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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범의 쏘울루션] ⑥중독증 “나는 쾌락을 즐기고 싶다”

중앙일보 2016.11.27 15:41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한 중년 남성이 내원했다. 그는 도박과 게임, 술에 빠져 아내에게 이혼을 당했다. 그런 동생을 안타까워한 누이들이 그를 병원으로 이끌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무척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틈만 나면 주변 사람과 내기를 했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항상 ‘일확천금’을 꿈꿨다. 결혼을 한 후에도 게임과 술은 그의 삶을 지배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주식으로 대박을 노렸지만 실패만 거듭했다. 그러던 중 스포츠도박에 빠졌다. 쉽고 빠르게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잘하면 그간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와 동료에게 돈을 빌리고, 여의치 않아 결국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그는 ‘딱 한 번이면 모든 걸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변의 만류에도 도박을 거듭했다. 급기야는 회사의 공금까지 횡령해 도박을 했고, 회사에서도 쫓겨났다.
  그러던 중 신체에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 가만히 있어도 배가 부르고 가스가 찼다. 트림과 방구가 계속 나왔고, 가슴이 답답해 터질 것 같았다. 심할 때는 복부 아래에서 급격한 경련이 나타났고, 통증은 못 견딜 정도였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도박과 게임에 대한 망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장시간 앉아서 도박과 게임을 즐겼고, 긴장을 풀기 위해 계속 술을 마셨다. 한탕에 대한 욕망을 해소할 길이 없으니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위행위를 했다. 그야말로 ‘쾌락 종합 패키지’에 빠져 중독의 극치에 이른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중독증에 빠진 사람의 뇌에는 자그마한 방(구조물)이 있다. 그 방을 채워 줄 특정한 물질이 들어오지 않으면 뇌는 그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만일 일정시간 동안 갈망하는 물질로 채워지지 않으면 심한 금단현상이 나타난다. 이 경우 뇌는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균형을 잃어 해당 물질을 다시 섭취하고 싶다는 충동에 휘말리게 된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이런 중독현상을 어떻게 진단했을까? 『상한론(傷寒論)』에서 살펴보자. “배가 부르고 더부룩하여 힘들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섭취하고, 결국은 과부하가 걸려 내려가지 않아 매우 힘들어하며, 자기에게 이로운 것과 좋아하는 것을 끊임없이 끌어들인다. 고통스럽고 몸이 계속 아프더라도 결과만을 기다리면서 참게 된다. (273條. 太陰之爲病, 腹滿而吐, 食不下, 自利益甚, 時腹自痛, 若下之, 必?下結? 279條. 本大陽病, 醫反下之, 因爾腹滿時痛者 屬大陰也. 圭支加芍藥湯主之, 大實痛者, 圭支加大黃湯主之.)”
  여기서 ‘복만’(腹滿)이란 글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배가 가득 차서 팽팽하게 불러오는 것을 묘사했다. ‘가득 찰 만’(滿)은 물과 같은 액체(?)와 질그릇을 나타내는 문자(?)가 합쳐져 그릇에 액체가 넘쳐나는 상황을 의미한다. 즉 배에 무언가를 그득 채워야 만족하는 상태를 말한다.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끌어들이는 것은 과욕이고 탐욕이다. 중독도 이러한 욕심에서 출발한다. 고대인들은 무언가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복만(腹滿)으로 표현한 것이다.
  현대인은 갖가지 중독에 노출돼 있다. 정상적인 생활 자극을 벗어난 말초적이고 순간적인 쾌락에 너무 쉽게 젖어 든다. 밤새도록 게임에 몰입하고, 스마트폰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 공정하고 정당한 스포츠 게임은 도박과 승부조작으로 오염됐고, 노골적인 성행위 동영상도 손만 뻗으면 닿을 만큼 우리 가까이에 있다. 밤이 되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극단적인 쾌락과 흥분을 느끼기 위해 프로포폴과 같은 약물이나 마약을 즐긴다.
  중독증에 쉽게 빠지는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내면에 품고 있을까? 대표적으로 ‘낮은 자존감’이다. 이들은 자기 존재가 희미하게 취급 당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 한다. 타인의 평가가 자기 자신의 가치 평가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존재를 부각시키려고 애를 쓴다. 실은 도박을 즐기는 것도 타인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위 환자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는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항상 누나와 형의 존재에 가려 자기는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돌출 행동을 자주 했다.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을 항상 했고, 부모와 형제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하지만 때마다 부족함을 절감하면서 점점 더 위축돼갔다. 시간은 촉박했고 마음엔 여유가 없었다.
  ‘그래, 한 방에 만회하자.’ 그는 가족에게 자기의 가치를 입증할 방법을 찾던 중 승부가 쉽게 나는 도박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도박으로 시작했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그만두지 못하고 점점 과욕을 부렸다. 스포츠도박으로 큰 손해를 보자 그 손실을 메우기 위해 더욱 더 도박에 집착하게 됐다. 결국 회복하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렸고, 자포자기 상태로 술과 여자에 빠져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어렵고 힘들어도 과정을 인내하며 묵묵히 걸어가기 보다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성공을 추구하다 헤어나오기 힘든 나락으로 추락한 것이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듣는 건 불가능하다. 이룰 수 없는 목표를 가지고 전전긍긍 애를 쓰다 보면 자아는 점점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 심리를 보상받기 위해 욕심을 부리고 무리수를 두게 된다.
  결국 중독증을 극복하려면 자기 내면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먼저 타인을 만족시키려 하지 말고 자신이 가장 잘 하는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취약한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히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결국 과부하가 걸린다. 둘째, 매사에 긴장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하거나 좋은 평가나 칭찬을 받으려고 하면 우리 몸은 긴장하게 되고, 굳어진다. 그러다 보면 경직된 몸을 이완시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술이나 도박, 섹스 등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긴장과 욕심을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하다. ‘산책’을 권장한다. 여유로운 산책은 사유와 깨달음을 준다. 걷다 보면 긴장된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풀어지고, 마음 속을 채웠던 탐욕도 비워낼 수 있다.
  종합 중독에 빠졌던 이 환자는 다행히 중독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도박으로 진 빚을 대신 갚아주면 당사자는 또다시 도박에 빠져든다. 그래서 누이들은 동생이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 그 돈의 10배에 해당하는 빚을 갚아주기로 했다. 이야기를 들은 환자는 각오를 다지고서 병원 야간 경비 업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의외로 잘 버텨 나갔다. 그가 첫 월급으로 100만원을 받아오자 누이들은 실제로 1000만원을 갚아줬다. 돈을 갚는 재미가 붙자 그는 또 다른 일자리를 구했고, 빠르게 빚을 갚아 나갔다. 이 과정에서 일의 즐거움을 느꼈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삶의 다른 가치들을 보기 시작했다.
  “진정한 회개란,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결심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하면 과거의 나를 과감히 버릴 수 있고, 쓸데없는 것들과 단절할 수 있다.(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작은 동굴이 있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의 시선과 유혹을 뿌리치고 동굴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침묵의 소리에 집중하면, 세상 어떠한 것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진정한 자아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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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범의 쏘울루션]은 현대인이 겪는 여러 마음의 질환을 다루고, 고대 의학서인 『상한론(傷寒論)』을 통해 해결 방법을 찾아본다. 총 10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저자인 노영범 한의사는 30년 노영범 부천한의원 대표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공황장애, 우울증, 주의력 결핍 등 신경정신질환 전문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계를 움직이는 파워엘리트 21인’으로 선정된 바 있고, 2007년부터는 한국소비자보호원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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