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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둘러싼 인간띠, ‘구속하라’ 구호 등장

중앙선데이 2016.11.27 01:40 507호 1면 지면보기

임현동 기자



첫눈이 내리고 비가 되어 광장을 적셨지만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도 150만 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오후 7시 40분 기준 27만 여명)의 시민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촛불 너머 궁궐 뒤의 푸른 기와에선 작은 불빛만 새어 나올 뿐 칠흑 같은 어둠이 덮여 있었다. 전국엔 역대 최다인 190만 명이 운집했다.



오후 8시가 되자 광장에 모인 150만 개의 촛불이 일제히 꺼졌다. 약 2분간의 어둠과 정적이 흘렀다.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지금의 암울한 시국을 보는 것 같았다. 나지막이 들리던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외침이 들불처럼 번졌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사회자의 멘트로 일제히 촛불이 켜졌다. 함성 소리와 함께 “퇴진하라”는 목소리가 광장을 덮었다. 시민들은 촛불의 온기와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꿔 나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서로의 언 몸을 녹였다.



앞서 오후 4시에는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를 ‘인간띠’로 포위하는 행진이 전개됐다. 창성동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과 신교동 로터리, 새마을금고 광화문지점, 삼청로 세움아트스페이스 앞 등 네 곳에서 사전집회를 열었다. 광화문광장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행진한 시민들과 합류해 청와대와 경복궁을 동·서·남 세 방향으로 에워쌌다.



서쪽 시위대는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행진했다. 헌정 이래 처음으로 청와대에서 200m 떨어진 지점까지 시위대가 들어왔다.(사진) 이곳에서 경복궁을 빙 둘러 현대미술관까지 약 2㎞ 길이의 ‘인간띠’가 형성됐다. 아들의 손을 잡고 나온 40대 남성부터 유모차를 끌고 나온 30대 여성까지 평범한 시민들이 새로운 역사를 썼다. 김지민(17·서울 양천구)양은 “혼자선 힘이 없지만 함께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 부모님과 동생이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35만 명(주최 측 추산)의 ‘인간띠’는 한목소리로 외쳤다. 국민의 천둥소리 같은 함성은 궁궐 너머 청와대까지 또렷이 전달됐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화됐다. 단순히 ‘하야하라’가 아닌 ‘구속하라, 체포하라’로 메시지가 명확해졌다. 비폭력 평화시위를 넘어 현실적인 목표를 제시할 만큼 촛불 민심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저녁이 되자 광화문광장의 시민들은 150만 명으로 늘었다. 본행사에선 가수 안치환과 양희은의 공연에 이어 자유발언 등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본행사가 끝난 뒤에도 집에 가지 않고 밤샘 집회를 이어갔다. 처음 하얀 눈이 내린 날 시민들은 하야를 외치며 하얗게 밤을 새웠다.



촛불은 전국 각지에서 일제히 타올랐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00여 개 시·군에서 40만여 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했다. 대한민국 최서남단 흑산도에서 주민 100여 명이 촛불을 밝히고 자유발언을 했다. 부족한 양초는 목포에서 배를 통해 들여오고 플래카드도 육지에서 제작했다. 촛불집회 장면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생중계하고 대형 스크린을 통해 광화문 집회를 함께 지켜봤다. 강원도 춘천에서는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발언으로 비난에 휩싸인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사무실 앞에서 1000여 명이 박 대통령과 김 의원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전에서는 둔산동 갤러리아백화점 앞에서 ‘박근혜 퇴진 2차 대전 10만 시국대회’를 열고 함께 애국가를 부르며 행진했다. 광주에선 시민 7만여 명이 5·18민주광장에서,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선 2만여 명의 시민이 중앙로에 모여 촛불을 밝혔다.



 



 



윤석만·채승기 기자, 전국종합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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