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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12월호] “김기춘, 문고리 3인방 권력 나누고 적당히 덮었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6.11.27 00:01
조응천-박관천, 김기춘 명에 따라 조사했지만 3인방과 타협한 비서실장에게 역공당해
3인방은 ‘어둠의 심부름꾼’, 당시 홍경식 민정수석도 대통령과 독대 못해
[중앙포토]

조응천 전 공직기강 비서관과 박관천 전 경정은 2년 전 ‘십상시’ 문건 유출사건 당시 “문고리 3인방과 김기춘 비서실장이 적당히 사건을 덮었다”고 주장했다. 최근 김 전 비서실장은 최순실 사건과 관련해 기자들에게 “최순실 씨를 만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고 말했다.[중앙포토]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은 이미 2년 전 ‘십상시’ 문건 사태 때 조금씩 잉태되고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문고리 3인방의 뒤에는 최씨가 그림자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최씨를 등에 업은 문고리 3인방은 ‘십상시’ 문건 사태 당시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했다. 실세라는 김기춘 비서실장 마저 3인방을 제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김 비서실장과 3인방은 모두 유령과 같은 존재였던 최순실 씨를 정점으로 권력을 분점했다는 꼴이었다.

‘십상시’ 문건 사태 때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2014년 11월 29일 토요일 오후 서울 왕십리 인근 먹자골목에 위치한 지하 호프집에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전 경정과 기자가 자리를 함께했다. 세계일보가 일명 ‘십상시 문건’을 공개한 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각종 감찰·동향보고서 등의 문건 유출 경로를 둘러싼 파문이 연일 계속되던 때였다. 두터운 점퍼에 야구 모자를 쓰고 나온 조 전 비서관의 표정은 비장해 보였다. 굳은 표정의 박 전 경정은 뭔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들의 말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박 전 경정이 먼저 입을 뗐다. “형님(조 전 비서관에 대한 호칭)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설명을 좀 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조 전 비서관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조전 비서관은 “네가(박 전 경정) 기자와 얘기를 하면 들어보고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잘못된 부분은 지적해주겠다”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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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가 11월 14일 추가로 공개한 청와대 동향보고서 문건들. 2014년 입수했지만 공개되지 않았다가 최근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새로 공개했다. 세 개의 문건에는 정윤회-최순실 부부의 동향정보가 담겨 있다.

세계일보가 11월 14일 추가로 공개한 청와대 동향보고서 문건들. 2014년 입수했지만 공개되지 않았다가 최근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새로 공개했다. 세 개의 문건에는 정윤회-최순실 부부의 동향정보가 담겨 있다.

당시 취재기자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은 문건의 유출 경위와 내용의 사실성 여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 전 비서관이 말문을 열었다. 조 전 비서관은 “문건 유출에 전혀 관여된 바 없다”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박 전 경정도 “경찰에 복귀한 뒤에도 청와대 업무와 연속선상에서 챙겨야 할 부분이 있어 일부 참고자료를 들고 나온 건 있지만 언론에 유출한 건 절대 내가 아니다”라고 수 차례 강조했다. 십상시 문건 내용과 관련해서는 두 사람 모두 “찌라시에 나오는 것을 대충 정리해서 윗선에 보고하겠느냐”며 “60~70%는 사실에 부합한 내용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이날 이들은 문건 내용이나 유출 경위 외에 청와대 내에서 자신들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를 놓고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문건을 작성하게 된 경위와 관련해 이들은 “모든 것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고 구두 혹은 문서화해서 보고를 해왔다”고 말했다. 소위 ‘십상시’ 문건 역시 “당시 홍경식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에게 모두 보고가 됐고, 특히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조사를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과 관련해 세간에서는 중병설, 사퇴설, 경질설 등 진위 파악이 되지 않는 다양한 얘기가 돌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어떤 목적으로 허위 내용을 유포하는지 등을 상세히 조사하라”는 김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랐다는 것이 두 사람의 공통된 주장이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각종 동향보고서 등을 다시 윗선에 보고한 뒤로 청와대 내에서는 오히려 조 전 비서관과 박 전 경정을 쫓아내기 위한 유무형의 압박이 계속됐다는 것이다. 당시 두 사람은 십상시 중 중심에 있는 문고리 3인방과 그 뒤에 정윤회 씨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취지의 언급도 했다. 당시만 해도 국정농단의 중심에 정윤회 씨를 포함한 문고리 3인방 등 십상시가 있다는 얘기가 중심이었던 터라 최순실 씨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거론되지 않았다. 하지만 박 전 경정이 조사해 작성한 동향보고서 중 당시에는 공개되지 않았다가 최근 <세계일보>가 추가로 공개한 세 종류의 문건에는 최순실 씨의 얘기가 모두 등장한다.
 
“비서실장 지시에 따랐을 뿐인데…”
11월 14일 세계일보가 추가로 공개한 문건은 ▷2014년 1월6일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로 보고된 2쪽짜리 공식 문건인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 동향’(이른바 ‘최종본’) ▷2쪽인 ‘청 비서실장 교체설 언론보도 관련 특이 동향’(이른바 ‘중간본’) ▷3쪽짜리 워드 형식의 ‘초안’ 성격인 ‘시중여론’이다. 최씨의 이름은 문건 3개에서 모두 등장한다. 특히 ‘시중여론’에는 “십상시들과 정윤회의 모임에서는 공공연하게 ‘이 나라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대통령이더라도 자신의 옛 애인이 나은(‘낳은’의 오타) 딸을 어떻게 배척할 수 있겠느냐?’라는 극치의 말이 서로간에 오가고 있다 함”이라고 적혀 있다. 또 “정윤회는 부인 최순실과의 관계 악화로 별거하였지만 최근 제3자의 시선을 의식, 동일 가옥에 거주하면서 ‘각방’을 사용하고 있다고 함”이라는 내용도 나온다.

실제 조사를 담당한 박 전 경정은 최순실 씨의 존재에 대해 당시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일까. 최근 박 전 경정은 입장을 묻는 일부 기자들에게 “최순실 씨가 대통령보다 권력 순위가 높다고 언급한 발언을 한 게 맞다”며 “최순실의 국정 개입과 관련해 (내부에서) 고언을 한 적도 있다”고 언급했다. 10월 말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박 전 경정은 “내가 그 당시(2014년 문건유출 사건 때를 뜻함) 지금 벌어지는 이 꼴 안 보려고 몸부림쳤던 것”이라는 소회를 피력하기도 했다. 박 전 경정은 또 문고리 3인방과 관련해서 “대통령의 피부다. 옷은 벗어버리면 되지만 피부가 상하면 수술을 해야 한다. 몸이 다친다”고도 했다. 하지만 조 전 비서관이나 박 전 경정은 2014년까지만 해도 최순실 씨의 존재나 영향력을 어렴풋하게 감지하
고 있었을 뿐 전방위적으로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는 것까지 는 미쳐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기춘 비서실장도 문고리 3인방은 어쩌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청와대 안팎에서 돌았다. 홍경식 당시 민정수석도 박 대통령에게 별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2014년 조응천 전비서관은 “홍경식 민정수석도 청와대에 들어온 후 대통령과 제대로 독대 한 번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아무튼 두 사람은 이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당시 민정수석, 비서실장의 권한과 힘을 빌어 문고리 3인방을 중심으로 한 십상시를 견제하고, 필요하다면 (정치적 의미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구상은 정반대의 결과로 돌아왔다.
 
국회의원들이 4인방 접대에 바빠
다시 2년 전 문건 사태 당시로 돌아가보자. 조응천 전 비서관은 기자에게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에 대해 다소 격한 표현을 쓰며 설명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아 조사해서 문서와 구두로 보고했어요. 관련자들이 국정농단을 하고 이상한 얘기들을 퍼뜨리고 있으니 비서실장께서 적절하게 조치하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홍경식 민정수석을 통해 박관천을 잘라야 한다는 얘기가 들려왔어요. 짐작으로는 나(조응천 전 비서관)부터 쳐내려고 했을 텐데 당장에는 박 전 경정부터 정리하는 쪽으로 결론 내렸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자
기들끼리 권력 다툼이라는 얘기 나오지 않도록 적당히 타협하고 엿 바꿔 먹은 거나 다름없는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다음 타깃은 당연히 나였고요.”

실제로 2014년 1월 보고를 받은 김기춘 비서실장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다음 달 보고서 작성자인 박 전 경정을 경찰로 원대 복귀시켰다. 이후 4월에는 조 전 비서관이 경질됐다. 7월에는 민정수석실에 파견된 감찰 담당 경찰들도 모두 원대 복귀시켰다.

두 사람의 얘기는 더 이어졌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역적이나 다름없습니다. 비선 실세(십상시를 지칭)를 쳐내기는커녕 (문고리 3인방과) 적당히 타협하는 길을 택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오히려 (문고리 3인방이) 이를 조사한 우리 쪽과 같이 가지 못하니 잘라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압니다.”

당시 청와대 안팎과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김기춘 비서실장도 문고리 3인방은 어쩌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홍경식 당시 민정수석도 이들 3인방과 비교해 박 대통령에게 별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당시 “홍경식 민정수석도 청와대 들어온 후 대통령과 제대로 독대 한 번 못한 것으로 안다”고 언급했다.

이들이 ‘역적’이라고 언급한 김기춘 비서실장과 관련해 당시 여의도에서는 비서실장의 ‘강남사무실’ 소문도 퍼져 있었다. 최근 당시 이러한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재차 제기되기도 했다. 김 비서실장의 강남사무실은 다름 아닌 그가 청와대 입성하기 전 최순실이 있던 신사동 사무실에서 업무를 봤다는 최근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지난 11월 1일 조응천 의원(더불어민주당)도 ‘박근혜·최순실게이트 국민조사위원회 회의’에서 “김기춘 전 실장은 이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8월 초순까지 최순실이 주거지로 사용하던 신사동 빌딩 7~8층을 사무실로 얻어서 정권 초기에 프레임을 짰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의혹과 관련해 김기춘 전 실장은 최근 “비서실장 당시 최순실 씨 관련 보고를 받은 적이 있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보고받은 일이 없고 최순실 씨를 알지 못한다. 만난일도, 통화한 일도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문고리 3인방과 지근거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전 청와대 관계자는 “김 전 비서실장이 최순실 씨를 전혀 모른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문고리 3인방 중 정호성 전 비서관만 구속된 상태다.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은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한 차례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터져나오는 각종 의혹을 놓고 봤을 때 3인방 모두 최순실 씨의 존재와 그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 의심이다. 오히려 이들은 최씨를 등에 업고 자신들의 권한과 권력을 더 공고히 하는 지렛대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

최씨의 존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이전에도 문고리 3인방은 그야말로 권력 실세였다. 한나라당 시절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전여옥 씨는 최근 <월간중앙>과 만난 자리에서 문고리 3인방을 두고 “정윤회·최순실 씨의 ‘어둠의 심부름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또 “(고 이춘상 씨를 포함해) 당시 4인방은 말수가 적었는데 2011년 말 박 대통령이 비대위원장이 된 후 (위상이) 변했다”며 “당시 국회의원들이 4인방을 접대하기에 바빴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자 3인방은 날개를 달았다. 인사 및 재무를 관장하는 이재만 총무비서관이 임기 초반의 ‘밀봉·불통 인사’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또 “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을 거치지 않고서는 장관조차도 대통령을 만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3인방 중 현재까지는 정 전 비서관만 검찰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했다. 정씨를 오랫동안 지켜봐왔던 지인 A씨의 증언을 들어보자.

“정씨는 성실함, 꼼꼼함 그 자체다.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도 1주일에 3~4일은 집에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로 일만 했다. 최근 검찰에 압수된 정씨 휴대전화에서 대통령과의 통화내용이 녹음돼 있다는 것을 보고 나는 이해하는 측면이 있다. 항상 잠이 부족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단어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세세하고 정확하게 이행하기 위해 녹음을 한 것으로 안다. 최씨 목소리가 녹음돼 있으리라는 건 나 역시 상상도 못했다.”

 
“대통령 말씀 녹음한 건 잠이 부족했기 때문”
정 전 비서관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임이 얼마나 두터웠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정권 초기였던 2013년 10월 정청래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에게 “정호성 비서관이 8월 1일 중국에서 북한 국방위원회 소속 고위 관계자를 만나고 왔다”며 구체적 날짜까지 제시하며 사실 확인을 요구했다.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은 공식 부인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정권의 최측근이자 핵심 실세가 맡기 마련인 대북 비밀접촉의 실무자로 정 비서관이 거론되는 자체가 그의 영향력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왼쪽부터) 이들 중 정 전 비서관만 최순실에게 청와대 문서를 유출한 혐의로 구속됐다. [중앙포토]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왼쪽부터) 이들 중 정 전 비서관만 최순실에게 청와대 문서를 유출한 혐의로 구속됐다. [중앙포토]

3인방 중 맏형인 이재만 전 비서관과 수행비서 역할을 오래 해온 안봉근 전 비서관 역시 정 전 비서관 이상의 영향력이 있었다. 이들은 크고 작은 인사에 자주 개입한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조응천 의원은 2014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년(2013년) 10월 말, 11월 초 청와대에 들어올 예정인 경찰관 1명을 검증하다가 ‘부담’ 판정을 내렸는데 안봉근 비서관이 전화해 ‘이 일에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한 달 뒤 민정수석실 소속 경찰관 10여 명을 한꺼번에 내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후임들을 다 단수로 찍어 내려왔다”며 구체적인 인사개입 정황을 언급한 바 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니 윤 관광공사 감사 임명에 청와대 3인방 중 이재만 비서관이 개입했다”는 등 이 비서관이 정부 부처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언을 했다. 박관천 전 경정은 역시 2014년 3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문고리 3인방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며 “청와대가 문고리에 놀아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문고리 3인방과 정윤회 씨는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긴밀했던 관계가 이전보다 많이 옅어졌다고 한다. 지난 대선 때 3인방과 함께 대선캠프에서 함께 일한 전 청와대 관계자 B씨는 “3인방과 하루가 멀다 하고 같이 일했지만 정윤회 씨를 대선운동 과정에서 본 적이 없다”며 “청와대 들어온 후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정씨가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숨기고 움직였을 수 있지만 과거에 비해 박 대통령이 정씨를 가까이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윤회-최순실 부부 관계가 대통령의 정씨에 대한 신임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B씨는 “박 대통령에게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최순실 씨와 그 자매들이 가장 가깝고 믿을 수 있는 존재였다”며 “3인방은 최씨와 대통령 사이의 메신저이자 가교 역할을 한 충실한 심부름꾼”이라고 말했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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