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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그물망에 얽힌 혼탁한 사회

중앙선데이 2016.11.27 00:42 507호 23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최근 대통령 관련 기이한 뉴스들이 국민 모두의 초미한 관심사가 되어 있다. 처음에 관련 기담(奇譚)들이 보도되기 시작했을 때, 어떤 지인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가하고 물었다. 평소 정치에 큰 열정을 가진 사람도 아니어서, 문단속 잘하고 몸조심하며 나날을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하고 농담으로 답변했다. 그러나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는 삶의 방식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나라의 최고지도자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아주 심각한 고민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깨닫게 된 것이 대통령은 단순히 정치적인 최고위자가 아니라, 사람들 심정의 깊이에 자리한 커다란 상징, 정신적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삶의 큰 테두리를 신뢰할 만한 것이 되게 하는 데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대통령이라는 말이다.


[빠른 삶 느린 생각] 맑은 정치 질서

일상적 삶은 하찮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여러 개의 큰 테두리 안에 존재한다. 규칙적으로 뜨고 지는 해도 나날의 삶에 지표가 되는 일이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어김없이 궤도를 돌고 있어야 그 증표가 작동한다. 말할 것도 없이 나날의 삶이 이러한 것을 의식하면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갈팡질팡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떨게 될 것이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 체제도 이에 비슷하게 삶의 안정을 뒷받침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실 정치의 그러한 상징성은 제왕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우연히 주고받은 대화들에서 표현되는 이번 일에 대한 격렬한 분노는 무의식의 깊이에 있던 어떤 신앙에 큰 타격을 입은 결과라는 인상을 준다.



 

[무의식에 있던 어떤 신앙에 타격 입어]

정치 체제가 상징적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물론 그것이 안정되고 신뢰할만한 것이라야 한다. 안정되고 투명하고 무엇보다도 정의롭고 공평한 것이 그러한 신뢰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나 사람들의 무의식에는 그러한 정치 체제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들어 있지 않나 한다.) 대통령직이 상징적인 의미만을 가졌다고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다시 구체적인 의미에서의 삶의 안정에 연결된다. 대통령의 결정은 생활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뒤틀어 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고용, 노동조건, 소득, 재산, 부동산, 건강, 교육, 사회보장, 세금과 공공요금, 삶의 인프라. 이러한 것들은 그 힘 아래서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고 바뀔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는 것이 정부와 관료 체제이고, 그러한 체제를 움직이는 사령탑에 앉아 있는 존재가 대통령이다. 되풀이 하건대, 상징적 존재로서의 대통령은 이러한 체제를 거의 완전하게 신앙적인 차원에서 보장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기대를 갖는다. 대통령직이 흔들리는 것은 신앙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세부에까지 미치면서 작용하는 삶의 조건을 흔드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치가 일상적 잡사에까지 미치는 힘이면서 동시에 일상의 잡동사니를 초월하는 어떤 정연한 공간, 투명한 공간을 구성한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잡다한 일상사 가운에도 삶의 위엄을 그 나름으로 직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공간이다. 정치 공간에서의 위엄의 소멸은 세계적인 현상인지도 모른다. 민주화의 한 효과가 그러한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의 여러 발언-성희롱의 대상이 된 여성, 인종, 이민자-이러한 사항에 대한 발언도 공공 공간에서 드러내어 말하지 않아야 할 말들이다.



이번 최순실 사건과 관련하여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야기들에는 믿기 어려운 잡동사니가 많다. 청와대에서 나오는 말에도 그러한 것들이 많지만, 그것을 선택 보도하는 시각에서도 그것을 느낀다. 처음에 이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외국 미디어에는 대통령의 개인적 우정 관계가 대통령직을 쓰러트릴 만한 것일까하는 내용이 있기도 했고, 일본의 어느 신문에는 최순실씨가 신었던 명품 구두가 그렇게 큰 주목거리가 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매체들이 너무 과열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표출됐다. 이러한 것들도 물론 결국 관계 인사들의 인격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가십의 자료는 될 수 있겠지만 정치적 관점에서, 공적인 관점에서, 특히 법률적인, 법적인 관점에서 문제가 될 만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청와대에 반입되었다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의료 자료와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도되는 많은 이야기들이 황당하고 근거 없는 것이라고 한, 청와대의 처음 해명도 반드시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핵심적 문제 흐리는 잡동사니 소문들]

중요한 것은 잡동사니 소문들이 핵심적인 문제를 흐리게 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은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 등의 설립에 관계된 기부금 징수, 정부 기관이나 기업 또는 여러 공공 조직의 인사와 운영에 대한 부당한 간섭, 대통령 문서들의 유출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은 국가 운영체제 교란, 이러한 것들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최순실씨 또는 그에 관련된 인맥을 통해 행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최종 지시나 결정이 대통령의 권한이고 책임이라는 것을 말할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해, 핵심은 금전과 인사와 정책 집행에 있어서의 직권 남용 또는 독직의 문제다. 지금까지 보도된 것으로는 금전, 인사, 국가 운영에 있어서의 혼란은 나라가 완전히 마피아의 불법적 그물망에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것들은 법률적으로 처리돼야 마땅하다고 할 문제들이다. 탄핵의 움직임이 있다는 보도를 보면, 결국 이번 일은 어떤 형태로든지 법적인 처리로써 끝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기부금으로 새로 창립하고자 하는 재단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금 마련이 주된 목적이었겠지만, 재단이 그것을 어떻게 쓸 준비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호의적인 추측은 ‘문화융성’ 추진이 그 목적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일일 터인데, 어찌하여 그러한 재단을, 그것도 기이한 방법으로 모은 기금으로 세워야 하는 것일까? 관료 제도가 어떤 일을 할 때, 지속적인 권력의 명령이 작용하고 있지 않는 한, 일의 추진에 능률과 성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하여 사립 재단이 일을 담당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의도가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법을 에둘러 가는 방법으로 수행할 수는 없다. 좋은 명분이 나쁜 수단으로 추진돼 원안에 본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정치 현실에서 수없이 보게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 대한 탄핵을 포함한 법적 처리는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도 변호의 기회를 주는 일이 될 것이다. 엄정한 법적 판결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경우나 변호의 기회는 명예를 지키는 데에 중요한 기능을 가질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그 진행 과정이 충분한 시간과 공정성을 가진 것이 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변호의 내용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관대한 처분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조사의 결과가 어떤 사실을 들추어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지만, 그리고 최종적인 책임이 전적으로 대통령으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그것으로 우리 사회와 정치의 정화(淨化)가 이뤄질 것인가? 최순실씨가 주재하는 재단에 ‘기부’한 기업들의 동기는 무엇인가? 강압적으로 받아낸 기부는 자기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기부란 원래 자발적인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기부이든, 기부에는 그 나름의 동기 그리고 계산이 들어 있다. 이번 사건으로 하여, 많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사리(私利)를 챙기는 계산의 그물망, 마피아 그물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름끼치는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다른 일에서도 우리 사회에 편재하는 이 그물의 괴로움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러한 것들이 우리 자신의 삶 자체에 얽혀 있다는 사실이다. 인맥·혈연·지연·학연 등도 우리 사회의 삶의 그물의 가닥들인데, 이것은 다시 금전적 이익 또 다른 삶의 이해관계로 이어진다. 그렇게 짜여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의 그물이다. 또 그물에 인생의 좋고 나쁜 감정들이 배어 있다. 이것이 우리의 사고를 흐리게 한다. 지금까지의 여러 보도는, 위에는 인간관계가 들어 있고, 아래에는 일상적 삶의 세말사(細末事)들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얼굴의 표정(가령 째려본다고 하는 눈), 몸에 부치고 있는 의류·신발·장식,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인간 현실이다. 그러한 감정이 없이는 삶은 공허한 것이 된다고 할 수도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성희롱과 관련해, 그것을 당했다는 여성이 그럴 만큼 매력적인 여자라고 할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작은 것들을 억제하는 기율, 또는 적어도 사적 영역에 한정하는 기율이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공적 공간의 투명성이, 크고 작은 감정을 넘어 생겨나는 공적 질서의 투명성이 성장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이 법과 공공 윤리의 관점에서 엄정하게 처리된다면, 그것은 더 이성적이고 투명한 공공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열매는 길고 넓은 역사 변화를 통하여 성숙하게 될 것이다.



근래의 정치 경험에서 가장 기이한 일의 하나인 최순실 사건은 우리를 너무 피로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것에 사로잡힌 마음에 도피의 환상이 일어난다. 이 환상은 권력이 너무 강한 정치 체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예로부터 가져 온 것일 것이다. 한시(漢詩), 특히 당송(唐宋)시대의 시에서, 산수(山水)는-그림의 경우에도 그렇지만-가장 눈에 띄는 시의 주제였다. 그리고 이 시들에서는 사는 방법으로도 자연 속의 은거(隱居)를 가장 높이 생각했다. 자연에서 사는 데에도, 필수적인 것은 의식주(衣食住)다. 그 중에도 제일 중요한 것은 식(食)이다. 그림이나 시에 어부가 많이 나오는 것은 여기에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 낚아가려는 부패한 권력의 그물]

소위 한강독조도(寒江獨釣圖), 찬 강 위에 홀로 낚시하는 어부의 이미지는 시에서나 그림에서나 흔히 보는 모티프다. 소동파(蘇東坡)의 ‘어만자(魚蠻子)’라는 시는 자연 속에 완전히 독립하여 사는 어부를 주제로 한다. 시의 주인공 어만자는 강 위에 배를 띄우고, 배를 집으로 하여 아이들을 기르고, 물고기를 잡아 양식을 마련한다. 밭을 갈 필요도 없지만, 세금을 낼 필요도 없다. 동파는 말한다. “인생행로에는 어려움도 많다/ 토지를 밟고 살면 부역과 세금을 짊어져야하는데/ 땅 밟고 사는 것은/ 어만자처럼 물결을 타고 허공에 뜨는 것만 못하다.”



토지에 사는 삶에서는 부역과 세금 이외에도 사람을 낚아 가려는 정치, 부패한 권력의 그물이 편재한다. 송나라에서는 물에 사는 것은 이것을 피해 사는 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권혁범 교수의 저서에 『국민으로부터의 탈퇴』라는 것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이 번 사건과 관련해 참으로 어떤 사람들의 심정을 표현하는 것일 것이다. (물론 책 제목의 원래 뜻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더 높은 삶의 차원으로서의 맑은 공공 질서, 또 그보다 더 높은 정신의 초월적 질서에 대한 숨은 소망도 없앨 수 없는 사람의 본성에 속한다.



 



 



김우창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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