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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한 민주정치 살리려면

온라인 중앙일보 2016.11.27 02:44
1917년 11월 19일 인디라 네루가 탄생했다. 인디라의 아버지는 인도의 독립 운동가이자 1947년 독립한 인도의 초대 총리였던 자와할랄 네루였다. 결혼 후 간디로 성이 바뀐 그녀는 1966년 인도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여성 총리가 됐다. 인디라 간디의 재임기간은 약 16년으로 아버지 네루의 17년 다음으로 길다.

민세진 칼럼


인디라 네루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다. 네루 가문은 대대로 부유했고, 인디라의 할아버지 때부터 독립 운동에 가담했지만 영국의 통치는 비교적 온건해서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디라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독립 운동으로 바쁘고 9번이나 투옥됐기 때문에 인디라는 아버지와 주로 편지로나 접촉할 수 있었다. 네루가 인디라에게 보낸 편지는 이후 두 권의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어머니는 병약해서 결국 인디라가 20살이 되기도 전인 1936년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인디라는 주로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고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 들어갔지만 역시 몸이 약해 스위스에서 자주 요양했다. 그나마 나치의 유럽 공격이 시작되자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인도로 돌아왔다.


인디라는 이미 16살에 페로제 간디로부터 청혼을 받았다. 당시 인디라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청혼을 거절했다. 다섯 살 위인 페로제는 이미 독립운동가로 입지를 다지고 두 번이나 투옥된 바 있었으며 네루 집안과 가까웠다. 둘은 인디라가 25살인 1942년 결혼한다. 결혼 직후 나란히 투옥되는 등 독립운동의 동지이기도 했던 부부는 두 아들을 낳았다. 둘째 아들이 태어난 이듬해 1947년 인도가 독립을 하고 아버지 네루가 초대 총리가 됐다. 인디라는 아버지의 개인 보좌 역할을 수행했고 점차 사실상의 비서실장이 됐다. 그렇게 10년 이상이 흘러 1959년 인디라는 인도의 다수당인 ‘인도 국민회의’의 대표로 선출됐다.


중요한 사실은 네루가 딸이 당 대표 선거에 나서는 것을 반대했다는 점이다. 인도 국민회의는 독립운동 조직에서 정당으로 변신한 인도의 가장 강력한 정당이었고 네루의 정치적 기반이기도 했다. 네루의 반대 이유는 인디라가 당선이 되든 안되든 선거에 나선 자체가 족벌주의로 비판 받을 만하고 족벌주의는 반민주적이라는 것이었다. 같은 이유로 본인 내각의 어떤 자리도 인디라에게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인디라는 보란 듯 당 대표가 됐고 많은 정책에서 아버지와 대립했다. 결국 1964년 네루가 사망한 후 인디라는 입각하여 정보방송부 장관이 됐고 2년 후인 1966년 총리 자리에 오른다.


총리가 된 인디라 간디는 아버지 정책의 상당 부분을 계승했다.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을 비롯해 힌두어와 영어의 이중 언어 정책, 핵무기 개발 추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잇지 못했다. 바로 민주적 공화국에 대한 신념과 열망이다. 인디라 간디는 1975년 부정선거도 불사했고 이로 인해 발생한 혼란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사실상 계엄 상황을 만들었다. 네루는 유능하고 고집 있는 장관으로 내각을 채우곤 했는데, 2년간 지속된 비상사태 동안 인디라 간디는 지지자들로 내각을 채우고 둘째 아들을 중용했다. 둘째 아들과 그 친구들이 인도를 지배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 결과 1977년 집권할 수 있을 줄 알고 거행한 선거에서 실각하게 됐다.


그러나 반대 세력이 지리멸렬하게 이합집산하는 가운데 1980년 인디라 간디는 다시 총리로 복귀한다. 하지만 1984년 시크교도 경호원들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시크교의 독립운동을 강경 진압한 결과였다. 총애하던 둘째 아들은 재집권 초인 1980년에 비행기 사고로 이미 죽었고 이때 정계로 끌어들였던 큰 아들 라지브 간디가 인디라 간디를 이어 총리가 된다. 라지브 간디는 1989년 선거에서 패해 총리에서 물러났지만 인도 국민회의당의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가 1991년 자살폭탄범에 암살당했다. 라지브 간디의 아들 라훌 간디는 현재 인도 국민회의당의 부대표다.


민주정치는 연약하다. 독재와 권력세습은 빈번하게 민주정치를 위협하고 대체한다. 왜 그럴까. 첫째 이유는 권력을 잡은 사람에게 독재와 세습이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독차지하고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그 욕심에 우월감이 더해지고 사명감으로 포장되면 독재는 내면에서 정당화된다. 가족과 친척을 끌어들이거나(족벌주의) 친구나 동료를 포섭하면(정실주의) 쉽게 얼개를 갖출 수 있다. 남은 일은 대중을 설득하는 것인데, 과거 행적에 영웅적인 면이 있거나 선대의 후광을 업으면 가능할 수 있다. 인디라 간디는 독립운동과 아버지 덕에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출발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도 권력의 유지에는 무력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아예 무력으로 시작할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민주정치가 연약한 둘째 이유는 민주정치 자체에 취약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민주정치의 결과가 항상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우는 1950년 박사 학위 논문에서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해냈다. 쉽게 요약하자면 사회의 모든 개인이 합리적이어도 투표 결과는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라마다 다른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압도적으로 좋은 방식이란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니 민주정치가 불신과 회의, 반목에 시달리는 것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정치가 위기라고 한다. 합리적인 것 같지 않는 투표 결과들도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민주정치에 대한 회의가 팽배한 지금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라의 주인이고 소중하다는 이념 때문에라도 민주정치는 지켜져야 한다. 그 이념조차 허울 뿐이라는 냉소가 있어도 이 이상의 대의는 없기 때문이다. 질서를 부여잡은 집회의 모습에서 민주정치에 대한 끈끈하고 절실한 공감대와 열망이 느껴졌다. 유난히 추울 것 같은 겨울을 앞두고 그 온기에 기대 마음의 촛불을 켠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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