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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 강유정의 까칠한 시선] 공공연한 비밀에 대하여

중앙일보 2016.11.28 16:47
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미국 소설가 존 바스(86)는 일찍이 소설의 죽음을 선포하며 “앞으로는 테세우스적 글쓰기와 메넬라오스적 글쓰기만이 가능할 것”이라 말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미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실마리를 놓치지 않는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는 그보다 한 수 위다. 테세우스는 ‘바다의 노인’ 프로테우스에게 붙잡히는데, 프로테우스는 계속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테세우스는 그의 변신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집으로 가는 길을 물어 마침내 안내를 얻게 된다. 앞서 말했듯, 존 바스가 바라본 세상은 이런 것이다. 미궁이거나 실체와 진실을 알기 어려운 것. 그러니 글 쓰는 사람은 어떻게든 미궁의 출구를 찾거나, 요리조리 얼굴을 바꾸는 거짓들 사이에서 진짜 세상을 찾아내야 한다. ‘문학을 하기가 정말 어려워졌다’는 뜻인데, 이 말은 요즘 대한민국 상황에 잘 들어맞는 듯하다.

사실 나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미궁 혹은 미로라 여기는 편이었다. 어떤 상황이든 ‘아무리 복잡해도 입구가 있고 출구가 있다’고 믿어 왔다. 그러니 헤매더라도 결국 끝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우리 현실에는 ‘진실’이라고 부를 만한 실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 거짓이었고, 누군가 꾸민 일이었으며, 어쩌다 들통 나면 모르쇠로 일관하는 철면피투성이다. 이런 세상에서 “그래도 희망은 있다” “혁명을 비롯한 변화가 가능하다”고 부르짖으며 영화의 신념에 대해 말하는 것이, 때때로 무척 무력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영화야말로 시종일관 얼굴을 바꾸는 ‘프로테우스’와 같은 상황들에 줄곧 맞서 왔다.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본모습을 끈질기게 스케치하려 애썼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여겼던 ‘내부자들’(2015, 우민호 감독) 속 은밀한 요정이나, 거짓된 희망처럼 느껴졌던 ‘베테랑’(2015, 류승완 감독)의 통쾌한 결말 같은 장면들이 문득 떠오른다. 이쯤 되니 이 거짓된 세상에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소리치던 서도철(황정민) 형사의 고집이 더욱 절실해진다.

지금 청와대를 둘러싼 많은 것이 비밀 아니면 거짓말이다. 일부가 세상에 밝혀지기 전까지는 전부 비밀이었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한 논란도 아직은 비밀이다. 최순실·정윤회 이야기도 불과 얼마 전까지는 비밀이었다. 생각해 보니 허탈하다. 물론 영화계에도 공공연한 비밀이 있었다. 현 정부가 들어선 후 CJ 그룹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고생 중이라는 것 말이다. 그런데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말도 모순 아닐까. 어떻게 비밀이 공공연할 수 있을까. 모두 알면서도 그러려니 참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모르쇠로 잡아뗀 것일까. 이는 비단 영화계만의 일이 아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기 전부터 여기저기에 공공연한 비밀은 떠돌았다. 승마 선수인 정유라와 관련된 체육계에도 공공연한 비밀이 있었고, 그가 부정 입학한 이화여자대학교 근처에도 이런 사실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을 테니까. 차은택이나 김종(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에 대한 일도 죄다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아마도 ‘내부자들’ ‘치외법권’(2015, 신동엽 감독)에 나왔던 검찰과 재벌, 사이비 종교 지도자 등은 이 공공연한 비밀의 반영이었나 보다.

그런데 공공연한 비밀은 곧잘 루머나 지라시 같은 거짓 정보와 혼동되기 쉽다. 원래 비밀이 너무 공공연해지면 오히려 사람들은 그 비밀을 믿으려 하지 않는 법이다. 현 정권이 청와대와 연관된 소문에 응대하며 자주 사용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지라시 아니었던가. 비밀이 새면 소문으로 돌고, 소문이 돌면 지라시로 규정되는 이상한 알고리즘. 이제는 그 알고리즘을 다시 역순으로 짚어 볼 때가 됐다. 2014년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에 닥친 고난의 이유가 ‘다이빙벨’(2014, 이상호·안해룡 감독) 상영 때문이라는 공공연한 비밀, ‘연평해전’(2015, 김학순 감독) ‘인천상륙작전’(7월 27일 개봉, 이재한 감독) 등을 저평가한 영화평론가들에게 한 언론사가 퍼부은 공격 등이 다시금 돌아볼 만한 예다.

경험론적으로 바라보면, 비밀과 거짓말은 한 단어다. 실체가 드러나면 비밀은 거짓말이라는 위장막과 보호막을 뒤집어쓴다. 그렇다면 영화는 반걸음 앞서 그 현실을 예언해야 한다. 비겁한 프로테우스가 늘어놓은 거짓말을 먼저 짐작하는 자의 심정으로 말이다.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로 그것에 미래가 있다. 이 수많은 비밀이 모두 거짓말로 밝혀지는 순간, 어떤 얼굴로 변할지 우리는 먼저 예상해야 한다.


글=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허구 없는 삶은 가난하다고 믿는 서사 신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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