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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벤처 지원과 모소 대나무

중앙일보 2016.11.28 01:00 경제 8면 지면보기
정 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쏠리드 대표이사

정 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쏠리드 대표이사

중국 극동지역에서만 자란다는 ‘모소 대나무’ 이야기는 잘 알려진 이야기 중의 하나다. 일명 ‘모죽’이라고 하는 이 대나무는 씨앗을 뿌리고 정성껏 물을 주며 키워도 4년이 지나도록 잘 자라지 않고 대부분 싹도 틔우지 않는다. 그래서 이 대나무를 키우는 농부들조차도 가끔은 혹시 죽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캐내고 다른 것을 심고 싶은 유혹을 몇 번이나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물을 줘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 그동안 꼼짝도 하지 않던 모죽들이 갑자기 싹을 돋우며 엄청난 속도로 자란다고 한다. 하루에 30㎝ 이상 자라 6주 만에 키가 15m에 이르고 대나무 밭이 갑자기 커다란 대나무 숲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모죽이 너무 빨리 자라서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돼 사람들이 그 뿌리를 파 보았더니, 아무리 파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리가 깊고 넓게 퍼져 있었다고 한다. 모죽은 겉에서 볼 때 별로 변화가 없던 긴 세월 동안 성장이 멈춰 있었던 것이 아니고, 땅 속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충분히 뿌리를 내리면서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때가 되었을 때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벤처의 씨앗을 심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지 20년을 넘어섰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우리는 벤처에 물을 주는 일을 중단해 10여 년간 벤처생태계의 발전이 후퇴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기존 주력산업들의 위기가 일시에 불거지며 각종 경제지표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여기에 청년실업율과 취업준비생의 수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코 앞에 다가온 4차 산업혁명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만들려면 지금까지와 같은 정부주도형 추격형 경제모델과는 다른 경제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지만 아직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만일 2000년대 초반 벤처생태계에 물을 주는 일을 중단하지 않고 지속했었더라면 지금쯤 한국 경제는 4차 산업혁명을 훨씬 더 잘 받아들이고 더 능동적으로 치고 나갈 수 있는 혁신경제 환경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우리는 벤처에 물을 주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 가릴 것 없이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대안으로 벤처기업 육성을 꼽고, 현 정부를 넘어서 다음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할 핵심 정책으로 언급한다.

지난 몇 년 간 벤처투자와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한 각종 세제 개편과 크라우드펀딩 제도가 시행됐으며, 창업기업에 대한 연대보증제도 폐지 등 벤처 업계의 자금 조달 방식을 융자에서 투자로 변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의미있는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벤처업계의 우수인재 유치를 위한 스톡옵션 제도도 일부 보완됐고,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정책에 힘입어 우수인재들의 창업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이번 정부에서 과감하게 추진 중이던 창업·벤처정책 관련 예산 삭감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벤처생태계를 지원하기 위해 더 좋은 대안이 있어 그 방향으로 예산 조정한다면 하는 수 없지만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른 갑작스런 예산 삭감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창업·벤처기업 투자금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모태펀드 예산도 2015년을 정점으로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로, 향후 벤처기업의 투자 자금조달이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우려가 기업과 투자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고급 기술인력의 창업과 고성장 글로벌 벤처기업으로의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창업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정책으로 줄여 나가야 한다. 그 일환으로 융자 중심의 정책금융을 투자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재편해 나갈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이 미래에 대한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은 때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펀드 조성에 박차를 가해, 벤처기업이 신성장 동력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마중물을 마련해야 한다.

대한민국 경제는 국내 정국 혼란과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충격으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힘든 상황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모소 대나무를 키우는 농부처럼 장기적인 안목으로 쉬지 않고 물을 주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한국 벤처기업들도 때가 되면 울창한 숲을 이루는 모소 대나무들처럼 어느날 갑자기 건강한 기업들로 크게 자라나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할 주체가 돼 있을 것이다.


정 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쏠리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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