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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제8요일의 남자] #33. 당신의 거짓말

중앙일보 2016.11.28 00:01
“나... 장현수 의원 장인되는 한정현이라는 사람이오. 내가 누군지 이름은 들어봤을 텐데...”
 
에프의 장인이라며 스스로 한정현이라 이름을 밝힌 어떤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익숙한 목소리였다.
 
“잠시.. 조용한 곳으로 가서 받겠습니다.”
 
한연수의 아버지 한정현, 그 어마어마한 음모의 실체를 향해 내가 던진 첫 마디는 그것이었다. 에프를 살해했을지도 모를 그를 향해 겨우 그 한마디를 던져놓고 복도로 나왔다. 사람 좋은 웃음을 물고 김천수는 괜찮다고 손을 번쩍 들어주었다.
 
물론 김천수가 옆에 있어 통화가 불편할 수도 있었지만 잠깐이라도 숨 쉴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지 않은 한정현의 전화는 아무 생각 없던 내게 느닷없는 침입이나 다름없었다.
복도에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의자가 놓인 휴식공간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
 
내 말이 건너갔지만 그는 잠시 텀을 두고 호흡조절을 하는 지 말이 없었다. 권투처럼 짧은 잽을 날려놓고는 상대의 스파링을 테스트 하듯 지켜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반미주씨...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똑똑한 아가씨 같군요.”
 
내가 전화 타이밍을 끊어서 기분이 상했다는 듯이 처음 자신의 이름을 밝힐 때 보다 훨씬 딱딱하고 고압적인 톤이었다.
 
“무슨 말씀이시죠?”
 
“간단히 이야기 하지... 반미주씨가 가진 물건 중에 내가 필요로 하는 게 있어서 말이야... 그건 원래 내 물건이거든... ”
 
조금은 비아냥거리는 투였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그의 목소리는 내게 익숙했으므로 그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 그게 내게 조금은 위안이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의 물건을 제가 가지고 있다니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태블릿 pc를 말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가 날리는 잽에 몸을 내 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잘 알 텐데... 남의 것인지 내 물건인지 정도는 구분해야지... 똑똑한 사람이!”
 
달려들어 핸드백 안의 태블릿을 빼앗아 들 것처럼 당당한 기세였다.
 
“혹시 테블릿 pc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라고 잽을 날리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오, 그래요... 이제야 말이 통하는구만. 역시 듣던 대로 영리한 분이군. 그거 내 것이요.. ”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녹록해졌다. 내가 날린 잽은 한정현에겐 공격으로 여겨지지 않는 듯 했다.
에프에게 그랬듯 그는 대번에 태도를 바꾸었다 에프가 촬영한 영상 속의 그는 여우같았다. 고조된 목소리로 에프를 위협하다가 금세 달콤한 웃음으로 어르고 달래기를 반복했었다.
 
“그게 선생님 것인가요?”
 
“그렇소...”
 
“글쎄요.. 이해가 되지 않네요.”
 
“정확히 말하면 내 딸아이 것이오. 장현수의 유품이니까... 그건 상식인데...그걸 몰랐다고 하면 곤란하지... 뭐 이제라도 알면 됐지만...”
 
한정현의 목소리는 어느새 어린 아이들 다루듯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장현수 의원님이 제게 남겨놓은 물건입니다...”
 
“고인의 유품을 함부로 처리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는 모양인데... 법 조항을 따져서 일일이 알려줘야 하나? 고인의 유품을 타인이 훼손하거나 은폐할 경우 어떤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되는지도 아셔야 할 텐데...? 법 쪽엔 관심이 없겠지만 이 정도는 상식이니 알아둬야 할 거요....”
 
한정현의 말에 의하면 장현수가 남긴 유품은 자신의 딸 한연수의 것이라는 말이었다. 어떻게 들으면 그 말이 맞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자, 여길 읽어봐... 민법에 명시된 점유권에 대한 부분이야.’
 
쥬디는 어제 컴퓨터를 열어놓고 내게 한참 설명을 했었다.
 
‘점유권이란 이미 문제의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우선적으로 그것에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지.’
 
‘태블릿을 내가 가지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거야?’
 
‘미주 네가 어떤 방식으로든 한정현을 만나게 될 때 그가 이 태블릿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가 있다는 거야. 그는 늙은 여우야. ’
 
어제 쥬디가 내게 그 말을 할 때만 해도 내가 당장 한정현을 만날 일도 없을 것이며 더구나 태블릿의 소유권을 가지고 왈가왈부 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 태블릿은 장현수가 너한테 전해달라고 파리 박물관장한테 맡겨 놓은 거야. 장현수가 사망하기 전에 본인의 의지를 가지고 네게 준 거라는 거지. 그래서 이 태블릿에 대한 권리는 네가 가지게 돼. 사망하기 전에 전해달라고 맡긴 거니 유언으로 간주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한정현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절대 넘어가면 안돼.’
 
쥬디의 생각대로 한정현은 법을 내세워 내게 태블릿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하고 있는 거였다.
 
‘억지로 태블릿을 가져가봐야 그 속에 있는 파일들이 복사본이 만들어 졌다면 무의미 하단 걸 그 작자가 먼저 알고 있어. 그러니 그 내용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거야. 법대로 하자고 하고 법대로 가면 되는데 정말 그렇게 되면 더 골치 아플 수가 있어. 결과적으론 우리가 이기게 되겠지만 재판에 계류 중일 땐 그 내용물을 공개하는데 유족이 명예훼손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어 까다로운 제약을 받게 돼... ’
 
‘그럼 우리한테 무슨 방법이 있지?’
 
‘공공복리나 공익을 위한 목적이 있다면 면책사유가 되지... 그러니까 그럴 땐 하는 수 없어. 우리 엠바고 풀고 세상에 확 던져야지. 언론에서 문제 삼게 되면 법적인 효력 같은 건 차후의 문제가 되니까. 하지만 그건 최후 수단이야. 잊지 마... 우리는 태블릿에 있는 내용을 세상에 알리는 것에 앞 서 장현수를 누가 죽였는지 알아내야 해..’
 
‘다시 말하지만 그는 늙은 여우야. 불법적으로 안 되면 합법적으로 이걸 가지려고 할 거야. 최소한 이 내용물을 어떻게든 오픈하지 못하게 막으려 할 거야. 명심해...’
 
어제 쥬디의 말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한정현과 담판을 지어야한다는 게 부담이었다. 한정현이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해야만 할 일 이었다.
 
“태블릿 pc는 장현수 의원님이 제게 전달하라고 남긴 물건이라 제 것입니다. 어떤 근거로 선생님께 드려야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말에 한정현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법은 그렇지가 않아요. 일단 우리 만나서 이야기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아마도 족히 10분은 넘게 통화를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김천수가 카페서 나와 두리번거리더니 내게 다가왔다. 아마도 의원실로 빨리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는 내 손에 자신의 명함을 쥐어주고는 다시 통화하자고 손짓 발짓을 하고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파란셔츠에 네이비 타이가 산뜻했다.
 
“제가 선생님을 만나야할 의무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의외로 한정현이 한 숨을 내 쉬었다. 긴 숨소리가 전화를 건너왔다.
 
“의외인데... 나는 미주씨가 나한테 만나자고 먼저 연락을 할 줄 알았는데... ”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내가 먼저 연락을 취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에프가 남긴 영상과 음성, 문서 파일을 다 점검하지도 못했다.
 
“혹시...제가 선생님을 봬야 할 일이 생기면 그때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만...”
 
“반미주씨...?”
 
“....”
 
“나도 지금 여의도야... 국회 정문을 나와서 바로 오른 쪽 지하철 입구에 차 한 대가 서 있을 거요. 잠시 봅시다... 국회 안에서 장현수 주변 들쑤셔봐야 나올 게 하나도 없어요.. ”
 
나를 만나는 것도 중요했겠지만 결국 나를 내내 미행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제 의사와 관계없이 저를 만나시겠다는 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요?”
 
“의사가 없다면 만날 필요는 없소... 그렇지만 의사가 생길 거요. 지금 당장...”
 
그는 분명 내게 협박을 하고 있었다.
 
“납치를 하겠다고 제게 공표하시는 걸로 들리는데요?
 
“장현수 오피스텔에 현수가 몰래카메라 설치했던 거 알고 있나?”
 
“글쎄요...”
 
내가 안다고 말해봐야 도움이 될게 없었다.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군. 똑똑한 아가씨가 모르는게 그렇게 많아서야... 그 녹화된 것들이 오피스텔 컴퓨터에 고스란히 있소... 등장인물이 주로 누군지 알거요.. 미주씨가 나오는 장면들이 많아. 이게 공개되면 비밀 많은 미주씨가 곤란해질 텐데 괜찮겠어요?”
 
오비서관이 그토록 미로작전을 펴며 캐리어에 담아 나갔던 게 한연수의 지시가 아니라 한정현의 지시로 했던 일이라는 뜻이었다.
 
“곤란하지요...”
 
“나는 이래서 영민한 사람을 좋아한다오...”
 
내가 거기에 나온다는 의미는 에프와 함께 나온다는 의미다.
 
‘장현수 국회의원 내연녀가 알고 보니 정치부 기자와도 애인사이... 이런 기사가 대문 짝 만하게 실리는 날이 오면...’
 
에프가 촬영한 영상에서 한정현이 했던 말이 다시 내 귀로 날아들었다. 그가 오피스텔에서 촬영된 영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그걸로 에프를 치명타 입히겠다는 말이었다.
 
“선생님이 나오시는 영상도 제게 있어요. 저는 몇 사람의 연인을 잃겠지만 선생님께선 오랫동안 쌓아온 정치생명을 잃으실 것 같은데요...”
 
하는 수 없었다. 모르는 척 얕은 척 구는 수 밖에 없었다. 잘못 맞불을 놓다간 그가 지른 불에 모두를 다 태워버릴지도 몰랐다.
 
“....하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어차피 내게 방법은 없었다.
 
“선생님.. 제겐 선생님이 나오는 영상이 열 개도 넘게 있고 그 복사본은 여러 사람의 웹하드에 저장돼 있어요. 제 신상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 영상들은 각 언론사로 바로 날아가게 될 겁니다. 장현수 의원님처럼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거예요. 저를 대상으로 아무 일도 벌이지 마세요. 그러면 저도 일단 아무 일도 벌이지 않을 거예요....”
 
이 정도가 그에게 협박이 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한정현을 만날 수도 없었다. 그들이 나를 미행하든 말든 좀 더 정비를 한 후 그를 만나야했다.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요즘 보도를 보면 알겠지만... 기업회장들이 비리로 검찰에 잡혀 들어가서도 죽을 때 까지 함구하겠다, 왜 그러겠소...? 나는 평생 의리로 세상을 살은 사람이야... 이런 사소한 것에 무너질 사람이 아니오. 그러니까... 잘 생각해보고... 그래요... 일단 나중에 다시 전화 합시다...”
그가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어지자마자 미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보안이 철통이라는 해외메신저로 보낸 문자라 미영은 깜짝 놀란 눈치였다.
 
‘왜 여기로?’
 
‘포털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보낼 테니까 제부씨 한테 회사에서 내 웹하드와 클라우드에 있는 파일을 복사해서 회사 계정에 패스워드를 만들어 보관을 좀 하라고 해줘.’
 
‘언니 이게 무슨 말이야? 무슨 파일인데?’
 
‘중요한 파일이야. 가급적 열어보지는 말고 제부씨 회사 계정으로 두 군데 정도 복사 해두면 좋겠어.’
 
‘언니 뜬금없이 무슨 말이야?’
 
‘설명은 만나서 할게.’
 
‘하여간 언니가 보낸 메시지 그대로 캡처해서 보내면 알아먹겠지 뭐. 언니, 오늘 저녁에 우리 집에 안 올래?’
 
‘며칠 후에 갈게. 지금은 다른 일로 좀 바빠...’
 
‘언니, 얼굴 안 본지 얼마나 된지 알아?’
 
미영의 메시지에 답을 하려는데 정말 익숙한 오래 기다려왔던 어떤 향기가 났다. 아트였다. 분명 아트였다. 아트가 나타날 때 마다 특이한 향이 났었다. 둘러보았지만 아트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면 바로 나타난다더니 그게 벌써 언젠데... 아트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김천수에게 문자라도 할까 싶어 아까 받은 명함을 찾는데 아트가 진짜 내 눈앞에 서 있었다. 반가움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왜 불렀어요?”
 
마치 알라딘 램프의 요정처럼 내 앞에 서 있었다.
 
“내가 부른 건 어떻게 아시고...?”
 
“부르면 온다고 약속했잖아요...”
 
아트가 실없이 웃고 있었다. 아트의 웃음에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한정현과 불꽃 튀던 방금 전까지의 통화가 까마득 옛일만 같았다.
 
<목요일에 계속됩니다>
그림=이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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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날, 당신에게 주고 싶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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