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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로 쿠바의 속살 드러내다

중앙선데이 2016.11.27 00:40 507호 6면 지면보기
쿠바는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나라 중 하나다. 지난해 미국과 54년 만에 관계를 회복했고, 여행 제한도 대폭 완화돼 하늘길도 다시 열렸다. 미국과 쿠바간 항공편은 하루 최대 110편에 달한다. 이에 중국도 우방국 쿠바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서지 않도록 적극 공세를 펼치고 있다. 2014년 시진핑 주석이 쿠바를 방문한 데 이어 지난 9월 중국 총리로는 수교 56년 만에 처음으로 리커창 총리도 쿠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도 지난달 57년 만에 제1차 민간 경제협력위원회를 열고 쿠바를 찾는 등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춰 예술계도 쿠바 다시 보기 움직임에 가세했다. 사단법인 한·쿠바교류협회는 23~27일 서울 충무로 예술통 코쿤홀에서 ‘2016 쿠바 영화제’를 개최했다. 쿠바를 대표하는 감독 페르난도 페레즈 발데스(72)의 대표작 8편을 골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회고전을 마련한 것이다. 1975년 다큐멘터리 ‘푸에르토 리코’로 데뷔 후 현재까지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곧 쿠바 영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제 봉쇄로 인한 예산 부족으로 한 해 평균 4~5편의 영화만 제작될 때도 페르난도 페레즈는 꿋꿋이 쿠바의 현재를 담아왔기 때문이다.


쿠바영화제로 한국 찾은 페르난도 페레즈 감독

그의 장기는 글 대신 영상으로 일기를 쓰듯 꾹꾹 눌러담은 다큐멘터리다. ‘스위트 아바나’(2003)는 배우가 아닌 10명의 주인공을 좇는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10살 소년부터 70살 할머니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대화를 나누거나 특별한 사건을 경험하지 않는다. 쿠바혁명의 잔재와 퇴색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도시 아바나에서 그저 살아갈 뿐이다. 페레즈 감독은 “픽션은 모든 걸 만들어낼 수 있지만 다큐는 주어진 상황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지만 흥미로운 작업”이라며 “당연히 사전 인터뷰는 진행했지만 으레 등장하는 인터뷰 화면을 배제하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큐에서 쌓은 공력은 픽션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안녕, 헤밍웨이’(1990)는 얼핏 보기에는 청춘 로맨스물 같다. 아바나대에서 스페인어와 문학을 전공한 문학 청년답게 쿠바에서 20년 넘게 생활한 헤밍웨이의 옆집에 살면서 『노인과 바다』를 읽고 미국 교환 장학생을 꿈꾸는 문학 소녀의 삶이 큰 줄기를 이루지만, 그 곁에는 생계를 잇기 힘들 정도로 빈민한 삶이나 부조리한 제도, 수필 대신 전단을 돌리는 학생연합 등 쿠바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혁명 진전의 반정부 청년 조직 내 사랑 이야기를 다룬 ‘밀입국자’(1988)나 쿠바의 독립 영웅이자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대표 주자의 어린 시절을 담은 ‘호세 마르띠의 눈동자’(2010) 같은 작품은 보다 직접적이자 전투적인 얼굴을 엿볼 수 있다.



페레즈는 지금도 ‘아바나에서의 마지막 날들’ 작업이 한창이라고 했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우정을 나누며 선입견을 해소해나가는 이야기”라고 귀띔한 그는 “여전히 세상이 너무 궁금하고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했다. “아마도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만들려면 3000년쯤 걸릴 것”이라며 말이다.



그렇다면 그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영화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자유를 그려온 페레즈는 “단순한 자유가 아닌 자신의 삶 속에서 꿈을 이룰 수 있는 자유가 모두에게 허락되길 바란다”고 답했다. 그는 낙후된 현실을 부정하는 낭만주의자가 아니다. 자신의 도시가 남루하든 화려하든 발 딛고 서 있는 공간을 양분 삼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소통하고 싶다는 얘기다.



페레즈 감독은 “회고전은 처음이라 무척 떨리고 기쁘다”며 꼭 보아야할 작품으로 ‘안녕, 헤밍웨이’와 ‘스위트 아바나’, 그리고 ‘호세 마르띠의 눈동자’를 추천했다. 페레즈는 “각각 혁명 전의 삶과 실제 쿠바인의 삶, 쿠바의 역사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순서대로 보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선사하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쿠바에 대한 이해를 도울 것이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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