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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음악] 안주하는 권력, 거스르는 예술

중앙일보 2016.11.26 01:00 종합 31면 지면보기
정경영 한양대 교수·음악학자

정경영
한양대 교수·음악학자

마법사는 ‘그’에게 왕이 될 거라고, 그리 돼야 한다고 유혹한다. 한편 ‘그녀’를 구하러 온 기사는 자기의 과거를 묻지 못하게 한다. 묻지 않는다면 함께할 것이라고 설득한다. 이 이야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3시간20분 동안 꼼짝도 않고 공연에 빠져 들어갔던 이유가 말이다. 남 얘기 같지 않은 이야기, 부정한 지도자가 만들어낸 위기와 당연히 물어야 할 것을 묻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권력에 관한 이야기, 이것이 국립오페라단이 지난 16, 18, 2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들려주었던 ‘로엔그린’의 이야기다.

국립오페라단의 ‘로엔그린’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이 더욱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음악과 무대와 연출이 모두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우선 가수들의 연주가 돋보였다. 로엔그린 역을 맡은 김석철과 엘자 역의 서선영은 긴 시간을 변함없는 성량과 음질로 노래하는 경이로운 기량을 보여 주었다. 배역의 정서를 세밀하게 드러내는 표현력도 놀라웠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최근 내가 경험한 오페라 오케스트라 중 최고의 것이었다. 금관악기·현악기·목관악기 사이의 균형이 훌륭했다. 가수가 노래 부르는 부분과 노래 부르지 않는 부분 사이의 다이내믹 차이가 절묘했다. 코리안 심포니와 지휘자 필립 오갱의 공이었다.
바그너의 낭만주의 오페라 ‘로엔그린’. 이번에 무대 배경을 중세에서 현대로 옮겼다. [사진 국립오페라단]

바그너의 낭만주의 오페라 ‘로엔그린’. 이번에 무대 배경을 중세에서 현대로 옮겼다. [사진 국립오페라단]

1막과 2막의 몇몇 부분에서 템포가 잘 맞지 않았다고 해서 합창을 폄하한다면 그건 너무 가혹하다. 이날 공연에서 합창은 노래 외에도 무대의 일부분으로, 소품으로, 심지어는 배경으로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과중한 역할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그 소리의 질과 음악적 표현을 칭찬해야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단순하지만 효율적으로 운용된 무대장치, 최소화됐지만 상징적인 소품과 사람들, 극의 문제의식을 저 옛날이 아닌 오늘의 문제로 제시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의상, 그리고 단순한 변화만으로도 감정의 고저를 드러내는 조명까지, 시각적 요소도 이야기에 몰입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뛰어난 음악과 무대가 어우러진 국립오페라단의 연주는 이야기에 몰입하게 했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그 이야기의 의미를 되풀이해 생각하게 했다.

연출(카를로스 바그너)은 주인공의 세세한 감정 변화조차도 아주 단순하게 반복되는 행동으로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그리고 리하르트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금기를 어기는 어리석은 인간의 욕망”이 아니라 “당연히 물어야 할 것을 묻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권력”에 관한 이야기로 읽은 것은 바로 그 연출자였다. 이 해석은 원래 바그너의 대본이나 음악의 결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슬프지만, 평화롭고 조화로운 바그너의 세계에서 안주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당연히 충돌이 생기고 다소간 어색한 부분이 생겼다. 그러나 거스른 결이 만든 파장은,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내 맘속에 울렸다. 편치 않았다.

정 경 영
한양대 교수·음악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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