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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3000만년 전 모습 그대로 살아남은 비결은 ‘떼비행’

중앙선데이 2016.11.27 00:30 507호 27면 지면보기

3억 3000만년 전 등장해 아직도 존재하는 살아있는 화석 하루살이와 잠자리는 앞뒤 날개를 따로 움직이거나 지향성 비행을 못한다. 날지 않을 때 날개를 몸 뒤쪽으로 접지도 못한다.



‘하루살이 인생’이란 말이 있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우리네 인생살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또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살이는 단지 하루만 사는 게 아니다. 성충으로 하늘을 날면서 하루밖에 살지 못할 뿐, 애벌레 상태로는 3년까지도 산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더 놀라운 일이 있다. 지금 눈앞에 하루살이가 날아다니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3억3000만년 전에 등장한 살아있는 화석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하루살이

하루살이는 가장 오래된 날개 구조를 가진 현생 곤충이다. 즉 하루살이의 날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구식 날개라는 것이다. 하루살이는 다른 곤충들처럼 두 쌍의 날개가 있다. 곤충의 구조는 머리-가슴-배로 구분하는데 가슴은 세 마디로 되어 있다. 현생 곤충의 날개는 둘째와 셋째 마디에 달려 있다. 물론 첫째 마디에 날개가 달린 곤충도 있었지만 금방 자연에서 퇴출되고 말았다. 첫째 마디는 커다란 근육이 발달하기에는 너무 작았을 뿐만 아니라 곤충의 무게 중심이 뒤쪽에 치우쳐 있어서 비행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살이 앞날개는 뒷날개보다 훨씬 크다. 양력을 거의 책임지고 있다.



 

[암컷 잡아먹히기 전에 수정란 물속 투하]?

하루살이 비행은 날렵하지 못하다. 새에게 쉽게 잡아먹힌다. 물에 잠깐 내려앉으면 물고기 밥이 된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가능하면 커다란 무리를 지어 포식자를 수적으로 압도하는 것. 덕분에 우리는 수십만 마리의 하루살이 군무를 볼 수 있다.



하루살이가 하늘을 나는 이유는 뭘까? 하늘에 하루살이가 잡아먹을 만한 대상이 있을 리가 만무한데 말이다. 심지어 하루살이 수컷에는 입도 없다. 암컷을 찾는 데 짧은 삶을 온전히 투자하기 위해 먹는 것을 포기했다. 하루살이는 단 한 가지의 목적을 갖고 있다. 짝짓기가 바로 그것. 번식이 삶의 유일한 이유다. 이때 떼를 지어 날아다녀야 암컷의 시선을 끌기 좋다.



암컷 하루살이를 발견한 운 좋은 수컷은 긴 다리로 암컷을 낚아챈 후 정포를 전달한다. 정포를 받은 암컷은 물 위에 내려앉는다. 대부분은 즉시 물고기의 밥이 되지만 운 좋은 암컷은 잡아먹히기 전에 수정란을 물속에 투하할 기회가 있다. 수정란은 호수 바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3억3000만년 전에도 그랬다.



하루살이는 원래 습지에서 살았다. 습지는 만만하지 않았다. 수많은 무악어류와 양서류들이 득실거렸다. 물과 땅 그 어디에서도 마음 편히 짝을 지을 수가 없었다. 포식자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을 찾아야 했다. 남은 곳이 하나 있었다. 하늘이다. 하루살이가 날개를 처음 펼쳤을 때 하늘은 완전한 미개척지였다. 익룡도 박쥐도 새도 없었다.



곤충 가슴에 날개가 돋은 때는 고생대 석탄기. 38억년 전 지구에 생명이 생겼다. 생명이 육상에 처음 진출하기까지는 무려 33억년이 지난 4억8000만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시 1억5000만년 이상이 지난 3억2700만년 전에야 생명은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하늘은 안전했다. 날개 덕분에 서식지를 쉽게 옮길 수 있었다. 물속에 떨어진 알과 물에서 사는 애벌레는 원래 수정된 곳에서 멀리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괜찮았다. 날갯짓으로 원래 번식지인 상류를 찾아갈 수 있었다. 강 대신 내륙의 옅은 호수와 연못을 새로운 번식지로 선택할 수도 있었다. 얕은 물에는 물고기가 적다는 장점이 있다.



하루살이가 번창했던 석탄기는 이름 그대로 우리에게 석탄을 남겨주었다. 거대한 폭풍에 휩쓸려 습지에 쌓인 나무 위로 빗물이 범람하고 흙이 켜켜이 쌓여 유기물 퇴적층이 되고, 이 퇴적층이 오랜 세월 동안 지질활동의 압력을 받아 생긴 것이 바로 석탄이다. 당시는 죽은 나무들이 분해되지 못했다. 죽은 나무가 분해되기 위해서는 우선 새·포유류·벌·말벌·나무좀·흰개미·개미 같은 것들이 나무에 구멍을 내 잘게 부수고 가루를 만들어야 한다. 그 다음에야 곰팡이와 미생물들이 물과 이산화탄소로 완전히 분해될 수 있다. 당시에는 이런 생물상(相)이 없었다.



 

[짝짓기 위해 높은 곳 찾다보니 날개 필요]

 

메뚜기와 딱정벌레, 벌과 매미 같은 대부분의 현생 곤충에게는 겨드랑이판이 있어서 날개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고, 날지 않을 때는 날개를 몸 뒤쪽으로 단출하게 접을 수도 있다.



석탄기는 지구에 또 하나의 선물을 주었다. 귀가 바로 그것이다. 석탄기 초기에 열쇠구멍 양서류가 등장했다. 눈이 열쇠구멍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열쇠구멍 양서류는 최초로 귀를 진화시킨 척추동물이다. 열쇠구멍 양서류는 작은 동물이었다. 물고기나 다른 작은 양서류를 잡아먹었던 커다란 양서류와 달리 열쇠구멍 양서류는 다양한 절지동물과 곤충을 잡아먹었다. 작은 동물을 잘 보이지 않는다. 열쇠구멍 양서류는 낙엽 더미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 누군가가 먹이를 갉아먹는 소리, 그리고 날갯짓 소리 같은 다양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곤충의 날개 덕분에 척추동물의 귀가 진화된 것이다.



석탄기 후기에 날개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추락할 이유가 없는 동물에게는 날개가 있을 이유가 없다. 곤충에게 날개가 생긴 까닭은 높이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곤충은 변온동물이다. 밤이 되면 체온이 떨어진다. 아침에 체온이 다시 오를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식물 위에 앉아 햇빛을 받아야만 한다. 우리가 보는 곤충은 모두 성충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모든 곤충의 최대 사명은 짝짓기다.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서든 짝짓기를 위해서든 먼저 체온을 올리는 개체가 유리하다.



현생 곤충들은 날개를 태양전지판으로 이용한다. 곤충의 날개에는 가느다란 줄이 있는데 이것을 시맥(翅脈)이라고 한다. 시맥에는 피가 흐른다. 시맥으로 흘러든 피가 햇빛으로 데워진 후 다시 몸 안으로 들어가 체온을 높이는 것이다. 석탄기 초기의 곤충들에게는 아직 날개는 없었지만 체온을 빨리 높이기 위해 숲 바닥의 그늘 속에 머물지 않고 나무 위의 양지를 찾아야 했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았던 석탄기에 숲은 점차 울창해지고 나무는 치솟았다. 이것을 따라 곤충은 점점 높이 올라가야만 했다.



높은 곳에 오를수록 짝을 찾는 데 유리했다. 현생 곤충들도 짝짓는 장소로 높은 나무, 바위, 언덕을 좋아한다. 석탄기 곤충들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높은 나무에 올라가 짝을 찾았다. 볼일을 다 봤으면 내려와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뛰어내리는 것이다. 또 오르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질 수도 있다. 이때 날개가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날개가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먹어야 하는 법이다. 석탄기 초기에 아직 날개가 없던 곤충 가운데는 가슴마디 양쪽이 약간 튀어나와 있는 것들이 있었다. 이것을 측배판이라고 한다. 날개는 아니지만 높은 식물에서 점프하거나 발을 헛디뎌 떨어질 때 일시적인 활강에 도움이 되었다.



측배판이 날개로 진화했다. 3억3000만년 전의 일이다. 이때부터 수백만년 사이에 날개는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그때 하루살이가 등장하였다. 하루살이를 비롯한 날개 달린 곤충은 금세 육상생태계를 장악하였다. 이때부터 1억년 이상 동안 곤충은 지구 하늘을 완전히 지배하였다.



5억4100만년 전 지구에 눈이 처음 생기자 생명의 양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전에는 입을 벌리고 물속을 떠다니는 게 전부였다. 헤엄도 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데 어디로 가겠다고 헤엄을 치겠는가. 모양과 색깔도 한계가 있었다. 눈이 생기자 헤엄칠 이유가 생겼다. 도망가고 추적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양과 색깔도 다양해졌다. 3억2700만년 전 날개가 생기자 또 생명의 양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날개 달린 곤충은 이동하고 구애하고 먹이를 찾는 데 발군이었다. 포자를 먹기 위해 나무를 기어오르는 곤충에 비해 날개 달린 곤충은 시간과 에너지를 엄청나게 절약했다. 가뭄이 들거나 산불이 나도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하늘에는 포식자도 없었다.



석탄기에 등장한 곤충들은 날개라는 신기술을 찾았지만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하루살이와 잠자리뿐이다. 신기술이 신기술로 인정받는 것은 잠깐이다. 자연의 역사는 혁신의 연속이다. 석탄기 후기에 날갯죽지 근처에 막이 달린 겨드랑이판을 장착한 날개가 등장하였다. 겨드랑이판은 날개를 맘대로 비틀 수 있어서 지향성 운동이 가능했다. 겨드랑이판이 없는 날개가 달린 곤충들은 먹이를 찾는 데 훨씬 불리했다.



 

[우리네 하루살이도 집단 이루는 능력 필요]

 

구식 날개를 가진 하루살이의 생존전략은 가능한 한 많은 무리를 지어 사는 것이다.



잠자리 잡을 때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맨손으로도 잠자리를 쉽게 잡는다. 잠자리는 풀 위에 앉아 있을 때도 날개를 펴고 있다. 접어도 날개가 몸에 바짝 붙지 않고 하늘을 향해 있다. 겨드랑이판이 없기 때문이다. 겨드랑이판이 있는 곤충들은 식물이나 암석 위에 앉아 있을 때 날개를 펴지 않고 날갯죽지를 비틀어 등 위로 접을 수 있다. 훨씬 단출한 것이다.



겨드랑이판은 앞날개와 뒷날개가 따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행의 기술이 다양해졌다. 그 결과 곤충의 진화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생겼다. 메뚜기·딱정벌레·나비·벌·파리·풀잠자리·강도래 같은 대부분의 현생 곤충들이 등장한 까닭은 겨드랑이판 때문이다. 작은 혁신 하나가 곤충의 운명과 하늘의 역사를 바꾸었다.



혁신을 이루지 못했음에도 하루살이와 잠자리가 지금까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잠자리는 허접한 날개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비행능력이 있다. 심지어 인도에서 아프리카까지 1만8000㎞를 날아갈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냥할 때 인간 수준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잠자리는 떼지어 날아가는 수많은 작은 곤충 중에서 단 하나의 목표물만을 선택해야 하는데 일단 목표를 고르면 뉴런 활동이 다른 곤충들을 걸러내 사냥 성공률은 97%나 된다.



그렇다면 하루살이가 아직도 살아남은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떼비행. 거대한 집단을 이루는 능력이다. 우리네 하루살이 인생살이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토요일마다 광화문에 간다.



 



 



이정모서울 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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