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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균형의 왕 #1

중앙일보 2016.11.27 00:01
<반 반>
 
유튜브를 서핑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불법으로 올린 음악을 불법으로 들었다. 우린 똑같은 놈들이다. 노래가 끝난 후 자동으로 다음 노래로 넘어갔다. 흘러나온 건 이장우의 ‘훈련소로 가는 길’. 꽤 오랜만이었다. “날 기다리진 마 네게 부담 주긴 싫어 / 좋은 사람 만날 기회를 나 때문에 피하지는 마 / 하지만 그래도 네가 나를 못 잊어 아무것도 없이 새로 시작할 날 허락한다면 / 그땐 너와 결혼을 하고 싶어” 멍하니 앉아, 끝까지 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 노래를 들으려고 한 것처럼.
 
옛날이야기 좀 하자. 90년대의 이장우는 공일오비의 발라드를 부르기 위해 태어난 소년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이장우는 채 스무 살도 안 되었을 때부터 세상의 모든 이별을 다 겪어본 것 마냥 노래를 불렀다. ‘훈련소로 가는 길’은 그가 23살 때, 그러니까 공일오비의 끝자락이자 자신의 솔로 커리어가 시작될 무렵에 부른 노래다. 그리고 이 노래는 내가 가장 아끼는 90년대 이별 노래 중 하나다. 나는 이 노래 안에서야 비로소 휴식한다.
 
“낭만은 오글이 되었고, 감성은 중2병이 되었고, 여유는 잉여가 되었다. 열정이란 말이 촌스럽지 않던 그 시절이 그립다.”라는 말을 언젠가 인터넷에서 읽은 적 있다. 만약 그 사이트가 페이스북이었다면 나는 좋아요를 누른 후 댓글을 달고 공유까지 했을 것이다. 진짜가 진짜를 알아보듯 시대의 부적응자가 시대의 부적응자를 알아본 순간이었으니. 몇 년 전, ‘훈련소로 가는 길’은 실제로 한동안 나의 컬러링이었다. 그때 나이 차이 좀 나는 여 후배가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런 건 아저씨 노래 아니에요?” 하, 시대의 무브먼트란!
 
하지만 오해는 말자. 당신이 교양인이라면 날 정확히 이해하란 말이다. 나는 변해버린 모든 걸 서글퍼하며 옛날이 좋았다고 소주나 마시는 사람은 아니다. 예전에는 ‘낭만’으로 통하던 것이 지금은 ‘오글’이 되었다고 해서 꼭 나쁜 세상이 된 건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들 식의 새로운 낭만이 있을 것이다. 모든 좋았던 것이 전부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꼰대가 된다. 게다가 나는 착시도 잘 간파해낸다. 요즘 지하철에서는 전부 스마트폰을 보고 있어서 서글프다고? 옛날에는 전부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내 것’ 역시 존중받기를 원한다. 대세와 어긋날지라도 말이다. 나는 일부러 짧은 글을 연습하고, 웹툰 창작에 도전하며, 카드 뉴스를 즐겨보는 사람이다. 사실 아이폰은 내 신체의 일부고 스티브 잡스는 나의 신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바이닐과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고, 시집을 읽으며, 윤종신이 90년대에 그려낸 사랑의 방식을 동경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의 절반은 시대의 무브먼트를 따라가지만 나머지 절반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나의 바람은 키가 작다. 세상을 따라가면서도, 그저 늘 약간은 여전히 나다울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만약 작은 바람을 하나 더 꼽을 수 있다면 이것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다른 동네보다 우리 동네에 더 많이 사는 것. 연남동 동네친구 구합니다.
<늦어버린 남자>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H2>를 작년에야 처음으로 읽었다. 나를 위해 태어난 이 만화를 왜 이제야 읽었을까. 잠시 신을 원망한 후 그 감동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러자 댓글이 달렸다. “이번에 처음으로 읽으신 건가여?” 이 말에는 “너 뭐 하다가 이제야 그 걸 읽었니?”라는 부분이 생략돼 있다. 나의 실수다. 두 글자를 더해 거짓말을 했어야 했다. “<H2> ‘다시’ 읽었는데 너무 좋네요. 전에 읽었을 때보다 더 감동적인 듯.” 중학교 때 <슬램덩크>를 세 번 읽을 시간에 두 번만 읽고 <H2>를 한 번은 읽어놨어야 했다. 그랬다면 오늘날의 수모도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고전이란 남보다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날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대외적으로 고전은 무조건 ‘다시 읽는 것’으로 할 꼬얌.
 
나스(Nas)의 [Illmatic]은 고전이다. 닥터 드레(Dr. Dre)의 [The Chronic]도 고전이다. 우탱 클랜(Wu-Tang Clan)의 [Enter The Wu-Tang]과 갱 스타(Gang Starr)의 [Moment of Truth]도 고전이다. 나는 늘 음악을 듣는다. 원고를 위한 것이든 아니든, 힙합이든 아니든, 옛 노래든 최신 노래든, 나는 늘 음악을 듣는다. 하지만 여러 음악으로 뻗어나가다가도 결국은 정기적으로 이 앨범들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다 다시 다른 음악들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길 반복한다. 나에게 고전은 고향이다. 고향은 배신하지 않는다. 늘 가장 정확한 안식을 준다.
 
하지만 고전은 때때로 날 혼란스럽게 한다. 고전은 세월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것이다. 그렇기에 매우 훌륭한 것이기도 하다. 윤종신의 [우(愚)]는 고전이다. 나는 이 앨범을 세상에서 2위로 사랑한다(1위는 나 자신이다). 그러나 당사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듯도 하다. 몇 년 전, 나와의 인터뷰에서 윤종신은 이 앨범이나 혹은 <잘 했어요> 같은 노래에 대해 “지금 와서 보면 조금 유치한 감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님, 지금 나의 고전을 깐 건가요? 물론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과거를 후회한다. 이런 맥락의 크고 보편적인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치함이란 어른만이 느끼는 감정이다. 윤종신은 어른이 된 것이다.
 
너바나(Nirvana)의 [Never Mind] 역시 고전이다. 앨범뿐 아니라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당시에 취했던 행동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영감을 안긴다. 하지만 커트코베인이 당시에 이미 어른이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고,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고전은 ‘성숙’이나 ‘균형’ 따위와는 별 상관이 없다. 대신에 우리는 고전을 만들어내기 위해 중2병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중2병을 이미 졸업했다면 고2병을 앓아야 하고, 고2병도 졸업했다면 대2병이라도 앓아야 한다. 수많은 고전이 그들이 어른이 되기 전 치기와 패기의 경계 어딘가에서 탄생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어른을 갈구하며 벗어나고만 싶었던 시절이 실은 고전을 탄생하게 만든 원천이라는 진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늦어버린 지금의 나.
<우리 닮았나요>
 
태어났을 때부터 힙합을 좋아하진 않았다. 태어났을 땐 분유를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유보다 힙합을 더 좋아한다. 그렇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만약 지금 내가 “힙합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하고 진실한 가사가 좋았어요.”라고 한다면 그 말은 거짓이다. 힙합을 처음 접했을 땐 영어 랩을 모두 이해하면서 듣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즉 힙합이 한국인인 나에게 처음으로 스스로를 어필했던 건 영어로 된 ‘메시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운드’를 통해서였다. 사운드가 먼저였고 메시지는 조금 후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힙합의 ‘샘플링’ 작법이 나를 매료시켰다. 비록 처음은 이랬다. 루프를 통해서 무한히 반복되는 이 소리가 프로듀서가 직접 연주한 것이 아니라고? 이미 남이 연주해놓은 걸 가져다가 쓴 거라고? 그런 걸 샘플링이라고 부르고 그게 힙합의 장르적 핵심이라고? 헐. 그 후 난 ‘충격-부정-분노-타협-우울-수긍’이라는 6단계를 겪게 되었다, 는 건 드립이고, 다만 일종의 배신감이 들었던 건 맞다. 뭐야 대체 이 음악은. 이런 음악은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는 걸.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힙합 곡과 그 힙합 곡이 샘플링한 원곡을 비교해가며 듣는 과정은 곧 나의 취향이 저격당하고 끝내는 점령당하는 과정이었다. ‘남이 애써 창작해놓은 음악을 날로 가져다 먹는 음악’이 아니냐는 나의 의구심은 이내 ‘힙합은 놀랍도록 새롭고 혁명적인 음악이야!’라는 감탄으로 바뀌었다. 힙합은 샘플링을 통해 모든 음악을 ‘재창조’하고 있었다. 원곡의 비피엠을 줄이고 늘이면서, 원곡을 토막 내고 재배열하면서, 원곡의 ‘보컬’을 랩의 ‘배경’으로 쓰면서, 그리고 10개의 원곡에서 추출한 10개의 다른 소스를 콜라주해 1개의 곡으로 만들어내면서 말이다. 원곡에서는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인 소리가 샘플링을 통해 힙합 곡의 핵심이 되었고, 그 덕분에 세상의 재조명을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힙합이 기존 음악에 기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힙합은 지나간 음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샘플링을 통해서.
 
실제로도 힙합의 샘플링 작법은 ‘파격’이자 ‘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것은 기존 음악 작법의 답습은 물론 변주도 아니었다. 카테고리가 완전히 달랐다. 전에 없던 새로운 무엇이었던 것이다. 이 점이 나를 자극하고 매혹시켰다. 나는 햇수로 14년째 한국에서 힙합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힙합에 대한 책을 쓰고 힙합영화제를 처음으로 만드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무가치하거나 미련한 짓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전에 없던 새로운 길을 앞장서서 개척하며 깃발을 꽂는 일이다. 힙합을 다루며 힙합과 닮은 삶을 사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작가 소개    
대중음악 평론가, 혹은 힙합 저널리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네이버뮤직>, <카카오뮤직>, <에스콰이어>, <씨네21> 등에 연재 중.
레진코믹스 힙합 웹툰 <블랙아웃> 연재 중.
<서울힙합영화제> 기획 및 주최.
<건축학개론>을 극장에서 두 번 봤고 두 번 다 울었음.
 
주요 저서 및 역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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