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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너야, 브리짓…아기 아빠가 누군지가 아니라

중앙선데이 2016.11.27 00:32 507호 20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김옥



헬렌 필딩(58)의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처음 읽었을 때, 최소 10번쯤은 웃었던 것 같다. 다 읽고 나서 ‘아! 내가 먼저 썼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든 책도 오랜만이었다. 예상대로 제인 오스틴의 빅 팬인 그녀는 자신의 소설을 “『오만과 편견』의 오마주”라고 밝혔다. 왜 아니겠나. 이 책의 남자 주인공 이름은 다아시다.


백영옥의 심야극장 -36-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아주머니들이 그를 ‘미스터 다아시’라고 경칭을 깍듯이 붙여 부르고 있는 것도 메스껍다. 자기가 마치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미스터 다아시’나 되는 것처럼 파티장에서 혼자 점잔 빼며 서 있는 것부터가 웃기지도 않았다. 그건 마치 히스클리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저녁 내내 정원에서 머리를 나무에 쾅쾅 박으면서 ‘캐시!’ 하고 소리치고 있겠다고 하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다아시나 히스클리프나 빅토리아 시대의 연애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라는 점에선 같지만, 그들은 영 상반된 남자들이다. 한쪽은 깨진 빙하 위에 서 있는 북극곰을 연상시킬 정도로 무표정하게 차갑고, 다른 한쪽은 폭발 직전의 베수비오 화산처럼 변화무쌍하게 뜨거우니까 말이다.



헬렌 필딩은 ‘여자 닉 혼비(소설가)’로 불린다. 살만 루시디 같은 작가는 대놓고 “유머 감각 하나는 천재적”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소설에는 브리짓이 몸무게를 줄이고, 애인을 만들기 위해 벌이는 온갖 해프닝이 연대기적으로 적혀 있다(살만 루시디는 심지어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카메오로도 등장한다). “한해 총 결산: 1월~12월. 알코올 3,836단위(나쁨). 담배 5,277개비. 섭취 칼로리 11,090,265cal(혐오스럽다). 지방 3,457단위(대략)”



그 시절, 내게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단순한 일기가 아니었다. 나 역시 매일의 일기를 ‘음식의 총 칼로리’로 시작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누군들 안 그럴까!). 하지만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르네 젤위거가 이보다 더 브리짓스러울 수 없는 캐릭터로 세계적 인기를 구사하고 있을 때조차, 미국 보그는 그녀의 커버 촬영을 거부했다. 당시 김삼순을 능가하는 뚱뚱한 그녀의 몸 때문이었다(당시 젤위거는 급격히 불린 몸무게를 감량하지 못한 상태였다).



도대체 다이어트는 언제까지 여자들의 삶을 붙잡고 놔두지 않는 걸까.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스키니진이 유행처럼 쏟아지기 시작하던 무렵, 나는 “샤넬의 옷은 가슴이 납작한 여자에게나 어울린다”고 말했던 칼 라거펠트에 대한 분노와 44 사이즈 이하의 모델들에 대한 연민과 절망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먹방’을 보여주며 유쾌하게 웃는 모델들이 카메라 스위치가 꺼진 후, 화장실에 달려가 자신이 먹은 음식을 전부 토해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부자는 단지 돈이 많은 사람일까. 부자의 적확한 정의는 본인만 내릴 수 있는데, 이유는 하나다. 더 이상 가지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 진짜 부자다. 문제는 자신이 ‘충분히’ 말랐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이 도시에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한 건 70kg의 여자가 48kg의 여자를 부러워하는 것보다, 49kg의 여자가 45kg의 여자를 더 부러워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각종 식이요법과 다이어트를 시작한 여자들에게 세계는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담배를 라이트로 바꾸면 점점 헤비스모커가 된다. 칼로리 제로의 탄산음료들은 우리를 더 심각한 설탕중독에 빠뜨린다.



 



[진짜 부자는 더 이상 갖고 싶은 게 없는 사람]



2001년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내게 여자와 남자의 ‘몸’이 비대칭적이라는 역설을 일깨우는 텍스트였다. 이후 ‘브리짓 존스의 일기2’를 거쳐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가 나오기까지는 15년이 흘렀다. 원작보다 못한 영화라든가, 1편보다 못한 2편 같은 말은 일단 접어두자. 15년은 시리즈 속 주인공에게도 엄청난 변화가 있는 시간이니 말이다. 이제 3편에서 브리짓 존스는 43살이 되었다. 무엇보다, 임신했다!



일정 나이가 되면 케이크에 꽂는 촛불 개수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외치는 쪽은 왜 대부분 여자들일까. 늘어가는 주름살만큼 연애의 가능성은 줄어들고, 생물학적으로 엄마가 될 수 있는 난자의 시효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일까. 애플 같은 IT기업에서 직원복지 차원에서 제공한다는 ‘냉동난자 서비스’ 같은 최첨단 바이오 기술이나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름답고 힘 있는 ‘수잔 서랜든’, ‘마돈나’ 같은 여걸들의 기사로도 위안이 되지 않는 나이에 도달했단 자각 때문일까.



전화 한 통에 달려오던 친구들은 새로운 가족을 보살피느라 정신이 없고, 직장 상사이자 애인이었던 클리버(남자 맥 라이언이라 할 수 있는 휴 그랜트는 이 영화에서 장례식장의 영정 사진으로 등장한다)는 비행 중 사고를 당했다. 2편에서 연인이었지만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가 이혼 소송 중인 마크 다아시와의 관계 역시 어중간하기만 하다. 자신의 옥탑방에서 술을 마시며 할 수 있는 결심은 그러므로 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젊음을 호출하고 다시 연애하는 것. 그녀는 광란의 록페스티벌에 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마크와도 우연히 재회해 뜨거운 밤을 보낸다. 그리고 머지 않아 자신에게 일어난 엄청난 사건을 마주한다. 임신한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는 아기 아빠가 과연 두 남자 중 누구인가에 맞춰져 있다.



한밤의 불장난이 임신으로 이어질 때, 남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책임과 고통이 일방적으로 여자에게 주어진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란 생각만으로도 여자들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과 정치적 올바름 사이에서 낙태는 점점 입에 담기 힘든 말이 된다. 제 아무리 다이어트 공화국이라도, ‘임신 중 다이어트’ 같은 말은 없지 않은가. 물론 브리짓에게 ‘임신’은 ‘출산’의 문제가 아닌 ‘양육’의 문제로 직결된다. 그래서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이 영화의 중요한 키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흥행 요인 중 하나는 ‘여주인공의 미래 남편 찾기’라는 게임 구조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아기 아빠 찾기 게임은 내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누가 아빠가 되도(IT 재벌 vs 인권 변호사) 상관없이 아이를 잘 키울 것 같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영화를 먼저 본 대다수의 친구들은 내게 영화를 추천하지 않았다. “르네 젤위거가 너무 늙어 보여. 이건 코미디가 아니라 비극이야!”



 



[먹고 싶다 vs 마르고 싶다, 이율배반적 욕망]



하지만 주인공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는 영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어두운 극장 안에서 임신으로 부풀어 오른 브리짓의 배를 사랑스럽게 보는 두 남자가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를 생각했다. 이 질문은 내게 이 영화의 실패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묻는 것과 같았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기인할까. 그것은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어딘가 반드시 존재할 것이란 믿음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사랑의 ‘대상’이 바뀌면 모든 것이 이전과 다른,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여기에 사랑의 비극이 존재한다. 모든 것은 ‘대상’이 아닌 결국 ‘내’ 문제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사랑 만큼 강하게 반복되는 패턴도 없다. 우리의 연애가 그 많은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건 그런 이유 탓이다.



문제는 임신이 아니다. 아기의 아빠도 아니다. 바로 엄마였다. 나, 43살, 브리짓 존스 말이다.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가 누가 아이의 아빠인가라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내가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나아가 어떤 엄마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 시리즈의 미덕을 떠올렸다. 이율배반적인 욕망 속에서도(먹고 싶다! 마르고 싶다! 연애하고 싶다! 혼자이고 싶다!)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며 좌충우돌하던 ‘그녀’를 생각하며. ●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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