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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매창 #2. 애이불비 애이불상

중앙일보 2016.11.28 00:01
춘분이 지나면서 햇살은 하루가 다르게 따사로워졌다. 매창은 마루에 앉아서 앞마당을 내다보거나 뒷마당을 걸으며 낮 시간을 보냈다. 배롱나무 이파리의 초록색도 날마다 새로 태어난 듯 짙어졌다. 냉이, 광대나물, 벌금자리 같은 자잘한 풀꽃들도 때를 놓치지 않고 개화의 행진을 이어갔다. 꽃들은 봉오리를 급히 벌리며 향기 있는 것은 향기를, 향기 없는 것은 비린 풋내를 뿜어냈다. 새 발자국이 보일 정도로 말끔히 쓸어둔 마당으로 미풍이 불었다. 고소한 나물 냄새가 바람에 실려 집 안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매창은 산수유를 한 다발 꺾어서 화병에 꽂아 문갑 위에 올려놓았다. 잠이 덜 깬 듯 은은한 산수유 향이 방 안을 떠다녔다.

그제 저녁에 부안 관아에서 심부름하는 통인 김 서방이 현감의 전갈을 가지고 왔다. 귀한 손님이 한양에서 왔는데 꼭 매창을 만나고자 한다는 전갈이었다. 불쑥 찾아오지 않고 미리 연통을 넣은 것은 각별한 대접을 부탁한다는 뜻이다. 푸줏간에서 고기 끊어올 시간을 벌어주려는 배려였다. 매창은 찬모에게 부안 현감이 좋아하는 너비아니와 탕평채를 준비하라 일렀다. 그는 한양이 그리울 때면 그곳 음식인 설렁탕이나 너비아니를 찾았다. 숯불에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자 동네 개들이 몰려와 침을 흘리며 이리저리 설치고 다녔다.
 
“매창이! 안에 매창이 있는가?”
 
해가 설핏 기울 무렵 통인이 대문을 두드리며 매창을 불렀다. 찬모가 행주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달려나가 문을 열어주었다. 부안 현감이 먼저 대문 안으로 들어섰고 그 뒤에 키가 훌쩍 큰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매창은 섬돌 아래 내려서서 허리를 깊숙이 꺾어 인사를 했다.

그녀는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을 위해 마련해둔 결 고운 명주 스란치마를 입었다. 안에다 무지기를 받쳐 입어 하체를 한껏 부풀렸다. 아랫자락에 금박을 두른 풍성한 치마가 걸을 때마다 바람을 일으켰다.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청옥색 치마와 담홍색 저고리에서 댓잎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가 났다. 새 손님이 왼손으로 그녀의 치마폭을 들어 올려주며 마루에 오르는 걸 거들었다.

현감은 아랫목 쪽 상석에 앉으며 손님을 오른편에 앉혔다. 손님은 방 안을 휘둘러보았다. 살림살이가 거의 없는 단출하고 정갈한 방이었다. 기생이 아니라 과거 준비하는 서생의 방 같았다. 벽 한쪽에 세워져 있는 거문고만 눈에 띄었다.
 
“인사 올리거라. 이분은 너를 보고자 멀리 한양에서 예까지 찾아왔느니라.”
 
매창은 한양 손님을 향해 얌전히 절을 올렸다.
 
“이렇게 누추한 곳을 마다치 않고 찾아주셔서 황감하옵니다.”
 
“이 어른은 고대광실에서의 기름진 환대를 바라고 오신 것이 아니다. 너의 시를 듣고자 왔느니라. 잘 봐두거라. 시문이 뛰어난 문장가로 한양의 소동파라고 불리는 분이시다. 그 유명한 사암 박순 어른께 당시를 배운 실력이니 너도 가르침 받을 일이 있을 것이다.”

 
현감이 다소 거창한 소개를 마치자 한양 손님은 수염을 쓸며 겸연쩍게 웃었다. 매창은 그의 옆얼굴로 눈길을 돌렸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유희경 어르신이거나 백대붕 어르신, 두 분 중 한 분이시겠군요.”
 
한양 손님의 표정이 대번에 바뀌었다. 문장과 가문으로 이름 높은 현감과 달리 자신은 미천한 여항시인일 뿐인데 이름까지 알고 있지 않은가. 매창은 꾸민 표정이나 교태 흐르는 말투 없이도 사내의 마음을 붙잡을 줄 아는 여인임을 유희경은 첫눈에 알아보았다.
 
“어허, 고것 참 고얀 일이로고. 내가 그 두 사람 중에 하나가 아니라면 얼마나 난감한 일일꼬. 오늘 나의 운수에 망신살은 없었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습니까, 대감?”
 
유희경은 당황하는 빛을 감추고 짐짓 농담조로 대꾸했다. 그 말에 세 사람은 격의 없이 한바탕 웃었다. 첫 만남의 어색함이나 껄끄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편하지만 헐겁지 않은 대화가 끊어지지 않고 오갔다.
 
“오늘 제 운수에도 구설수는 없었사옵니다. 그러니 답은 하나뿐이지 않사옵니까?”
 
매창이 가볍게 응수했다. 어디 하나 빼고 더할 것이 없는 명민한 여인이었다. 유희경은 호기심 가득한 눈을 크게 뜨고 매창의 얼굴을 뚫어져라 맞바라보았다. 매창은 아이같이 천진한 표정으로 그의 눈길을 받았다. 뻔뻔하다 싶은 무연함이었다. 해맑은 동자승의 얼굴과 무르익은 여인의 향취가 반반씩 섞여 있었다. 상황이나 상대에 따라 둘 중 하나가 제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옆에 앉은 부안 현감을 돌아보았다. 현감의 얼굴에 득의만면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이거 오늘 아주 재미있는 자리가 될 것 같은데. 첫 대면부터 자네가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구먼, 허허허. 매창아! 네가 꼭 맞추었다. 이분이 바로 유희경 어른이시다.”
 

매창에게 대답을 해주고 현감은 유희경을 돌아보며 호기롭게 덧붙였다.
 
“내 뭐랬는가? 범상치 않은 여인이라 하지 않았나? 한양의 사대부들이 괜히 매창의 이름을 떠벌리겠는가.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인물의 옥석을 가리는 눈은 정확하다네.”
 
“그러게 말입니다, 대감. 이 여인의 첫 마디에 도끼날에 머리가 찍힌 듯 정신이 번쩍 납니다요. 이리 놀랄 일이 기다리는 줄 알았으면 미리 대비를 하고 올 걸 그랬습니다. 귀띔이라도 좀 해주시지 부러 저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심사 아니시옵니까?”
 
“나한테 그런 꼼수가 있을 리 있나? 자네가 직접 보고 자네가 가진 뜻과 눈으로 순수하게 이 여인을 알아보길 바랐을 뿐이네.”

 
유희경은 거참,을 연발하며 껄껄 웃었다. 매창은 부풀어 오른 치맛자락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유희경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두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바닷가 시골에 박혀서 짭짤한 소금 냄새나 맡으며 사는 제가 아는 것이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다만 이따금 들르시는 대감들께 세상 이야기를 풍문처럼 전해 듣는 것이 고작입죠.”
 
“매창이 네가 입에 발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더냐? 오늘 임자를 제대로 만났구나.”
 
부안 현감이 곧바로 맞받아쳤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기대로 표정이 밝았다.
 
“내가 한마디 보탠다면 노력은 가상하네만 빈말 같은 건 자네한테 어울리지 않네. 차고 날카로우면서도 둥글둥글 상대의 마음을 풀어헤치는 단도직입이 자네의 언어일세.”
 
유희경이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의견을 보탰다.
 
“맞아! 바로 그 걸세.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자네가 대신해주었네.”
 
“나으리들, 헛말이 아니옵니다. 시를 논함에 있어 어찌 빈말을 하오리까. 유희경 나으리께서 백대붕 어르신과 풍월향도라는 시 모임을 만들었다는 말을 풍편에 들은 적이 있사옵니다. 사대부는 물론이고 평민과 천민까지 다 함께 시로써 교류하는 자리를 만들 염을 아무나 내지는 못 할 것이옵니다. 어찌 그 소식이 사방으로 퍼져나가지 않겠습니까?”

 
매창은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남다른 재주가 있음에도 툭툭 던지는 말에는 모서리마다 서기가 어려 있었다. 그녀가 얘기하는 모습을 골똘히 바라보는 현감의 얼굴에는 영특한 학동을 바라보는 서당 훈장의 표정이 담겼다. 학동을 대견히 여기는 동시에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보람으로 뿌듯하고 넉넉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만하게. 그깟 시답잖은 일에 붙이는 칭찬이 너무 과해서 내가 고개를 못 들겠네.”
 
“대단한 일을 하신다 여기고 있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 더없이 큰 영광이옵니다. 제가 시 몇 줄 쓴답시고 앉았으니 장안에 돌아다니는 시 얘기에는 귀를 쫑긋 세우고 있지요.”
 

유희경은 흥분을 누르려고 애썼지만 얼굴이 단박에 밝아졌다. 점입가경이란 바로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이른 말이던가. 그녀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른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고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더 낯설고 겁났다. 누구에게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대화란 그저 대거리를 하는 정도이지 남과 아귀가 딱 맞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는 상상조차 안 해봤다. 이 순간을 제대로 실감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여자가 아닌가. 대화는 영혼끼리의 교접이라는 말의 참뜻을 비로소 이해했다.
 
“허허, 소일거리 삼아 시를 지어서 함께 돌려 읽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그보다는 그대 같은 가인이 첫눈에 나를 알아봐 주니 흥감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소. 그것이 시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내가 시 덕을 보긴 본 셈이네. 고맙구려. 내 얘기는 그만두고 오늘은 그대의 시를 듣고자 왔으니 잘 부탁하네. 나 역시 한양에서 그대의 이름을 익히 들었다네.”
 
유희경은 매창이 한양에서 벌어지는 시 모임의 일까지 다 꿰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놀라면서 태연히 그녀의 명성을 운운했다. 매창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말수가 적고 표정의 변화가 별로 없는 조용한 성품의 그녀로선 예외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한껏 밝은 목소리로 밖에다 술상을 청했다.
 
“김제에서 부안까지 오는 길에 산천을 둘러보았는데 과묵한 땅, 조용한 동네이더구먼.”
 
유희경은 화제를 바꾸었다. 남자 나이가 마흔여덟쯤 되면 스무 살 때처럼 마음에 드는 여자 앞에서 숨이 멎는 경우는 흔치 않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거부하기 힘들 만큼 매력적인 얼굴을 보았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냥 어여쁜 얼굴이 아니라 여러 겹의 매혹을 감춘 기품 있는 얼굴 앞에서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지켜온 원칙을 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인지 숨소리가 고르지 않았다.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너른 평야가 펼쳐진 김제나 정읍만큼 넉넉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부안은 바다를 끼고 있어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살림을 나름대로 꾸려가고 있답니다. 그래서 다툼도 별로 없고 세상일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지요.”
 
부안은 바다에는 어물, 산에는 산나물, 들에는 곡식이 풍성해서 먹고 살 걱정은 없는 땅이었다. 예부터 가문 땅이라 물 걱정은 하고 살았지만 양식은 풍부했다. 울창한 소나무와 향기가 빼어난 변란(邊蘭), 만병통치약으로 쓰이는 꿀 변청(邊淸)은 삼변(三邊)으로 전국에 이름이 났다. 해풍을 쏘인 덕에 단단하고 좀이 슬지 않아 궁궐이나 배를 짓는 데 쓰이는 변산의 소나무는 변재(邊材)라 불리는 부안의 명물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고장치고는 공기도 사람도 거칠지 않으니 그것 또한 별스럽지 않은가? 여러모로 다른 지방과는 사뭇 다르다네.”
 

현감이 자기가 녹을 먹고 있는 고장을 자랑할 기회를 놓칠세라 옆에서 거들었다.
 
“김제야 이름난 곡창이니 재물도 많고 그만큼 탈도 많을 테지요. 여흥이야 산수가 다채로운 이곳 부안만 못하겠지만요. 대감이 부안에 현감으로 내려오신 후 안면에 광채가 나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아니면 혹시 땅의 기운이 아니라 이 아리따운 여인 덕분이 아니온지요?”

 
유희경은 난을 감상하듯 수석을 어루만지듯 소중한 것을 다루는 눈길로 매창을 건너다보았다. 기생을 노리개로 바라보는 사내들의 능글맞은 태도가 전혀 없었다. 거들먹대는 양반들을 예사로 무안 주는 매창이지만 유희경의 고아한 풍모와 어투에는 얼굴을 붉혔다. 도골선풍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좋은 풍모를 위해서는 값비싼 옷을 해 입을 것이 아니라 안색과 자세를 바르게 하라고 했다. 저런 표정과 품새라면 누더기를 걸쳐도 빛이 날 거라는 생각을 하며 매창은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처음부터 죽 그 자세였다. 한 사람이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이 상대의 눈을 쏘아보며 심중을 헤아렸다. 바라본다기보다 눈에서 화살이 나와 상대의 동공에 꽂히는 형국이었다.

술상이 들어오자 두 사람을 흥미로이 관찰하던 현감이 눈길을 거두고 술잔을 채워주었다. 술상은 화려하지 않아도 손님의 젓가락이 갈 만한 반찬을 정성껏 마련한 마음이 느껴졌다. 너비아니와 몇 가지 나물반찬, 해초무침, 생선구이와 젓갈이 맛깔스러워 보였다.
 
“음식 장만하느라 고생했겠구나. 이 집의 너비아니는 언제 먹어도 별미일세. 그건 그렇고, 매창아! 뭘 하고 있느냐? 어서 너의 거문고 솜씨 한번 보여주지 않고서. 앞으로 술 따르는 일은 내가 맡을 테니 너는 거문고로 우리 두 사람 귀 호강이나 시켜다오.”
 
유희경의 눈이 기대로 반짝였다. 매창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매창은 거문고를 들고 문 가까이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유희경은 그쪽으로 몸을 틀고 나서 술잔을 마저 비웠다. 매창은 왼손을 거문고 줄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술대를 들었다. 고개를 들어 눈짓으로 현감에게 시작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유희경과도 눈을 맞춘 뒤 잠시 그 눈 속에 자신의 눈이 머물게 했다. 그런 다음 술대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술대를 앞으로 밀어냈다. 밀고 당기고 다시 밀어내고 끌어당겼다. 술대를 쥔 손놀림이 바람을 가르는 칼처럼 매서웠다. 그녀의 들숨과 날숨 사이로 거문고 소리가 드나들었다. 삼중주였다. 숨과 곡조가 하나로 엉켰다. 그녀의 몸과 거문고는 한 몸이었다.

작가소개
1964년 전북 익산 출생
건국대 영문과, 연세대 국제대학원 졸업.
2001년 <한국소설>에 「기억의 집」으로 등단.
허균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
2014년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저서로는 소설집『식물의 내부』, 『스물다섯 개의 포옹』,
장편소설 『안녕, 추파춥스 키드』, 『위험중독자들』,
포토에세이집『On the road』, 에세이집『삶의 마지막 순간에 보이는 것들』,
소설창작매뉴얼 『소설수업』, 번역서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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