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이프 트렌드] 암환자 돕는 달리기, 빈민 위한 액세서리 … 기부도 진화한다

중앙일보 2016.11.29 00:01 라이프트렌드 10면 지면보기
3000여 명이 함께 달리며 나눔에 참여하는 미국 뉴욕 ‘테리 폭스 런’ 대회(사진 왼쪽). 브라질의 ‘절반의 행복’ 캠페인은 정상 가격에 식품의 반쪽만 판다. 나머지는 어려운 이웃에 기부한다. [사진 각 단체]

3000여 명이 함께 달리며 나눔에 참여하는 미국 뉴욕 ‘테리 폭스 런’ 대회 [사진 각 단체]

통계청에 따르면 국민의 기부 참여율은 2011년 36%에서 2015년 29.8%로 낮아졌다. 일대일 결연을 맺고 후원하던 개인·기업·단체의 기부 중단 사례도 늘었다. 경기 불황으로 매달 일정 금액을 내는 결연 후원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기부=특별한 일’이란
인식이 강하다. 일상 속 기부문화가 뿌리내린 해외 사례를 통해 알아본다.

해외 사례로 본 일상 속 나눔


밥값에 결식 아동 후원금 포함
껌·젤리 사면 물부족 국가 지원
결혼 축의금 비영리단체 기부


지난달 15일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선 ‘테리 폭스 런’ 5㎞ 달리기 행사가 열렸다. 화창한 날씨에 공원에 모인 가족·친구 등 3000여 명은 다 같이 달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행사 슬로건인 테리 폭스는 질병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도 항암연구 기금을 모으기 위해 마라톤으로 캐나다 횡단을 시도한 인물이다. 1980년 143일간 쉬지 않고 5000여㎞를 달렸지만 폐암이 심해지면서 중도에 포기했다. 그 후 사람들이 그의 뜻을 기리며 매년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캐나다에서 시작했지만 현재 미국과 홍콩·중국·베트남·일본 등지에서도 열린다. 달리기 행사를 위해 지불한 참가 비용은 모두 기부된다. 올해 열린 뉴욕 행사는 암병원인 메모리얼-슬로언케더링센터에 기부될 예정이다.

 
영국 ‘빨간 코의 날’ 축제로 1469억원 모금
해외에는 이처럼 나눔을 축제처럼 즐기는 행사가 많다. 영국에선 3월 둘째 주가 되면 ‘빨간 코의 날’ 축제가 열린다. 격년으로 진행되는 행사로 영국 전역의 국민이 참여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1파운드(약 1500원)짜리 ‘빨간 코’ 액세서리를 구매하고 이를 코에 붙인 뒤 사진을 찍거나 각지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가하면 된다. 모금액의 70%는 아프리카와 기타 지역 빈민을 위해 쓰인다. 2015년까지 25년간 약 10억 파운드(약 1469억원)의 기금이 모였다. 다음 행사는 내년 3월 열린다.

일상 속에서 나눔을 강조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눈에 띈다. 서양에선 식사를 마친 뒤 포크와 나이프를 나란히 놓는다. ‘다 먹었다’는 뜻이다. 폴란드 적십자사는 이를 나눔 아이디어로 발전시켰다. 3년 전 폴란드 16개 도시에서 펼쳤던 ‘훌륭한 매너’ 캠페인은 식사 후 포크와 나이프를 엑스(X) 모양으로 겹쳐 놓을 경우 계산서에 5즈워티(약 1400원)를 추가했다. 내 식사 값을 지불하면서 결식 아동의 한 끼 금액도 함께 낸다는 깊은 뜻을 담았다. 이 캠페인은 간단한 방법으로 65% 이상 모금액을 늘렸다.
브라질의 ‘절반의 행복’ 캠페인은 정상 가격에 식품의 반쪽만 판다. 나머지는 어려운 이웃에 기부한다. [사진 각 단체]

브라질의 ‘절반의 행복’ 캠페인은 정상 가격에 식품의 반쪽만 판다. 나머지는 어려운 이웃에 기부한다. [사진 각 단체]

수퍼마켓에서 식품을 구매하면서 나눔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브라질의 한 비영리단체는 몇 해 전 동네 수퍼마켓과 제휴해 ‘절반의 행복’이란 캠페인을 벌였다. 양을 절반으로 줄인 제품을 원래 가격에 판매하며 포장용기 중 비어 있는 부분에는 ‘나머지는 저소득층을 위해 기부한다’는 메모를 표시했다. 제품 하나를 사면 반은 어려운 이웃을 도운 셈이다.

처음부터 기부를 위해 만든 제품도 있다. 8년 전 설립된 미국의 사회적기업 ‘프로젝트 7’은 귀여운 포장의 껌·젤리 제품을 사면 환경·물 부족·의료·학교폭력 등 일곱 가지 사회공헌 분야에 매출 일부를 기부하고 있다. 간단한 주전부리를 사면서 나눔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진정한 ‘일상 속 나눔 실천’ 방법이다.

이색적인 나눔 사례도 있다. 미국의 ‘맹세합니다(I Do)’ 재단은 나눔 결혼식 캠페인을 벌인다.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가 이 단체를 통해 비영리단체를 지정하면 지인들로부터 결혼선물 대신 기부금을 받아 전달해 준다. 결혼 준비로 바쁜 신혼부부가 쉽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캠페인은 2002년 창립한 이래 지난해까지 총 24만2000여 커플이 동참했다. 지금까지 5500여 개 단체에 전달된 기부액은 약 830만 달러(약 98억원)에 이른다.

 
포크·나이프 표시해 결식아동 돕기
2014년 타임지가 ‘올해의 비디오 게임’으로 선정한 폴란드의 ‘This War of Mine’ 게임은 나눔과 평화에 대한 게임이다. 대부분의 전쟁 게임처럼 군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전쟁터에서 총을 쏘는 대신 민간인이 살아남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쟁 희생자의 참혹한 현실을 게임에 담았다. 제품을 구매하면서 특별 패키지를 구매하면 실제 전쟁 난민을 도울 수도 있다. 0.99달러, 9.99달러, 19.99달러 등 원하는 기부금에 맞춰 패키지 게임 상품을 구매하면 된다.

최근 국내에도 이런 나눔·기부 사례가 등장했다.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입하면 매출의 일부를 기부하는 전통 방식부터 걸어간 거리만큼 기업이 대신 기부금을 내주는 새로운 형태의 기부 프로그램까지 나왔다. 프리마켓 같은 축제·이벤트를 통해 즐거움과 나눔을 함께 체험하는 행사도 늘었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나눔 문화를 확산시키려면 우리도 외국처럼 결과를 바로 볼 수 있고 일상에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재미있는 나눔 아이디어를 발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비영리단체 관계자는 “기부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내가 낸 기부금이 어디로 가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평범한 이들이 일상에서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알리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윤혜연 기자 yoon.hyeyeo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