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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르네상스맨, 그만의 감각 보여주다

중앙선데이 2016.11.27 00:06 507호 8면 지면보기

‘어릿광대(Arlecchino)’(1939), 종이에 템페라, 30 x 39 cm

욕조에 들어가 스케치 작업 중인 피에로 포르나세티. Courtesy Fornasetti




유행 타지 않는 유행의 창조자, 피에로 포르나세티

화가·조각가·판화가·디자이너·수집가·스타일리스트·갤러리스트·영화감독·미술감독·전시 홍보 담당자…. ‘20세기 르네상스맨’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아티스트 피에로 포르나세티(Piero Fornasetti·1913~1988)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13년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에서 개최된 전시가 파리 장식미술관을 거쳐 아시아 최초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했다. ‘포르나세티(FORNASETTI) 특별전-프랙티컬 매드니스(PRACTICAL MADNESS·11월 22일~2017년 3월 19일)’다.



이번 전시회는 20세기 초반 포르나세티가 화가로 활동했던 시기의 회화부터 아트북, 50~60년대 건축가 지오 폰티와의 공동작업, 건축과 디자인의 분야에서 합리론자들의 도그마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70년대 작품, 사망하기 전까지 계속했던 80년대 작품, 그리고 그의 사후 아들 바르나바가 주도하고 있는 브랜드로서의 동시대 작품까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살고 있는 중앙SUNDAY S매거진 유럽통신원이 마침 귀국해 한국 전시를 참관하고 그 의미를 덧붙여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테이블 윗 부분(1950년대), Wood. Printed, lacquered and painted by hand.

‘바시아마노(Baciamano)’ 팔걸이 의자(2014), collection designed by Nigel Coates and Barnaba Fornasetti

거울 ‘옵티컬(Optical)’(2011). Wood and four convex mirrors. Printed and lacquered by hand.



포르나세티가 이렇듯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세련된 감각을 지닌 숙련된 장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종이·세라믹·유리·가죽·섬유·나무 등 여러 재료를 다루는 전문 분야에서 요구하는 작업 기술을 몸에 익히고 있었기에, 1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미감이 느껴지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는 당시의 유행과 트렌드에 굴복하지 않았다. 동시대의 유행에 부응하느니 차라리 키치한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겠다는 예술가로서의 입장이 확고히 서 있었다. 또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탁월한 것을 사기보다 그냥 ‘상표’를 사는 것에 익숙해졌음을 통탄했다. 시대적 흐름에 편승함은 독창성이 떨어지는 증거라 생각했기에, 스스로는 “유행 타지 않을 만한 유행을 창조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명상의 미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렇게 응축된 최소한의 것을 작품에 담았다. 자연의 형상을 탐구하고, 그것을 잊어버린뒤 다시 생각해내며, 자신만의 형상을 내면에서 재창조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 대신 기억에 의존하여 작업했는데, 그러지 않는다면 미술이 창조가 아닌 복제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자신만이 느끼는 사물의 본질을 그리려 노력했기에 포르나세티는 환상과 초현실 세계를 넘나들며 합리적이지만 역설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신비한 작품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피에로 포르나세티의 뮤즈인 소프라노 리나 카발리에리 사진(맨 왼쪽)과 그의 얼굴을 변형해 접시 위에 그린 작품들

의자 ‘룩스 그스타드(Lux Gstaad)’(2009). Wood. Printed, lacquered and painted by hand. Barnaba Fornasetti

부머랭 체어 ‘레오파드(Leopard)’(1950년대 초기). Wood, printed, lacquered and painted by hand



[소프라노 리나 카발리에리를 뮤즈로]



이번 전시를 위해 아들 바르나바 포르나세티는 방대한 아카이브에서 엄격히 선정한 1300여 점의 대표작을 주제별로 모았다. 아버지의 예술혼, 창작력과 장인정신을 그대로 물려받아 포르나세티의 디자인을 생산하고 되살리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바르나바는 아버지의 위대함과 작품세계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도록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터다. 그는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경계를 없애고 작가와 공방의 싸인이 들어간 맞춤형 수공예품이 디자인 제품으로 대량생산화 될 수 있다는 포르나세티의 예술혼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췄다.



사실 피에로 포르나세티의 작품세계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다양하다. 연대별이 아니라 유사성과 불일치, 친숙함과 대조 등에 초점을 맞춰 14개의 섹션으로 구분해 전시 공간을 연출한 이유다. 전시된 디자인들은 독창적이고 건축학적이며 장인들의 방식을 따라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수공예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대량생산에 포커스를 맞춘 패키지 상품들도 가끔 보였다.



재료의 사용도 눈여겨볼 만하다. 하이테크 시대에 선호되는 재료보다는 단순하고 다가가기 쉬운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해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수공예의 흔적을 느끼도록 했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테마는 해·카드·어릿광대·손 같은 것이지만 아이콘은 뭐니뭐니해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하던 오페라 가수 리나 카발리에리(Lina Cavalieri·1875~1944)의 수수께끼 같은 얼굴 아닐까. 피에로 포르나세티는 19세기 말에 발간된 프랑스 잡지를 뒤적이다가 카발리에리의 사진에 시선이 꽂혔다. 그녀는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력적인 소프라노였다. 이탈리아의 시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는 그녀에게 자신이 쓴 소설 『일 피아체레』를 선물하며 “이 땅에 살아있는 비너스의 증거”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955년에는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주연한 전기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제작되기도 했다. 포르나세티는 아름답지만 흔하지 않고, 무표정하면서도 몽환적인 리나의 얼굴을 1952년 처음으로 그린 후 뮤즈로 삼아 동물·도둑·동양의 공주·남자·가면 쓴 여인 등 350점의 변형된 디자인으로 표현했다. 카발리에리의 얼굴을 다채롭게 변형시킨 한정판 아트북 『Tema e Variazioni(테마와 바리에이션)-첫 번째 에디션부터 100번째 에디션까지』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우산꽂이 ‘아프가노’(1950년대), Metal. Printed, lacquered and painted by hand



[우산꽂이와 쟁반 속에 표현한 초현실 세계]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포르나세티를 대표하는 아이콘의 세계가 펼쳐진다. 오브제와 병풍, 영상과 테이블 중에는 이탈리아의 건축가 지오 폰티가 디자인하고 포르나세티가 발전시킨 장식장도 있다. 선반을 잡아 당겨 열면 가구 내부에 입체적으로 그려진 그래픽이 펼쳐지는 이 장식장은 이미 열려있고 만질 수도 없어 2차원이 3차원으로 바뀌는 경험은 할 수 없지만 포르나세티의 상상력과 작품성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동선은 포르나세티가 평생 수집한 책과 잡지, 그의 창작활동에 영감을 준 이미지 자료와 관련 문서 및 책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제품을 따라 이어진다. 그는 직접 책을 만들기도 했고, 장식장·테이블·병풍·벽지·천 등에 책의 패턴을 자주 사용했다. 책이 가득 꽂힌 책꽂이 병풍이나 테이블 위에 흐트러진 듯한 책들은 시각적 착시를 일으켰다. 가지런히 쌓아놓은 책 사이를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이 뛰어다니며 우르르 무너뜨리는 그림의 패브릭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짓게 했다.



검정 연필, 인디안 잉크와 펜으로 그린 드로잉이 전시된 세 번째 공간은 포르나세티의 아이덴티티가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다. 판화에 사용되는 모든 기법과 한 장만 찍어내는 모노타입을 사용했다. 사실 이미지를 펜으로 표현하는 기법은 포르나세티의 트레이드 마크다. 판화에 쏟은 열정과 관심은 그로 하여금 예술 출판사(피에로 포르나세티 아트 퍼블리싱 하우스)를 설립하게 했고, 덕분에 조르조 데 키리코·카를로 카라·알베르토 사비니오·루치오 폰타나 같은 당대 최고의 화가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 포르나세티가 제작한 잡지의 표지 및 포스터, 달력 광고 간판, 로고타이프, 선전물 등의 아이디어 스케치와 인쇄물을 보면 아티스트와 시각 디자이너의 경계가 없음을 느낄 수 있다.

전시장에 설치된 장식장

스크린 ‘발판 사다리(Stepladder)’(1955). Wood. Printed and lacquered by hand

서랍장 ‘팔라디아나(Palladiana)’(1951). Wood and brass. Printed 전시장에 설치된 장식장 and lacquered by hand

서랍장 ‘팔라디아나(Palladiana)’(1951). Wood and brass. Printed and lacquered by hand

다음 방은 포르나세티의 작업실이다. 이젤 위로 자화상이 보이고 초기 드로잉, 스케치, 일러스트, 그림으로 구성했다. 각기 다른 액자에 끼워진 그림은 재밌고 독특하다. 머리 속에서 작업 중인 또 다른 자아, 여전히 금기시 되고 있는 성기(性器)라는 주제를 장난감이나 액세서리처럼 사용한 일련의 스케치는 아티스트들에게 자유로운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다. 50~60년대 지오 폰티와 다양한 장르의 협업을 통해 만든 장식품 및 스카프도 볼만하다. ‘불타는 도시 ‘날아다니는 이탈리아’ 등의 프린트를 통해 몽환적인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코모 호수 동쪽 바렌나에 있는 가족 별장의 거실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공간도 흥미롭다. 포르나세티에게 이곳은 건축과 장식의 관계를 실험할 수 있는 실습 공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무 특징이 없던 평범한 호숫가의 집을 상상력과 아이디어로 장식하며 공간과 규칙의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

책상 ‘비지팅 카드(Visiting cards)’(1950년대 초기). Wood. Printed, lacquered and painted by hand



다음 공간은 수집가로서의 그를 알 수 있는 방이었다. “새로운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이미 나와있다”고 주장하던 포르나세티는 좋아하는 물건을 수집하고 그것을 활용해 새 제품을 탄생시켰다. “창작이란 기발한 창의력의 시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주어진 주제에 대한 변형에서 오는 결과물”이라는 그의 생각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이 공간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벽장식용 접시들도 즐길 수 있다.



포르나세티의 몽환적인 세계를 높이 2.5m, 폭 50cm의 모노톤 패널 32개로 표현한 ‘형이상학의 방’을 지나자 벽면 가득 알록달록한 우산꽂이가 붙어있는 방이 나왔다. 그는 50년대 초반부터 70년대 사이에 당시 변전소에서 단열 용도로 쓰이던 원통형 매조나이트 목자재 튜브에 심취해 있었는데, 이를 램프 받침대, 휴지통, 우산꽂이로 재탄생 시켰다. 포르나세티가 우산꽂이와 함께 장식적인 용도로 자주 사용했던 쟁반도 볼거리다. 디자인과 형태, 주제나 양식 면에서 포르나세티 예술 감각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직사각형·원형·타원형 형태로 제작된 쟁반은 이미 460개가 넘는데, 그 중 100여점이 군무를 추는 무대 위 발레리나처럼 공간을 가득 메우며 장관을 연출했다. 한 쪽 벽면에는 쟁반을 팔에 얹은 포르나세티의 대형 흑백사진이 이들을 지휘하듯 위풍당당하게 걸려있었다. 이밖에 토니 메네구조가 제작한 ‘일상의 경계로부터’와 비르질리오 빌로레시가 제작한 ‘똑똑’의 초현실적 예술영화 2편도 작가에 대한 이해를 더한다.



지난 11월 초 밀라노 중심부에는 500평방미터 규모의 포르나세티 플래그십 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또 12월 1일과 3일 밀라노 트리엔날레의 떼아트로 델라르테 극장과 2017년 1월 10·12·13일 피렌체 페르골라 극장에서 상영될 모짜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무대 장식도 맡을 예정이어서 그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S매거진 유럽통신원 sungheegioielli@gmail.com,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아트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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