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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만난 고모는 왜 말이 없었을까

중앙선데이 2016.11.27 00:22 507호 30면 지면보기
영원히 살기라도 할 것처럼 젊음을 유지하려 태반·감초·백옥 주사를 고루 투여하며 발버둥쳤던 한 고독한 여인의 비화가 전 국민을 자괴감에 빠트리고 있는 요즘, 경쾌한 리듬으로 죽음이 결코 멀리 있지 않고 고독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는 작은 연극이 우리를 찾아왔다. (※본문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모를 찾습니다(원제: 임종 Vigil)’는 ‘캐나다의 올리비에상’이라 불리는 캐나다 총독 문학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캐나다의 국민작가이자 배우인 모리스 패니치의 대표작으로, 21년간 무려 26개국에서 꾸준히 사랑받아온 현대판 고전이다. 영미 번역극에 익숙한 한국 관객에게 다소 낯설게 다가오는 캐나다 희곡이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고령화와 고독사의 문제는 이미 전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문제다.



이 무대가 특별한 건 ‘죽음’이라는 금기를 직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내는 형식에 있다. 별다른 무대 전환이 없는데도 무려 30여 차례 암전으로 몰아치는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익살스러운 배경 음악이 이제껏 본 적 없는 색다른 2인극을 만든다. 지난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한 대세 배우 하성광과 브라운관 중심의 연기인생 50년을 맞은 배우 정영숙이 맞추는 독특한 호흡도 인상적이다. 전체 대사가 채 열 마디도 안 될 것 같은 ‘무언의 연기’를 펼치는 정영숙과 덕분에 모노드라마 수준의 대사량을 소화해야 하는 하성광의 명불허전 연기는 낯선 듯 울림이 강한 무대를 빚어낸다.


연극 '고모를 찾습니다', 12월 11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유년 시절의 상처를 안고 성격 파탄자가 돼 외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중년의 은행원 켐프는 30년간 연락이 닿지 않던 고모로부터 “곧 죽는다”는 편지를 받고 임종을 지키기 위해 고모를 찾아간다. 하지만 고모는 말하는 법을 잊은 듯 켐프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고 오직 듣기만 한다. 그런데 곧 죽을 것 같다던 고모는 웬일인지 점점 기력을 되찾고, 고모를 돌보는 일은 예상 외로 길어져 1년을 훌쩍 넘기고 나서도 고모는 쉽게 갈 것 같지 않다. “장례식엔 뭘 입고 가지?” “장기는 어느 부위를 기증할까요?” “관은 스몰 사이즈면 되겠네” 같은 폭언을 퍼부으며 자살 기계까지 만들어주던 켐프는 할로윈과 크리스마스, 새해까지 함께 보내게 되자 점차 가슴 속 묻어둔 상처를 꺼내 놓으며 스스로 위안을 얻는데, 이윽고 말 없는 고모의 충격적인 비밀이 드러난다.



그런데 죽음과 고독을 논하는 대상이 왜 부모도 이모도 아니고 하필 고모일까. ‘왜 고모일까’라는 의문이 그 엄청난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다. 아마도 작가가 떠올린 고모의 이미지는 영미권 동요 ‘Oh, My Aunt Came Back’에 나오는 바로 그 고모일 것이다.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다 한 번씩 난생 처음 보는 진귀한 선물을 갖고 방문하지만 금세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는 가깝고도 먼 존재. 이모처럼 비교적 가깝게 지내며 서로의 사정을 대충 알고 있는 사이가 아닌, 세상 어딘가에서 화려한 모습으로 잘 살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그런 고모 말이다.



켐프가 찾은 ‘고모’는 결국 30년 이상 만난 적 없는, 어쩌면 전혀 모르는 외간 남자와 함께 1년이 넘게 한 집에서 지낸 셈이 된다. ‘고모’는 왜 그랬을까. 켐프가 불쑥 찾아 온 첫 장면에서 도둑이라도 본 듯 잔뜩 경계했던 그녀의 얼굴이 점차 밝아지고 난생 선물을 받아본 적 없다는 켐프를 위해 직접 스웨터까지 뜨기 시작해 완성할 때까지 죽음의 고통도 견디는 모습에 해답이 있다.



극단적으로 대사가 없는 고모의 모습은 일견 의아해 보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도 있었지만, 사실 죽음을 앞둔 누가 말이 많을까. 그렇지만 할 말은 없어도 말을 걸어 줄 사람은 간절한 법인가 보다. 어쩌면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은 아니었을 게다. “왜 아무 말도 안 했죠?”라는 켐프의 질문에 “자네도 여기 있는 게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라는 그녀의 대답에서 내게 말을 걸어 줄 사람을 넘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우리를 본다.



문제는 켐프 자신도 이대로라면 외로운 고독사를 맞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모친의 학대와 부친의 권총자살 등, 선택할 수 없었던 과거 탓만은 아닐 수도 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가족은 물론 친구도 애인도 하나 없이 살고 있는 현재가 훨씬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이렇게 이 작은 연극은 농담처럼 가볍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척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에 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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