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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가문 3대의 아메리칸 드림

중앙선데이 2016.11.27 00:26 507호 28면 지면보기
미국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70)는 할아버지 때 독일에서 이주한 이민 3세다. 가문의 이민사는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다. 아무런 배경도 없는 사람이 오로지 성실함과 노력,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으로 ‘성공의 사다리’를 올라갔다.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트럼프(1869~1918)는 독일 서남부 라인란트팔츠주의 칼슈타트 출신이다. 프랑크푸르트 남쪽, 하이델베르크 서북쪽에 위치한 인구 1200명의 시골 마을이다. 생가가 남아있는데 트럼프 당선 직후 주인이 매물로 내놨다. 트럼프와 엮이기 싫어서라고 한다. 마을 주민의 상당수는 현재 트럼프를 거북하게 생각한다고 독일 언론은 전한다. 미국 유명식품사 하인즈케첩 창업주인 헨리 존 하인즈(1844~1919)의 아버지인 요한 하인리히 하인츠(1811~1891, 미국에선 존 헨리 하인즈)도 이곳 출신으로 1840년 이민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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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 양조장에서 일하던 프리드리히는 16세 때인 1885년 미국행 배에 올랐다. 뉴욕에서 6년간 이발사로 일하다 1891년 대륙횡단 기차를 탔다. ‘기회의 땅 서부’의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푸들 도그’ 식당을 차렸다. 트럼프 가문 최초의 사업이다. 프리드리히는 이름을 영어식인 프레더릭으로 바꾸고 귀화했다. 1894년엔 워싱턴주 몬테 크리스토로 옮겨 이번엔 호텔을 열었다. 1896년 북극권인 캐나다 서북부 유콘 지역의 클론다이크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유콘 초입인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베네트로 옮겼다. 1896~1899년 클론다이크 골드러시로 10만 명이 몰리면서 식당·호텔은 ‘돈이 되는 나무’가 됐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1897년 베네트에 ‘악틱(북극)’ 식당을 개업했다. 텐트 하나로 시작했지만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금세 2층 건물로 성장했다. 1900년 베네트-유콘 철로가 연결되자 유콘의 화이트호스에 식당 겸 호텔을 개장했다.



골드러시 거품이 꺼지자 1901년 사업을 정리하고 독일로 돌아가 이듬해 고향 마을 이웃인 엘리자베트(엘리자베스의 독일식) 크리스트와 결혼했다. 트럼프의 할머니다. 하지만 지역 경찰은 그가 병역 기피와 탈세 목적으로 미국으로 위장 이민을 떠났다가 돌아온 것으로 판단해 추방했다. 미국에 다시 이민온 그는 뉴욕주 퀸스에서 부동산 개발업자로 새 출발을 했다. 트럼프 가문 부동산 사업의 모태다. 프레더릭은 부인과 두 아들 프레드(1905~1999)와 존(1907~1985·MIT교수로 레이더·방사선치료 개발)을 남기고 1918년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 숨졌다. 홀몸이 된 부인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부동산 개발회사 ‘엘리자베스 트럼프 & 손’을 차려 사업을 이어갔다.



13살 때 아버지를 잃은 장남 프레드가 바로 트럼프 당선인의 부친이다. 22살 때 부동산 개발과 건설업에 뛰어든 프레드는 1930년대 뉴욕주에 ‘혼자 물건을 고르고 돈을 아끼세요’라는 광고문구를 앞세운 수퍼마켓을 열었다. 당시 획기적인 사업인 수퍼마켓은 ‘돈을 긁어모으는 갈퀴’였다. 프레드는 이를 킹컬렌이라는 경쟁 체인에 넘기고 현찰을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함 조선소 인근의 군인·군무원용 주택건설을, 종전 뒤에는 귀환 장병용 주택을 건설해 재산을 불렸다. 뉴욕시에 아파트 붐이 일자 2만7000가구 이상을 짓고 임대사업도 벌여 뭉칫돈을 벌었다. 트럼프 그룹은 이때 세워졌다. 트럼프는 1968년 아버지 회사에서 사회경력을 시작했다. 모친 매리 앤 맥러드 트럼프는 스코틀랜드 서북부 루이스 섬 출신의 이민 1세대다. 트럼프 가문사는 곧 이민자의 꿈이 영근 기록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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