따라 초청돼 두 번째 소설에 전념할 수 있게 되서다. 미국에서는 이창래 등 성공한 한국계 작가가 더러 있지만 유럽의 한국계 작가는 그동안 극히 드물었다.
원래 계획은 뭐였나.
“연극을 열심히 해볼 생각이었다. 대학(베른예술대 스위스문학연구소)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지만 소설 말고 희곡도 썼고, 배우로 무대에서 공연도 했다. 현재 로잔대 불문학 석사과정이지만 그마저 중단했다. 현재 소설 홍보차 파리에 와 있다.”
반응이 얼마나 뜨겁길래 ….
“책 출간 이후 매주 평균 2건 정도 언론 인터뷰를 했다. 주말마다 문학축제, 서점 행사 등이 있다.”
어떤 점이 먹힌다고 생각하나.
“글쓰기가 새롭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보통 소설보다 더 적은 장면으로 더 많은 걸 표현하는 작품이라며 평론가들이 의아해 한다. 독자들도 좋아한다.”
한국어 번역본도 여백이 많은 작품이라는 느낌이다. 그렇게 쓴 의도가 있나.
“내가 겪은 정체성 혼란에 대한 얘기를 한국에서 나고 자란 혼혈 여성을 통해 하고 싶었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인물의 내면이나 감정표현에 대한 부정확한 얘기보다 카메라 렌즈의 시점처럼 외부 관찰로만 써보자고 결심했다. 독자를 믿기 때문이기도 했다. 독자들은 상상력이 있다. 책이 텅 비어 있을 때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하필 배경이 속초인가.
“아버지의 고향이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역이다. 2010년 속초에 갔을 때 불쑥 노르망디가 생각났다. 노르망디는 2차 대전 격전지였다. 속초는 남북한 군사분계선에서 무척 가깝다. 그런 점에서 두 지역이 닮았다고 느꼈고 소설로 다루게 됐다.”
세 여동생, 부모와 함께 찍은 엘리자 수아 뒤사팽(뒷줄 오른쪽 둘째)의 가족사진. [사진 북레시피]

세 여동생, 부모와 함께 찍은 엘리자 수아 뒤사팽(뒷줄 오른쪽 둘째)의 가족사진. [사진 북레시피]

당신에게 한국은.
“어머니의 고국이지만 나도 한국인임을 느낀다. 혼자 있을 때 프랑스음식보다 한국음식을 더 자주 해먹는다. 어린 시절에는 100% 프랑스인도, 한국인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체성 혼란을 느꼈고 결국 소설을 쓰게 됐다. 이제는 그 혼란이 축복이다. 소설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권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
 
◆미국인이 쓴 한국 배경 소설도 출간
비슷한 시기 미국 작가 팀 피츠의 한국 거제도를 배경으로 한 장편 『소주 클럽』(루페)도 출간됐다. 제목의 ‘소주’는 한국술 소주.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둔 한국인 가족에 관한 얘기다. 작가의 아내가 거제도 출신 한국인이다.

“프랑스인 침술사 아빠와 한국인 엄마
내가 겪은 혼혈여성 얘기 털어놓아
책 출간 후 석달간 1만5000부 팔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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