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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섬뜩한 우연과 예언

중앙일보 2016.11.28 01:00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호정 문화스포츠부 기자

김호정
문화스포츠부 기자

“권력 추구는 오페라가 400년 이상 탐구해 온 인간 동기의 핵심이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내년 여름 열릴 축제의 오페라들을 소개한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이 서울에서 먼저 증명됐다. 셰익스피어 원작 오페라 ‘맥베드’가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을 내렸고 청중은 오래된 예언이 맞았을 때의 섬뜩함을 느꼈다. 400년 전 셰익스피어가 한국 상황을 미리 들여다본 듯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희한한 우연에도 전율했다. 공연은 1년 전 계획됐고 오페라 ‘맥베드’는 한국 공연 기록이 두 번뿐인 드문 작품인데 하필 지금 공연됐다.

맥베드는 왕이 되기 위해 살인을 시작했고, 악은 일단 시작된 이상 또 다른 악을 필요로 했다. 맥베드와 그의 부인이 피에 젖은 손을 씻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계속되는 살인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탁월함은 이들의 나약함을 그리는 데 있다.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살해당한 망령들의 출몰에 정신쇠약 지경에 이르면서 맥베드 부부는 언제 멈춰야 할지를 모른다.
왕이 된 맥베드는 정신이 황폐해졌을 때 다름 아닌 마녀들을 찾는다. 한 나라의 왕은 마녀들의 주술적 예언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한 채 악을 멈추지 못한다. 이번 공연의 연출자 고선웅은 맥베드 부인이 늘 약에 취해 있는 것으로 그렸다. 이 시대 권력과 악에 대한 절묘한 은유다.

이제 맥베드가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자비, 존경, 사랑은 이제 사라진다. 사람들은 나에게 한 송이 꽃도 뿌려주지 않을 것이고 오직 저주만이 남을 것이다.” 음악은 특별히 부드럽고 나약하다. 인간이 미약하지 않았다면 권력에 중독되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은 이렇게 인간의 보편성을 성찰하면서 고전으로 남았다. 거대하고 음울한 원작에 베르디가 희한하게도 밝은 멜로디를 많이 붙인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죄와 악, 권력 추구와 회한이 특별한 악인들의 것만이 아니라는 뜻인 듯하다.

한 권력자의 인간적 성찰에 마지막 기대를 걸 수 있을까. 지금껏 욕망을 향해 달려왔어도 언젠가는 회한을 느끼는 인간의 보편성을 믿는 건 가능할까. 오페라는 맥베드의 몰락과 민중의 합창으로 끝난다. 지휘자 구자범은 오페라를 끝까지 끌고 가는 합창을 “권력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 민중이란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셰익스피어와 베르디의 예언이 진짜로 맞았다면 결론까지도 정확하기를 바란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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