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룸 레터] 역사의 보복

중앙일보 2016.11.28 17:48

최순실 국정농단에 따른 국가 혼란이 이번 주 최대 분수령을 맞게 됩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와 표결, 특검 임명과 국정조사 개시, 대통령 3차 입장 표명 등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고립무원에 사면초가 신세인 박근혜 대통령에겐 ‘운명의 주’인 셈입니다. 하지만 크게 보면 대한민국을 바꾸는 ‘역사적인 주’이기도 합니다. 21세기 첨단 시대와는 걸맞지 않는 낡은 국가 틀과 사회 틀을 새롭게 뜯어고치는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박 대통령이 “역사를 잊으면 역사의 보복을 당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대선 후보 당시 한 방송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국정마비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박 대통령에게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되묻고 싶을 듯합니다. 임진왜란이라는 국가 위기상황을 내다보지 못한 선조, 백성을 일제의 개·돼지로 살게 한 구한말 위정자들이 요즘의 박 대통령과 오버랩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만큼 지금의 국가 위기 상황을 심각한 지경으로 보는 개탄과 우려의 표현일 테지요.

결국 박 대통령 본인이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역사의 보복을 두려워한다면 말이지요. 현재의 국가 혼란을 수습하려면 갑작스러운 하야나 불확실성이 도사린 탄핵이 능사는 아닙니다. 전직 국회의장 등 국가 원로들이 제안한 내년 4월 하야와 그에 따른 국정 수습 일정 제시, 즉 질서있는 퇴진을 결단하는 게 나은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자신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고 평가될지 진지하게 고민하길 바랄 뿐입니다.
 
관련 기사
역사를 배우는 건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윈스턴 처칠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 까닭입니다. 그런 역사교육의 출발점은 교과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교과서부터가 문제입니다. 교육부가 국정 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공개하자 온나라가 시끄럽습니다. 현행 검정 교과서들의 좌편향을 문제삼아 ‘균형잡힌’ 국정 교과서를 내놨다지만 야당은 ‘박정희 치적을 강조하는 박근혜 교과서’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라며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국정화에 대한 교육계 반발도 만만찮아 국정 교과서 적용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역사교육은 교과서 못지않게 교사도 중요하고, 현장·토론수업 등 교육방식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교과서 문제에 발이 묶여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담보하는 ‘살아있는 역사교육’이 마냥 늦춰져서는 곤란합니다. 역사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정치권과 교육계의 지혜가 아쉽기만 합니다.
 
기사 이미지

숨가쁜 하루를 정리하는 메시지, [뉴스룸 레터]를 뉴스레터로 받아보세요 ▶신청하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