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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트럼프 스타일 제대로 읽기

중앙일보 2016.11.29 01:00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요즘 너무 힘든 게 두 가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향후 행보 맞히기, 또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 정신세계 읽기다.

후자는 정말 힘든 것 같아 전자에 도전해 본다. 독서를 즐기지 않는 트럼프가 선거전 당시 “내가 좋아하는 책이 두 권 있다”고 말해 솔깃했다. 『협상의 기술』 『정상에서 살아남기』. 좋아하는 책이 자기 자서전이라니 트럼프스럽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철학과 스타일이 정확히 담겨 있다는 뜻일 게다.

두 권의 책 속에 드러난 트럼프 스타일의 핵심은 ‘상대 교란→위장 및 기세 선점→90% 얻어내기’다.

이런 식이다. 애틀랜틱시티 카지노 개발을 하면서 트럼프의 진짜 목표는 동업이었다. 하지만 단독사업에 뜻이 있는 듯 밀어붙였다(전략). 거액의 취득세를 물고 건물 공사도 추진했다. 다만 천천히(전술). 홀리데이호텔그룹이 몸이 달아올라 달려들었다. 유인작전 성공이었다. 트럼프는 이미 공사가 많이 진척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수많은 건설 중장비들을 가져다 놓고 으름장을 놓았다(작전). 결국 호텔은 트럼프가 이미 지급한 토지구입 대금, 공사 대금을 보전해 줬다. 트럼프는 10% 정도의 수고만 하고 카지노 수익의 절반을 얻었다.

지난주 ‘앙숙’인 뉴욕타임스(NYT) 본사 방문 과정은 트럼프 국정 스타일의 예고편이다.

트럼프는 당일 새벽 트위터에 “방문을 취소한다”고 띄웠다. NYT는 패닉에 빠졌다. 그러더니 돌연 ‘1부 비공개, 2부 공개’를 조건으로 가겠다고 했다. ‘취소’는 본심이 아니었던 게다. 트럼프는 NYT를 한마디로 갖고 놀았다. 그러곤 (트럼프에게 유리한) 특종 몇 개를 선물로 줬다. 상대방을 마음껏 혼란시키다 결국 10%(앙숙 본사 방문)를 희생하고 90%(자신의 이미지 향상)를 얻어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트럼프식 협상’에 대응하는 절도와 기술이다. 트럼프를 연구하지 않고 무지(無知), 무모(無謀), 무책(無策)으로 달려들면 백전백패다.

호시우보(虎視牛步).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관찰력, 소처럼 신중한 행보가 필요할 때다. 지금은 먼저 우리의 기본 전략과 전술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설령 협상하게 된다면 어떤 반대급부를 얻어낼지 궁리할 때다. 섣불리 달려들면 트럼프의 수에 말려들 뿐이다. 국익과 국격에도 도움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요즘 워싱턴과 뉴욕으로 거의 매주 물밀듯이 몰려들고 있는 국회의원들, 정부 대표단의 행태는 우려스럽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깜짝 놀라 탐색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가 간다. 하지만 트럼프 변방 인사나 친한파 단골 인사를 만나 “우리 방위비 분담금 많이 내고 있거든요” “정말 한·미 FTA 손볼 건가요”라고 하소연한들 달라질 게 없다. 아니 손해일 수 있다. 트럼프와 진짜 트럼프 핵심 측근들은 멀리서 지켜보며 훗훗 웃고 있을지 모른다. “협상도 하기 전에 몸만 잔뜩 달아올라 약세를 보이며 달려들고 있는 모습이란. 이거 잘하면 90%가 아니라 100%도 얻어낼 수 있겠는걸.”

김 현 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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