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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지금 대미 공공외교 예산 깎을 때인가

중앙일보 2016.11.28 01:00 종합 29면 지면보기
유지혜 정치부 기자

유지혜
정치부 기자

미국 대선을 전후로 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정상외교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지난 9월 방미 때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만 접촉한 것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승리를 거둔 지 9일 만에 그를 만난 것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외교적 결례 여부를 떠나 곧바로 방향을 바꿔 트럼프 당선인과의 회동을 성사시킨 저력은 대단하다”(정부 고위 관계자)는 반응이 나올 만했다. 이런 일본의 저력이 장기간의 공공외교를 통해 미국 요소요소에 심어놓은 ‘국화파’(지일파)에서 나온다는 건 외교가에선 비밀도 아니다. 공공외교는 관료를 상대로 한 전통적 외교와 달리 학계·대중 등을 상대로 자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외교다. 일본의 2015년 공공외교 예산은 520억 엔(당시 약 4700억원)으로 한국(117억원)의 40배다.

보수 주류세력과 거리 두기를 통해 당선된 트럼프 행정부에선 공공외교가 더 중요해질 게 분명하다. 새로 트럼프 행정부로 영입될 ‘뉴 페이스’들에게 북핵, 방위비 분담 등 한반도 현안을 제대로 설명하고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신행정부의 세부 정책 확정에 6개월 정도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내년 상반기가 ‘골든타임’이 될 전망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하지만 현재 국회에서 심사 중인 공공외교 예산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분위기다. 정부가 제출한 2017년도 예산안 중 외교부 대미 공공외교 예산인 ‘(한·미) 동맹 기반 강화’ 항목은 2016년 30억여원에서 28억여원으로 삭감됐다. 공공외교를 담당하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정책연구 및 민간단체지원’ 항목은 55억여원에서 39억여원으로 줄었다. 이는 미 싱크탱크들의 한국 관련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미 대선 전 예산을 편성하는 바람에 기획재정부의 ‘10% 일괄감축’ 지침에 따라 기계적 삭감을 한 결과다. 이후 국회 외교통일위에서 일부 위원이 공공외교 예산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KF의 정책연구 예산을 10억원 증액하는 데 그쳤다. 오직 관심은 ‘최순실 예산’으로 불리는 개발도상국 음식지원 사업(케이밀)액 삭감이었다. 외통위 소속 새누리당 정양석 의원은 “이번 미 대선처럼 긴급한 현안이 생겼을 때 유연성을 발휘할 수 없는 경직된 (예산 배정) 시스템”이라고 답답해했다. 김태환 국립외교원 교수는 “공공외교는 꾸준히 투자해야 성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직 예산이 확정된 건 아니다. 조만간 국회 예결위에서 공공외교 항목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인내심은 투자의 기본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고 공공외교를 홀대해선 안 된다. 아베의 반전 퍼포먼스에 감탄만 하기엔 우리의 외교 환경이 그리 녹록지 않다.


유 지 혜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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