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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촛불집회] ‘청와대 비우그라’ 피켓, 황소 등엔 ‘집에 가소’ 풍자 한가득

중앙일보 2016.11.27 02:50
26일 5차 촛불집회는 첫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였는데도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열기는 더 뜨거웠다.(왼쪽) 농민 2명은 황소를 타고 세종로를 행진했다. 소의 몸엔 ‘근혜씨 집에 가소’란 글이 적혀 있다. 박종근·장진영 기자

26일 5차 촛불집회는 첫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였는데도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열기는 더 뜨거웠다.(왼쪽) 농민 2명은 황소를 타고 세종로를 행진했다. 소의 몸엔 ‘근혜씨 집에 가소’란 글이 적혀 있다. 박종근·장진영 기자


‘청와대를 비우그라’ ‘1588-순실순실 OK! 대리연설’…. 26일 광화문광장에는 박근혜 대통령 정부를 풍자하는 온갖 피켓들로 가득했다. 오전에 내리기 시작한 눈과 비로 온도는 뚝 떨어져 있었지만 열기는 더 뜨거웠다. 시민들은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축제로 승화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오전부터 제5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몰려드는 인파에 사람들은 우산을 접고 우비를 입었다. 광화문 사거리에는 소까지 등장했다. 소의 등에는 빨간색 글씨로 ‘근혜씨 집에 가소’라고 적혀 있었다. 광장에는 박 대통령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사진을 붙인 펀치 게임기와 청와대·검찰·미르 등 다양한 스티커를 붙인 두더지 잡기 게임기도 설치됐다. 고등학교 승마특기생이라는 학생 3명도 집회 시작 전부터 광장에 나와 있었다. 이들은 ‘안녕하세요. 저희는 승마특기생들입니다’ ‘대학 가려고 시작한 승마가 아닌데’ ‘저희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저희는 말이 좋을 뿐입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나란히 섰다.

시민들의 ‘하야하라’는 외침은 ‘구속하라’ ‘체포하라’ 등의 외침으로 한층 강도가 높아졌다. ‘닭 껍데기는 가라. 개와 돼지의 아우성만 남고 닭 껍데기는 가라’. 한 시민은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를 패러디했다. 오후 4시 눈발이 잦아들면서 광화문광장에는 더 많은 인파가 집결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광화문을 기준으로 청운동 방면과 삼청동 방면으로 갈라져 ‘인간 띠 잇기’ 행진을 시작했다. 이 행진은 25일 법원이 오후 1시부터 5시30분까지 청와대 인근 행진을 허용하면서 처음 시도됐다. 시민들은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청와대를 향해 함성을 질렀다. ‘목이 아프면 안 된다’며 서로 목캔디를 챙겨주기도 했다.

법원이 행진을 허용한 오후 5시30분이 지나자 인간 띠 행진 대열에선 시민들이 ‘뒤로 돌아’를 외치며 광화문광장 방향으로 돌아섰다. 일부 시민은 강하게 항의했다. 경찰은 세 차례 해산명령을 내리며 남은 시민들을 밀어냈다.

본 집회는 날이 어둑어둑해져서야 시작됐다. 어둠을 밝히는 시민들의 촛불은 하나둘 켜져 갔다. 라벤더향이 나는 향초에 불을 켠 정금(28)씨는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잠시나마 좋은 향을 맡으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향초를 갖고 왔다”고 말했다. 무대에는 가수 양희은·안치환·노브레인 등이 올라와 공연을 펼쳤다. 가수 양희은은 ‘아침이슬’ ‘상록수’ 등을 열창했고 가수 안치환은 자신의 대표곡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로 개사해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50만 명, 경찰 추산 27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오후 8시에는 참가자들이 일제히 촛불을 끄고, 집회에 나오지 못한 시민들도 집이나 사무실 등에서 불을 꺼 집회 취지에 동참하는 ‘1분 소등’ 이벤트가 열리기도 했다. 같은 시간 차에 있던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려 동참의 뜻을 대신 전했다. 이후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새문안로·정동·서소문로 등을 거쳐 청와대 남쪽인 율곡로·사직로를 낀 경복궁역 사거리까지 8개 경로로 2차 행진을 이어갔다.

청와대에서 700m 정도 떨어진 통의동 로터리에서는 ‘인간 띠 잇기’ 행진을 하던 시민 300여 명이 경찰과 끝까지 대치했다. 오후 8시 본 집회 참가자들의 행진까지 이어지면서 수천 명의 시민들은 밤늦도록 경찰과 맞섰다. 애초 내자동 로터리를 저지선으로 설정했던 경찰은 통의동 로터리에서 시민들을 막아서야 했다.

25일 밤 트랙터와 화물차 등을 타고 상경하다 양재나들목 부근에서 경찰에 연행됐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 38명은 26일 오전 모두 풀려났다. 경찰과 대치하며 거리에서 밤을 지새운 농민들은 본 집회에 참가해 시민들의 큰 환호를 받았다. 시민들은 정부서울청사 옆 대로에 천막을 깔고 촛불 수십 개를 모아 ‘박근혜 퇴진’이라는 글자를 만들기도 했다. 누군가는 인파가 혼란한 와중에도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니며 땅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웠다. 본 집회가 끝나고 남은 시민들은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1박2일 하야가 빛나는 밤’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발언 등을 하며 밤을 지새웠다.

촛불은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을 밝혔다. 대전에서는 오후 4시부터 ‘박근혜 퇴진 2차 대전 10만 시국대회’가 둔산동에서 개최됐다. 강원도 춘천에서는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고 발언한 새누리당 김진태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1000여 명의 시민들은 지난 19일에 이어 꺼지지 않는 LED 촛불을 들고 나와 대통령의 퇴진과 김 의원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구시 중구 동성로 일대에서 열린 ‘4차 대구 시국대회’에는 대구 출신의 방송인 김제동(42)씨가 동참했다.

부산시 서면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 시국집회’는 8만여 명의 시민이 동시에 하야를 촉구했다. 시민들은 우산에 ‘즉각 퇴진’이란 팻말을 붙여놓고 구호를 외쳤다. 지난 19일 촛불집회 때 ‘횃불’이 등장했던 광주광역시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는 박 대통령의 강제수사를 촉구하는 대형 걸개가 걸렸다. 가로 15m, 세로 20m 크기의 걸개에는 ‘우리가 주인이다’ ‘박근혜 체포하라’ 등의 문구가 담겼다. 집회에는 시민 8만여 명이 참가했다.

제주도에서는 오후 4시30분부터 시민 7000여 명이 제주시청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집회에서는 ‘설러불라’라는 콘서트가 마련됐다. 설러불라는 ‘그만두라’는 제주도 방언이다.

특별취재팀=홍상지·정종훈·윤재영·황선윤·신진호·김윤호·김호·박진호 기자, 이우연 인턴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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