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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마음 불빛

중앙선데이 2016.11.27 00:10 507호 34면 지면보기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잠을 깼다. 일어나 오줌을 누고 손을 씻고 부엌에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 보니 거실에 불이 켜져 있다. 한밤중인 것 같은데. 건너편 아파트에도 우리 집처럼 불이 켜져 있는 집들이 많다. 그 불빛들을 보자 하품을 한 것도 아닌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릴 때 부모님 따라 시골 갔다가 부산으로 돌아오는 밤 기차 창으로 보면, 사람이 사는 집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따로 떨어져 있는 농가는 불빛도 따로 떨어져 있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는 불빛들도 연대해서 환했다. 마치 함성 같았다. 불빛은 신호 같았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하고 외치는 구조 신호. 나는 그 불빛들을 보면 괜히 코끝이 시큰했다.


김상득의 행복어사전

하늘의 별빛보다 사람의 불빛이 나는 더 좋았다. 부산 산복도로에 살 때는 여름 내내 집 앞 계단에 나와 앉아 불빛들을 보곤 했다. 소방도로 위와 아래로 산을 타고 쏟아져 내리던 빛의 물결. 작고 허름한 집들은 저마다 하나씩 전등을 켜고 있었다. 불빛 아래에서 사람들은 소매가 없는 ‘난닝구’ 차림으로 저녁을 먹었다. 어느 집은 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고 씨를 마당으로 뱉었다. 부채질을 하고 희고 푸른 담배연기를 태웠다. 또 어느 집은 술을 마시고 싸웠다. 다투고 욕하고 부둥켜안고 울었다.



사람들은 불빛 같았다. 밝고 흐릿하고 가물가물한. 나는 연한 살을 모기에게 다 뜯기도록, 찬물에 만 밥알 같은 여름 밤이 다 가도록 오래 계단에 앉아 산복도로의 불빛들을 보았다. 그러고 있으면 어린 나는 금세 늙어버릴 것 같았다.



지난 여름에 나는 이런 문장을 썼다. “없는 사람들 살기에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는 말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 지난 여름 열대야가 너무 심해서였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에어컨이 없는 사람들,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세 누진제가 무서워 차마 틀지 못하는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숨막히는 열대야의 뜨거운 공기를 견디고 있어서였다. 물론 우리 집에도 에어컨이 없다. 그랬는데 이제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생각이 달라진다. 난방비 걱정 때문에 추위를 내복으로 견뎌야 할 것 같다. 없는 사람들 살기에는 여름도 겨울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닐 무렵, 맞벌이하느라 우리 부부 둘 다 귀가가 늦었다. 어떤 날은 아내도 일이 늦게 끝나고 나도 약속이 있어 집에 늦게 들어갔다. 13평 아파트에 온통 불을 켜놓은 채 아이들은 이불도 펴지 않고 아무렇게나 엉켜 잠들어 있었다.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여러 번 주의도 주고 야단도 쳤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거실과 주방과 베란다까지 켜져 있는 불을 하나씩 껐다. 아이들 이부자리를 봐주고 책상을 정리하다가 큰 녀석의 일기장을 보았는데 제목이 ‘어두운 우리 집’이었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우리 집은 어둡다. 불을 다 켜도 어둡다. 엄마 아빠가 오면 밝지만 우리 집은 항상 어둡다.”



이제 아이들은 필요 없는 전등 정도는 알아서 끌 정도로 자랐다. 늦게 들어오는 엄마 아빠를 기다리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자신들이 늦게 들어와 우리 부부가 기다리게 만든다. 바야흐로 20대 중반인 것이다.



나는 원래도 어두운데다 나이 들면서 눈도 귀도 총기도 점점 더 컴컴해져서 어둠과 친숙하지만 아내는 밝은 것을 좋아하고 어둠을 싫어했다. 그런 아내도 살림을 살고 생계를 꾸리다 보니 이제는 어둠과 점점 친해졌다. 리어 왕의 말처럼 궁핍이란 이상한 재주가 있어 천한 것을 귀하게 만들고, 싫은 것과도 친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내는 필요 없는 불은 모조리 끈다. 심지어 필요한 불도 끄자고 한다. 그러니까 요즘도 우리 집은 어둡다.



그런 우리 집 거실에, 아무도 없는 거실에, 불필요한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이다. 나는 스위치를 끈다. “아무도 없는데 누가 불을 켜놨네.” 근검 절약하는 자신을 좀 알아달라는 심정으로 중얼거리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는데 아내가 말한다. “불 끄지마. 아이들이 아직 안 들어왔잖아.”



아이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은 집은 밤이 깊어도, 새벽이 와도, 세월이 가도 불을 끌 수 없다. ●



 



 



김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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