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로, 무조건 간 때문?

중앙선데이 2016.11.27 00:40 507호 24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강일구



30대 젊은 남성이 진료실에 들어와 앉기도 전에 “간 검사만 좀 해주세요” 라고 한다. 그는 “요즘 피로가 오래 가고 주량도 예전 같지가 않아서요”라고 했다.


요즘 웰빙가에선

환자 중 상당수가 피로 증상을 간과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피로의 원인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다양하다. 과로나 심한 스트레스, 영양불균형, 약물 부작용, 우울증이나 불안증과 같은 정신적 질환, 수면장애, 감염성 질환, 빈혈, 결핵, 당뇨병, 신장질환, 갑상선 질환, 각종 암 등 수많은 원인들이 있다. 출산 후 육아로 인해 바뀐 생활패턴, TV 보다가 늦게 자는 경우, 밤늦은 야식 등 생활습관도 피로의 원인이다. 바이러스성 간염이나 독성간염 등 간에 문제가 생긴 경우는 수많은 원인 중 한 가지일 뿐이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로=간’이라는 공식을 떠올리는 것은 오랫동안 자주 접해 온 광고 탓이 아닐까 싶다.



원인이 다양한 질병일수록 병원에서 치료를 하기보다는 각종 보조 요법이나 자가치료를 먼저 찾는 경향이 강하다. 어떤 경우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좋아지는 것들도 있다. 이런 경우는 입소문을 타고 전파가 되며 그 요법에 대한 맹신으로 이어지기가 쉽다. 사실 나을 때가 돼 나은 것인데, 마치 그 방법이 병원에서도 못 고친 병에 대한 특효법이란 착각을 하게 된다.



피로하다며 병원을 찾은 환자 중에 간기능 개선 효과가 있다는 약이나 각종 영양제,건강보조식품을 이미 시도해보고 오는 경우도 많다. 영양불균형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라면 부족한 성분을 공급하면 좋아지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의학적 평가 없이 섣불리 이런 저런 방법을 찾다가 오히려 간을 망가뜨리거나 당뇨병 혹은 갑상선질환을 묵혀 더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오는 사례도 종종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피로한 증상이 있다면 우선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자. 바쁜 일에 쫓겨 며칠 밤을 새다시피 하고나서 생기는 피로는 지극히 당연한 증상이다. 이런 급성증상은 좀 쉬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런 것도 아닌데 증상이 지속된다면 우선 의사의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몇 달을 혼자 고민하던 문제가 병원에서 한 번에 해결되기도 한다. 각종 특효비법을 해봐도 효과가 없던 사람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게 되어 좋아지는 사례도 있다. 수면무호흡증이나 수면장애 치료를 하고 나서 좋아지는 사례도 흔하다. 산후에 이유 없이 붓고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다가 갑상선기능 이상을 발견해 치료하면서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피로의 원인이 치료법도 아직은 모호한 만성피로 증후군일 수도 있다.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피로의 경우에는 우선 제대로 된 의학적 진단을 제대로 받는 것이 필요하다. ‘피로의 원인은 간’이라서 ‘피로 회복은 영양제나 보조제’라는 공식은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경희한림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