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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 대통령의 마지막 애국은 ‘시한부 하야’다

중앙일보 2016.11.28 21:12 종합 30면 지면보기
탄핵의 시계가 흘러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 연합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처리 D-데이를 이번주 금요일인 12월 2일에 잡기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12월 2일과 9일 중 택일하려던 입장에서 2일 쪽으로 당겨지는 것은 그만큼 국민적 요구가 압도적이고 새누리당에서도 탄핵안 찬성 입장을 표시하는 의원들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차일피일 시일을 끌다 돌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탄핵에 속도를 내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판단인 듯하다.

며칠 있으면 직무정지에 빠질 대통령
대통령직을 사법 방패로 삼으면 안 돼
닉슨 선례 따라 탄핵 전 하야 선언하길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 최후의 보루 격인 친박 핵심 중진의원들도 어제 비공개 회동에서 박 대통령에게 ‘명예로운 퇴진’을 직접 제안하기로 했다. 이 모임에는 서청원 의원을 비롯해 정갑윤·최경환·유기준·홍문종·윤상현·조원진 의원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이대로 가면 국회에서 탄핵당할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려고 고집하기보다는 국가와 본인을 위해 명예로운 퇴진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건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여전히 국회 탄핵안이 부결돼 국정 일선에 다시 복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는 듯하다. 이제 헛된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또 설사 탄핵안이 의결돼 직무정지 상태에 들어가더라도 자신이 임명한 황교안 국무총리를 통해 실질적으로 국정을 장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광장의 촛불 민심이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범죄 공모자인 박 대통령이 자신의 개인적 안위와 법적 방어를 위해 대통령직에 끝까지 남아 있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셈인데 그럴수록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유권자를 부끄럽게 할 뿐이다. 취임 때 헌법을 수호하고 국가를 보위하겠다고 선서한 박 대통령의 애국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가 할 일이 따로 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이홍구 전 총리 등 나라의 원로들이 권유한 대로 시한부 하야를 선언하는 것이다. 원로들은 ①박 대통령이 탄핵안 의결 전에 하야 선언을 먼저 하고 ②국회는 대통령 하야 뒤 직무를 대행할 책임총리를 뽑고 ③각 정당은 조기 대선을 치를 준비에 돌입하며 ④내년 4월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정치일정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이 이런 선택을 할 경우 국회는 탄핵을 중단해 줘야 한다.

미국에서도 1974년 의회의 탄핵안 의결을 앞두고 닉슨 대통령이 하야를 단행함으로써 나라의 큰 혼란을 막고 질서 있는 수습이 이뤄진 사례가 있다. 원로들의 정치일정을 따를 경우 박 대통령은 탄핵 대통령이라는 낙인을 면하게 되고 취약한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를 예방할 수 있으며 각 정당은 차기 대선을 적절한 시간 속에서 준비할 수 있게 된다. 박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면 국회의 탄핵안 처리는 불가피하다. 그럴 경우 나라가 헌정중단은 아니지만 장기간 정치적 무중력 상태에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박 대통령이 잠시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해 대통령직을 방패로 삼는 구차한 꼴은 봐주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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