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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연재소설] 팬옵티콘과 함께 마지막 퍼즐을 풀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6.11.27 00:01
수리는 아빠의 말씀을 떠올렸다.

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63> 이스터 섬

“인류의 진화는 한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 커다란 나무를 보렴. 굵직한 나무 몸통에서 뻗어나간 수많은 줄기와 그보다 더 많은 가지가 있다. 이렇게 큰 나무가 자라다 보면 잘려나가서 상처 난 가지도 생기고, 병이 나서 죽는 가지도 생기기 마련이지. 우리 인류는 아마 이 수많은 가지 중의 하나일 거야. 어쩌면 아주 작은 가지일 수도 있고. 이 이야기는 오래전에 마루 아빠가 나에게 해준 얘기란다. 우리의 초기 인류 중 한 무리가 아주 우연히 돼지와 교배를 했고 그 우연하고 이상한 교배를 통해서 생겨난 소수의 인류가 있다는 거야. 물론 그 교배인류가 지금도 우리 인류 속에 살아있는지, 아니면 소멸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DNA 속에 스며 들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 우리는 가끔 사람 심장을 대신하기 위해 돼지 심장을 쓰기도 하거든. 하여튼 이 교배인류는 극히 일부였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수리는 분홍 돼지의 이야기가 그저 지어낸 소설이거나 헛소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폴리페서가 창조하려던 인간이 바로 그 교배인류가 아닐까?

스키드블라니르는 해안가에 무사히 안착했다. 이스터 섬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수백 가지 색상의 모래알들이 해안을 뒤덮고 있었다. 발로 밟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모래알이었다. 사비와 골리 쌤 그리고 아메티스트는 벌써 보석 같은 모래알을 주워 목걸이를 만들고 있었다.

“여자들이란… 참….”

모나는 이렇게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수리는 이런 모나의 모습이 어색했지만 뭉클하기도 했다. 늘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모나였다. 모나는 이제 수리와 친구들을 진짜 가족으로 여기고 있었다.

“어딜 가나 거인들이군.”

수리는 그저 웃었다. 섬은 해안가를 벗어나면 작은 언덕이 빙 둘러 있는 형태였다. 그 언덕 너머에서 거인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인들의 모습은 섬의 해안가에 세워둔 거인 석상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책에서 본 이스터 섬 거주자들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는데… 물론 피부색은 달랐지만….”

마루는 거인들의 모습이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그래. 폴리네시안이라고 했지. 학자들은.”

수리는 거인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거인들은 수리가 다가오자 걸음을 멈추었다.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수리는 반가움의 표시로 손을 흔들었다.

“이게 먹혀야 할 텐데….”

거인들은 아무런 표정도, 말도 없었다. 수리는 살짝 당황했다. 친구들은 좀 떨어져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고 모나는 수리를 보호하기 위해 바로 뒤에 있었다. 거인 하나가 수리에게 손짓을 했다. 따라오라는 손짓이었다. 수리는 모나를 쳐다보았다. 모나가 수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리와 모나는 거인들을 따랐다.


고도로 발달한 거인들의 도시에서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간 수리와 친구들은
팬옵티콘을 만나 힌트를 듣고
수리는 가장 강력한 단계로 레벨업하는데

 
시공간을 초월한 여정의 정체
거인들이 사는 곳은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도시, 그것도 문명화된 도시였다. 현대로 말하자면 당대 대표격인 미국의 뉴욕을 보는 것보다 놀라웠다. 그 정도로 발달된 문명도시였다.

“수리야.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스터 섬이 아닌 것 같아. 여긴 이스터가 아니야.”

사비는 확신하는 듯했다. 전혀 다른 문명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시의 건물이 피라미드 형태였다. 수리와 친구들이 처음 여정을 시작했던 그 피라미드 비행선과 똑같았다.

“우리가 그때 탔던 그 피라미드 비행선은 이스터 섬의 거인들이 보낸 비행선이었나 봐.”

수리는 꿈과 예언·문자·암호 그리고 여정 등이 어쩌면 처음부터 계획되었던 것일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수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빠들이 거인들의 비밀과 연관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폴리페서가 이 계획의 일부일까? 이 계획의 전체일까? 머릿속이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수리는 친구들과 거인들의 피라미드로 들어갔다. 처음엔 기다란 복도가 있었다. 복도의 벽엔 수리가 그동안 보아왔던 바로 그 문자들이 빼곡하게 있었다. 꿈에도 나타났고 거인들이 보여주기도 했었고 폴리페서가 그렇게 알아내려고 했던 그 문자들이, 이곳에는 역사의 한 장이 되어 있었다.

“이들에게 이 문자는 우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문자의 의미와 다른 것 같아.”

수리는 혼자 중얼거렸다.

긴 복도가 끝나는 곳에 넓은 홀이 나타났다. 생전 처음 보는 재질의 돌이 홀 바닥에 깔려있었다. 푸른빛을 내는 바닥은 파도가 움직이듯 조금씩 조금씩 살아 움직였다. 그리고 정면으로 어둠만이 보였다. 수리는 흑암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무엇인가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잠시 후, 번쩍 했다. 번개가 친 듯했다. 아니, 그보다 훨씬 강렬했다.
“아….”

수리는 드디어 바로 눈앞에서 똑똑히 보았다. 바로 팬옵티콘이었다. 눈이었다.

“당신은….”

“난 어디든지 있다.”

팬옵티콘은 말했다.

“난 아직… 당신에게 문자의 비밀을 다 말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당신을 만나게 되니….”

수리는 몹시 당황했다.

“네가 이곳에 온 것이 마지막 퍼즐이다.”

수리는 말문이 막혔다. 수리가 이스터 섬에 온 것이 마지막 퍼즐이라면 문자의 비밀을 다 풀었어야 하는데, 수리는 아직 풀지 못했다. 전체 문자를 다 외우고 있지만, 각각의 의미는 알고 있지만, 아직 전체의 의미는 알지 못했다.

“넌 레뮤리아 왕국에 갔었고 요나구니에 갔었다. 그리고… 그 전체를 생각해 보아라.”

수리는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아빠는 아직 요나구니에 있었다.

‘요나구니, 요나구니… 레뮤리아, 이스터….’

수리는 속으로 끝없이 반복했다.

“수리야! 난 알았어!”

사비가 소리쳤다.

수리도 소리쳤다.

“나도!”

수리는 팬옵티콘을 향해 말했다.

“누이의 땅, 물의 땅, 미친 새들의 땅… 힐라몬스터. 맞죠?”

마루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갑자기 무슨 얘기야?”

“우리는 사실 멀리 간 것이 아니야. 그 땅을 돌고 있었어.”

수리가 이렇게 말하자 마루는 곧바로 반박했다.

“말도 안 돼. 우리가 갔던 곳은 전혀 다른 시간대였어. 우리는 그 땅을 돌고 있는 게 아니야.”

수리가 마루를 쳐다보았다. 눈이 빛을 발하며 번득였다.

“반드시 같은 시간대여야만 한다는 법칙이라도 있어?”

마루는 말문이 막혔다.

수리가 방문했던 땅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문명이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전혀 다른 사람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 땅의 문명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기는 했지만 서로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 않았기에, 서로 잘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팬옵티콘과 폴리페서만은 모든 문명과 모든 땅과 모든 시간대에 걸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팬옵티콘은 우주를 창조했다고 말하고, 폴리페서는 인류를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짜 창조자는 누구일까?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수리가 이 전체를 파악할 능력이 생겼다면 결국 수리가 이 모든 시간대의 모든 문명을 통합시키는 역할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이 여정이 시작된 것일 터였다. 바로 그것이 이스터 섬 문자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 알겠어요.”

수리는 팬옵티콘에게 자신있게 말했다. 팬옵티콘은 수리를 한참 쳐다보다가 눈을 감았다. 눈이 사라졌다. 팬옵티콘의 모습도 사라졌다.

그때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거인들이 쿵쿵거리며 급하게 움직였다. 수리도 밖으로 달려나갔다. 또 다른 거인들이었다. 그들은 붉은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귀가 거의 없었다.

“단이족이야.”

장이족과 단이족 거인들이 전쟁을 시작하고 있었다. 수리는 순간 긴 복도의 문자들이 생각났다.

“그 문자들을 옮겨 적어야겠어.”

“미쳤어? 어떤 천재라도 그걸 다 외우지는 못해. 바보야.”

마루가 외쳤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지. 만약에 장이족이 패배한다면 이들의 문명도 사라진다고. 문자를 옮겨 적어야 해.”

미친 사람처럼 긴 복도를 달려가는 수리를 향해 사비도 외쳤다.

“어떻게? 어디다?”

수리는 긴 복도로 달려가서 무엇이든 뒤지기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끄집어냈다. 그리고 드디어 무언가를 찾아냈다. 나무였다. 이스터 섬에 자생하는 깊은우물오크나무였다. 수리는 그 나무를 작고 반듯하게 자르기 시작했다. 쫓아온 모나와 친구들도 하는 수 없이 수리를 도와 깊은우물오크나무를 잘랐다. 지금의 태블릿PC만 한 크기였다.

수리는 또 필기구를 찾았다. 홀을 돌아다니며 필기구가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 찾았다. 팬옵티콘이 있던 자리에 이상한 물체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로 기다란 카치나였다. 수리는 그 카치나를 손에 쥐었다. 순간 수리의 몸이 부웅 떠오르더니 머리에 박혀있던 황금칩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리의 온몸이 불덩이에 휩싸인 듯했다. 친구들은 두려움에 그저 쳐다보고만 있었다.

“수리는 죽지 않아.”

모나가 천천히 말했다.

“레벨업 중이야.”

마루가 말한 대로, 수리는 또 한 번 레벨업 하고 있었다. 이제 가장 강력한 단계로 진입하고 있었다.

윙윙 탁탁 윙윙 탁탁

수리의 몸에서 신비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음 호에 계속

 
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 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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