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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차례 암살 시도에도 살아남은 피델 카스트로

중앙일보 2016.11.26 15:09

쿠바 공산주의 혁명의 상징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의장은 공산주의 이념 아래 49년간 쿠바를 통치한 살아있는 역사였다.

하지만 그는 최근 수 년 동안 공개 석상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자제했다.

지난 4월 수도 하바나에서 열린 공산당 전당대회 폐막식에 등장해 대중을 놀라게 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내가 이 홀에서 말하는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라며 혁명 동지 및 당 동료에게 사실상의 고별사를 전했다.

1959년 1월 쿠바인들의 절대적 지지 아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카스트로 전 의장은 공산독재정권을 수립하며 총리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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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의장직을 물려준 그는 재임 기간 쿠바 내 미국 자산을 국유화하고 이에 미국이 쿠바산 설탕 수입을 제재하면서 급격한 경제 침체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카스트로 전 의장은 61년 미국과 국교 단절 이후 소련과 손을 잡고 공산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카스트로 전 의장이 물러난 지 8년여만인 2014년 12월 미국-쿠바 간 국교정상화가 타결됐다.

올해 상반기 쿠바행 관광객이 20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쿠바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카스트로 전 의장은 지난 3월 기고를 통해 “우리는 제국으로부터 받을 게 아무것도 없다”며 적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 CNN은 카스트로 전 의장이 장수를 한 것을 두고 “본인만큼이나 여러 사람이 놀랄만한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암살 위협을 받은 인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카스트로 전 의장의 경호담당 파비안 에스칼란테는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개 방법”이란 논픽션을 집필해 미국 중앙정보국(CIA) 등이 카스트로 전 의장을 죽이기 위해 동원했던 각종 암살 시도를 상세히 전하기도 했다.

실제로 쿠바 정부가 CIA 문서를 바탕으로 확인한 카스트로의 암살기도 횟수는 2006년까지 638회에 달했다.
 
저격은 물론 시가ㆍ음식에 독을 주입하는 방법, 야구공에 폭탄을 내장하는 방법 등 수법도 다양했다.
 
638차례 모두 쿠바 정부가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 실패에 그쳤다.

가장 위협적이었던 암살기도는 1961년 뉴욕 시내에서 카스트로를 겨냥한 폭탄테러 계획이었다.

가장 유명한 암살 시도는 밀크셰이크 사건이다.

매일 습관처럼 밀크셰이크를 마셨던 카스트로의 우유에 독약을 타 독살하려고 했다.

하지만 얼었던 우유가 녹으면서 독약의 약효가 떨어져 계획은 실패했다. 미국은 카스트로의 시가에 독약을 묻혀 암살하려 했으나 그의 금연 선언으로 이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미인계도 썼다. 마리타라는 이름의 카스트로의 옛 연인을 포섭해 그를 유인하려 했고 그녀를 카스트로 집에 들여보내 물병 속에 독약을 집어넣어 작전이 성공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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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스트로의 “보고 싶었다”는 고백에 옛 감정이 살아난 마리타는 카스트로 암살을 포기했다. 에스카란테는 “카스트로는 테러나 암살을 직감하는 능력이 있다”고 회상했다.
 
공산주의 혁명으로 쿠바에서 운영하던 호텔, 카지노 사업 운영권을 빼앗긴 미국 조직폭력배들도 1959년 카스트로가 취임한 이래 갖가지 암살 시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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