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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정권의 비상식에 ‘비폭력의 상식’으로 맞서는 시민들

중앙일보 2016.11.28 01:38 종합 8면 지면보기
5주째 평화시위 왜

“뒤로 돌아! 뒤로 돌아!” 26일 오후 5시30분이 되자 서울 청운동 주민센터 방면으로 행진하던 시민 대열 곳곳에서 구호가 나왔다. 집회 참가자가 하나둘 돌아섰다. 5시30분 이후부터 청와대 인근 행진을 제한한 법원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일부 시민은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지만 밤이 깊어지자 자진 해산했다. 앞에 있는 의경들을 안아주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주최 측 추산 150만 명의 시민이 26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 모여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를 열었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날까지 광화문 광장에는 400만 명(주최 측 추산)이 넘는 시민들이 오갔다. 집회는 내내 평화로웠고, 시민들은 질서정연했다. 시위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문가 “정부 무능이 시민의식 깨워”
진영 초월해 ‘시민이 주권자’ 확인
시위 안해본 사람들까지 능동 참여


전문가들은 이를 ‘비상식적인 정부에 맞선 상식적인 시민들의 항의’라고 진단한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이번 집회는 진영을 초월해 시민들이 서로가 진정한 ‘주권자’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어리석고 비상식적인 정권에 시민들이 지극히 상식적으로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무능함이 사람들의 시민의식을 북돋아준 셈이다.

피아(彼我)가 명확하다는 점도 비폭력의 배경이다. 시민들은 이번 집회에 투입된 경찰을 자신들을 막아서는 상대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피해자라고 여겼다. 26일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강원도 인제에서 서울까지 찾아온 고등학생 이해남(18)군은 “국민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경찰에게 박수를 쳐줘야 한다. 박근혜라는 사람 하나로 왜 우리 모두가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고 말했다. 경찰은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경찰이 컨테이너 구조물로 쌓은 ‘명박산성’이나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집회 때 고 백남기씨가 맞고 쓰러졌던 물대포 같은 시민들을 자극할 만한 장치나 장비를 사용하지 않았다. 경찰 버스로 만든 벽 정도만 등장했다. 시민들은 이 버스들에 꽃 스티커를 붙였다.

달라진 집회 문화는 시위에 참여해 본 적이 없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움직였다. 26일 광화문광장은 집회 시작 전부터 시민들이 선보이는 다양한 풍자 퍼포먼스로 흥이 가득했고 집회가 끝난 뒤에도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불렀다. 서울 하늘에 나부끼던 깃발 중에는 전통 시민단체들의 깃발뿐 아니라 ‘민주묘(猫)총’ ‘전견(犬)련’ 등 생소한 이름들의 깃발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온라인 반려견 동호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결성된 모임이다. 이처럼 시민들은 능동적으로 참여했다. 회사원 김미란(36)씨는 “이번 집회를 보며 스스로 갖고 있던 ‘시위=폭력’이라는 편견을 내려놓게 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온건한 집회로 대통령이 물러나도록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하지만 평화 집회의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독재정권에 맞서고 민주화를 외쳤던 과거 시위 때는 폭력이 정권의 압력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많은 시민의 참여를 위해서도 ‘비폭력 불복종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26일 광화문 일대 통화량 평소 20배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26일 오후 8시를 기준으로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발생한 KT의 음성 통화 트래픽(통신량)과 인터넷을 활용한 데이터 트래픽은 각각 평소 트래픽의 20배에 달했다. 이는 140만 명 이상의 인파가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추정하는 측의 근거로 활용된다. 하지만 한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트래픽은 중복으로 집계되는 경우가 많아 이 통계로 정확한 참석 인원을 계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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