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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말 많은 면세점 허가…힘 받는 신고·등록제

중앙일보 2016.11.28 01:00 경제 1면 지면보기
규제에 발목 잡힌 면세사업 위기론

조선은 도성 내 상점인 시전에서만 물건을 팔게 했다. 일종의 특허다. 특허를 가진 이들을 시전 상인이라고 했다. 이들은 시전 외 난전을 금지할 수 있는 금난전권(禁亂廛權)까지 휘둘렀다. 자유로운 경쟁이 없으니 상인의 질이 떨어지고 상업도 발달하지 못했다.

5년마다 재허가…기업들 투자 꺼리고 정부 눈치
특허 뺏긴 롯데·SK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도
“요건 갖춘 누구에게나 허용해 경쟁력 키워야”
일본은 시내면세점 늘린 뒤 외국 관광객 몰려


시계를 한참 뒤로 돌려 21세기 한국의 면세점. 상황이 조선의 시전과 비슷하다. 시내면세점 사업을 하려면 정부(관세청)로부터 특허를 받아야 한다. 한번 받으면 계속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특허를 언제 줄지, 또 몇 개나 줄지 결정하는 것도 정부 정책에 따라 바뀐다. 특히 최근 들어 기준이 자주 바뀌었다.
롯데·SK그룹의 면세점 특허 취득 과정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시내면세점 사업을 위해 정부의 특허를 받아야 하는 현행 허가제가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진은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8~12층에 지난 5월 문을 연 신세계면세점의 개점식. [중앙포토]

롯데·SK그룹의 면세점 특허 취득 과정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시내면세점 사업을 위해 정부의 특허를 받아야 하는 현행 허가제가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진은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8~12층에 지난 5월 문을 연 신세계면세점의 개점식. [중앙포토]

관광객이 늘고 장사 수완이 좋아 지금은 매출액 기준 세계 1위지만 ‘이대로 가면 규제 탓에 한국 면세사업은 망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현행 허가제를 신고 또는 등록제로 바꿔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허를 가진 업체만 면세사업을 하다 보니 경쟁력이 떨어지고 사업자 선정 때마다 뒷말이 무성하게 나온다”며 “면세점 제도를 허가제에서 신고제나 등록제로 바꿔 누구든 자유롭게 경쟁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사업자면 누구라도 면세점을 차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지난 24일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기획재정부·관세청 등 정부기관과 롯데·SK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힘을 얻고 있다. 두 기업은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최순실(60)씨가 개입된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각각 80억원(SK), 75억원(롯데) 출연을 요청받았다. 검찰은 이 돈이 연말에 결정되는 면세점 특허(대기업 3곳, 중소기업 1곳)의 대가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의혹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현행 관세법에 따르면 시내면세점은 5년에 한 번씩 재승인을 받게 돼 있다. 2013년 국회가 10년이던 특허기간을 절반으로 줄이도록 법을 고쳤다. 두 회사는 지난해 11월 재승인에서 탈락해 20년 넘게 운영하던 매장 문을 닫았다. 롯데면세점은 잠실점에서 옮겨 사업을 이어오던 월드타워점, SK네트웍스는 워커힐 면세점 사업권을 내놓았다. 특허가 취소된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업체들로선 억울하다. 이러다 보니 정부에 어떻게든 밉보이지 않도록 해 이번에 다시 특허를 받아야 하는 입장인 셈이다. 업체들이 부당한 요구에도 응하게 되는 이유다.

당시 관세청은 심사위원 명단은 물론 평가점수도 공개하지 않아 ‘깜깜이 심사’ 논란을 자초했다. 비판이 일자 정부는 올해 3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면세점 특허기간을 다시 10년으로 늘리고 결격 사유가 없으면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의 관세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업계와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허가제의 장벽을 그대로 둔다면 중국·일본 등 면세점을 외화벌이의 전초기지로 키우고 있는 국가들에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줄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은 2014년 9월 하이난섬에 롯데면세점 소공점(2만7000㎡)의 세 배 규모인 CDFG를 개장했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최소 요건만 갖추면 누구든 면세사업을 할 수 있다.

곽은경 자유경제원 시장경제실장은 “특허를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에 면세점 기업들은 적극적인 투자와 고용을 꺼리게 된다”며 “정부의 규제가 결국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해외 면세점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만드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웃 일본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아베 신조 정부는 공항에서 환급받는 사후면세점을 현장에서 바로 환급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했다”며 “이게 외국인 관광객을 늘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일본은 출국장면세점 위주의 정책을 바꿔 최근 도쿄 긴자 등에 시내면세점을 허용하는 등 면세점 규제를 풀어 관광객 끌어 모으기에 나서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하변길 관세청 대변인은 “해외 사례와 비교하지만 싱가포르와 홍콩은 관세가 제로이거나 거의 없는 곳이라 우리와 여건이 다르다”며 “신고제로 가면 밀수나 탈세 같은 관리 문제가 발생하고 해외 대형 면세점 진출로 국내 업계가 위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뒷말이 무성한 상황에서도 관세청은 연말 사업자 선정은 ‘절차대로 처리한다’고 밝혔다.

장주영·성화선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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