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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신현림의 매혹적인 시와 사진 이야기 #2. 나는 누구일까? 다시 생각해 보세요

중앙일보 2016.11.29 00:01
-헤텐 파텔, 엄상빈
 
 
언덕길을 오르다가 담벼락에 아주 작게 써진 글이 눈에 띄었다. 잠시 나는 길에 멈춰 서서 그 문장을 잠잠히 생각하였다.
 
“청소년은 말할 곳이 필요하다.”
 
청소년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가슴 터놓을 곳은 필요한데.. 하면서 나의 청소년기를 더듬어 보았다. 나의 청소년기도 막막했다. 어려울 때 도우라고 가족이 있을 텐데. 청소년기에는 서로 불만을 터뜨리며 다투기에 바빴다. 누군가의 슬픔이나 우울함에 귀를 기울이기엔 다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초겨울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지는 요즘. 힘든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싶다. 나는 얼마 전부터 카카오스토리에서 “사소한 고백”을 배달 신청을 받던 중이었다. 이 카페는 청소년만이 아니라 중년 남녀들과 전 연령층이 다 모여 있다. 누구라도 말할 곳이 필요하기에 이 코너는 사람이 붐빌밖에 없었다. 다들 무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일들이 비상벨처럼 간간이 울리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닉네임으로 자신을 편히 드러낼 수 있어선지 공감력이 아주 컸다. 어느 날 닉네임 삼수벌레님께서 세스코님께 속내를 터놓았다.
 
대학 한번 가보려는 꿈이 있어도 학원비가 없어요. 삼수 벌레로 살면서 시험을 보았으나 딱히 기대할만한 점수를 못 얻었어요. 친구들은 벌써 군대 가거나 화려하게 피어나는데, 나는 집에서 밥만 축내는 벌레로만 살고 있어요. 세스코에서 나를 잡아가면 좋겠군요.
심지어 자신이 쓰레기였다는 슬픈 말도 남겼다. 실패를 자꾸 하다 보면 스스로 벌레가 되는 기분이 들고 벌레,라고 자괴감이 들 수 있다. 여기서 실패를 잠시 생각해보자. 실패와 좌절감은 우리가 살면서 겪는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겪는 실패, 좌절, 고통, 슬픔이 힘든 것은 저마다 혼자서 겪고,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방팔방의 나무와 꽃들도 감춰진 사연이 있을 것이다. 사자는 사자대로, 사람은 사람마다 저마다 감춰진 비밀을 풀어놓을 곳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괴로움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지만,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누구나 작더라도 실패를 하고 좌절과 괴로움을 겪는다. 그래서 혼자만 앓고 있다고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실패나 좌절감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조건이다. 다만 그 실패를 통해 배우고, 실패가 자주 되풀이되지 않게 지혜로워져야 할밖에 없다. 그러면 여기서 이 실패에 대한 인도계 영국 예술가 헤텐 파텔(Hetain Patel)의 뜻 깊은 얘기를 들어보자.

나는 누구일까 다시 생각해 보세요. 우리 자신을 결정하는 게 무엇인가요. 실패를 할 때마다 내 자신에 가까워집니다. 제 관심은 정체성과 언어에 대한 거예요. 외모, 출신지, 성, 인종 계급 등에 따른 일반적인 가정에 도전하는 거죠. 마음을 비우고 마치 물처럼 모양도 없이 사는 거예요. 물을 컵에 따르면 컵 모양이 되고, 주전자에 넣으면 주전자가 되죠. 친구들이여 물이 되세요. 다른 이들을 따라하면서 여전히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소룡이든 아버지이든 누군가를 모방하는 것은 위험이 따라요. 이소룡을 흉내 내며 실패할 때마다 저는 저 자신에게 가까워집니다. 저는 진정성에 목숨을 겁니다.
사진 속에 이소룡을 흉내 내는 분이 젊은 헤텐 파텔이다. 세계 최고라는 영국의 “프리즈”아트페어에서 그의 작품을 만났다. 그의 강연을 온라인에서 본 적이 있는데, 무척 흥미롭고, 깊고 재미있게 진행을 하여 나이가 많은 줄 알았는데, 서른 중후반이었다. 위 내용에서 “실패를 할 때마다 내 자신에 가까워집니다.” 란 말이 몹시 공감이 되었다. 실패할 때마다 나 자신에게 가까워진다는 말. 비로소 나다운 내가 된다는 말. 아주 마음에 들었다. 사자는 사자답기 위해 사과는 사과답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들을 한다. 단물이 살짝 남은 껌을 계속 씹을 때처럼 이 말을 나는 곱씹었다. 나 자신에게 가까워지게 만드는 시련이나 실패가 비 내린 후의 들판처럼 새롭게 보였다. 위선적이고, 위악적인 정치 쪽 인간들에 치를 떨며 촛불항쟁에 참여하다 보니, “저는 진정성에 목숨을 겁니다.”란 얘기에 그만 감동하고 말았다. 한 달 간의 촛불항쟁도 진정성에 목숨을 건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새삼 가슴깊이 새겨본다. 헤텔의 표현에 있어 몸에 글씨를 쓰는 작업들은 다른 작가들도 이미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접근 방식, 조형적인 감각이 어떻게 다른가가 중요하다. 어떻게 구성하고 배치하느냐가 다르면 된다. 그리고 헤텐 파텔의 사유는 새로웠다. 그래서 그 자리에 오래 서성였다. 그때 아트페어 입구 쪽에 미술서적 코너에서 수많은 책을 보면서도 모두 자기답기 위한 눈물 어린 노력들이구나 싶어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한국 사진가 엄상빈의 사진집 <학교 이야기>에서도 청소년기에 자신을 알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들을 아주 감명 깊게 보았다. 작가의 젊은 날의 이력이 수학선생님이셨다. 그러다 보니 사춘기 청소년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하는 감정이 사진마다 깊게 배여 있다. 십 대 후반의 고교생들은 사고와 체벌, 싸움으로 인해 생긴 상처 자국 무수한 ‘담배빵’이나 문신들이 깊이 패여 있었다. 이 사진집의 사진들은 귀중한 기록의 가치만이 아니라 예술성이 깃들어 나는 누구일까? 사람이 무엇일까? 자꾸 들여다보게 되다. 눈을 맞았는지 멍이 든 청소년이 강렬한 눈빛을 내뿜는 사진에 대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월요일 아침은 학생부가 분주해지는 날이다... 얼굴의 멍 자국이나 상처로 지난밤의 일이 들통 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흉기를 사용했거나 패싸움으로 경찰서에도 여러 차례 불려가야 한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오토바이 타는 재미에 중국 음식점 배달을 자청하는가 하면, 아예 가출하여 큰 도시 중국 음식점에 취직을 하였다가 붙잡혀 되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보통 위와 같은 친구들을 문제아,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모험가라고 격려해주고 싶다. 언제 중국음식점 배달을 하며 언제 가출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짱개집 배달과 가출을 권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저지를 상태를 나무라고 싶지 않아서다. 이 또한 인생의 깊은 경험으로 자신을 알아가는 데 반드시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인생살이가 모두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최근에 일본 전문 번역가 한성례 시인이 번역한 시집 중에 중국시인 톈허의 <바람이 불었다>가 참 좋았다. 보석 같은 시들 중에 “고난”아래 대목에 깊이 공감을 하였다.
 
만일 내가 죽으면 친애하는 여러분
아무쪼록 내 몸에서 고난을 꺼내 주십시오.
내 목숨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업신여기는 것도 그것입니다.
이승의 고난이 있으면 전생의 고난도 있습니다.
많은 식량의 원천과 토양이 칼슘
그리고 청결함과 내 본래의 체면도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오랜 세월의 고난이 있는가 하면 짧은 시간의 고난도 있습니다.
만일 그것들을 하나로 엮는다면
그것이 내 일생입니다 만일 한 구절 한 구절 꺼내본다면
모두 내 힘들었던 세월입니다 혹은
자질구레하고 비참한 삶의 모습입니다.

 
고난과 실패를 통해 인생의 깊이와 낮은 곳에 머물 줄 아는 태도를 배우기만 한다면, 어느 정도 마음의 성공을 이룬 것이다. 생의 깊이와 태도는 돈으로도 못산다. 실패를 통해 내가 누구인가를 묻고, 새롭게 각오하며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도 수없이 많은 낙방의 경험이 있다. 실패를 통해 던져도 깨지지 않는 장돌처럼 단단해지는 일이 중요했다. 30초반 사진에 미쳐 방비 빼서 사진 공방을 다니기도 하였다. 밤마다 사진을 찍고. 목숨을 걸듯 시를 썼던 기억이 난다. 목숨 걸듯 치열한 창작의 힘은 실패의 힘이었다. 지나보니 죽을 만치 힘들게 애쓰는 한 가장 좋은 쪽으로 길이 생기더라. 실패는 인생의 깊이와 낮은 곳에 머물게 하는 아주 소중한 인생 수업이었다.
 
작가소개
시인. 사진가. 미대 디자인과 수학, 국문학과와 디자인대학원에서 파인아트를 전공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작가로 다양한 매니아층이 있다.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침대를 타고 달렸어』를 냈다.
영상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창』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 『신현림의 미술에서 읽은 시』
힐링에세이 『만나라, 사랑할 시간이 없다』 『서른, 나에게로 돌아간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 
세계시 모음집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1, 2권 『사랑은 시처럼 온다』 등
동시집으로 초등 교과서에 동시가 실린 『초코파이 자전거』 『옛 그림과 뛰노는 동시 놀이터』 『세계 명화와 뛰노는 동시 놀이터』와
역서로는 『예술가들에게 슬쩍한 크리에이티브 킷 59』 『Love That Dog』 등이 있다.
 
사진가로 사진가로는 낯설고, 기이하고 미스터리한 삶의 관점을 보여준 첫 전시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전 이래 사과 이미지를 통해 '존재의 성찰'을 펼쳐, 세 번째 사진전 <사과밭 사진관>으로 2012년 울산국제사진페스티벌 한국 대표 작가 4명중에 선정된 바 있다. 4번째 사진전 <사과여행>사진집은 일본 교토 게이분샤 서점과 갤러리에 채택되어 선보이고 있다
 
최근 <사과, 날다- 사과여행 #2>전을 열고, 사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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