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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나들이 손짓하는 스타들

온라인 중앙일보 2016.11.26 00:01
목소리 재능기부부터 게스트 큐레이터까지 다채롭게 변주된 아트테이너의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문화예술계는 예술품 경매·전시회로 젊은 층을 끌어들이는 등 그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소더비의 게스트 큐레이터 된 빅뱅의 탑. 고키타 토무의 ‘이혼’(2008) 앞을 걸어가고 있다. [사진 소더비·이안아트컨설팅]

소더비의 게스트 큐레이터 된 빅뱅의 탑. 고키타 토무의 ‘이혼’(2008) 앞을 걸어가고 있다. [사진 소더비·이안아트컨설팅]

지난 9월 19일 ‘소더비X#TTTOP’ 한국 기자간담회 현장. 소더비의 핵심 인사들과 함께 자리한 빅뱅 탑은 긴장한 듯 물을 연거푸 마셨다. 이번 경매를 위해 탑은 소장품을 내놓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작품 중 “갖고 싶은, 탐나는, 집에 걸어두고 싶은” 것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골랐다고 말했다. 그가 게스트 큐레이터(guest curator)로서 선택한 작품들은 지난 10월 3일 홍콩에서 경매에 부쳐졌다. 게스트 큐레이터는 아트테이너(아트+엔터테이너)의 가장 진화된 형태다. 최근 들어 아트테이너의 행보가 다채롭게 변주되고 있다.

소더비와 탑의 조합은 예상대로 성공적이었다. 탑이 선정한 작품 28점 중 25점이 경매 첫날인 3일 팔려나갔다. 1740만 달러(약 195억원)의 판매고도 올렸다. 소더비X#TTTOP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장 미쉘 바스키아의 <보병대(Infantry)>다. 무려 598만4925달러(약 67억1890만원)에 낙찰됐다. 백남준의 <팻 보이(Fat Boy)>(8위), 김환기의 <비상(Flight)>(9위)도 이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 10위 안에 들었다. 작품이 고가에 팔린 김환기 화백은 탑의 외할아버지 서근배 소설가의 외삼촌이라서 더욱 의미가 깊다.
게스트 큐레이터가 된 빅뱅의 탑
미국의 CNN은 이날 경매 성공에 대해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인기가 높은 빅뱅과 탑에 힘입은 결과”라며 “젊은 층에게 예술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고 보도했다. 매체는“아시아의 젊은 컬렉터들이 무엇을 수집하기 시작했는가를 반영하고 대변한다”는 테라세 유키 소더비 아시아 현대미술 담당 스페셜리스트의 분석을 함께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의 젊은 컬렉터는) 문화나 학파를 나눠 작품을 수집하지 않고, 단지 심미적으로 그들에게 호소력 있는 것을 소장한다.” 실제로 탑의 경매에서 낙찰된 28점 중 10점은 탑과 인연이 있는 아시아 수집가가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소더비에 따르면 이번 특별경매는 40대 미만 참가자가 처음으로 40%에 육박했다.

경매 수익 중 일부는 아시아문화위원회(Asian Cultural Council)에 기부된다. 아시아 신진작가들을 후원하고 싶다는 탑의 뜻에 따라서다. 현지언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화권을 공략한 소더비의 보다 영리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SCMP가 ‘보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소더비가 경쟁사인 크리스티보다 중국 시장 진출에 더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두 회사(소더비·크리스티)는 세계 미술품 경매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경매업계의 양대산맥이다. 올해 상반기 소더비의 아시아 지역 매출은 4억6150만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2%가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크리스티는 11% 감소세를 보였다. 세계적 미술매체 아트넷(Artnet)는 “소더비가 판 경매품 80% 이상이 예상가격을 훌쩍 넘었다”라며 “이는 아시아 소장가들의 구매력을 증명한다”고 전했다.

‘아시아 프린스’라는 수식어로 유명한 한류 스타 장근석도 최근 미술관 나들이가 잦아졌다. 빛과 음악이 어우러진 영상으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소개하는 미디어 아트 전시회. 올해 1월 〈반 고흐 인사이드 : 빛과 음악의 축제〉전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전시회에 장근석이 홍보대사로 나섰다.

지난해 초 탈세 논란 이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는 “평소 좋아했던 고흐의 작품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소개해 미술 전시의 문턱을 낮추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미술관은 큰 결심을 하고 가야 하는데, 이번 전시는 미술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도 반 고흐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며 “나 또한 대중을 상대로 종합예술을 펼치고,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는 예술인 중 한 사람으로서, 고흐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대중도 이런 반 고흐의 삶을 이해하는 자리가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리의 ‘TV에 나오지 않는, 바퀴 달린 혁명’ 앞에 선 지드래곤. 지드래곤이 작곡한 음악과 작가가 만든 사운드가 조명과 어우러지고 카메라는 무대에 선 관객을 실시간으로 비춘다. [전호성 객원기자·서울시립미술관]

방&리의 ‘TV에 나오지 않는, 바퀴 달린 혁명’ 앞에 선 지드래곤. 지드래곤이 작곡한 음악과 작가가 만든 사운드가 조명과 어우러지고 카메라는 무대에 선 관객을 실시간으로 비춘다. [전호성 객원기자·서울시립미술관]


한류 스타 장근석도 미술관 나들이
노골적인 스타 마케팅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스타를 매개로 미술과 대중의 소통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높은 장근석의 인기에 힘입어 해외 팬들은 자체적으로 전시를 알리는 홍보까지 하고 있다. 베트남의 K-팝·K-드라마 전문매체 디오데오는 “미술관 나들이를 손짓하는 장근석"이라며 베트남어로 현지팬들을 위해 고흐 미술관 전시회를 소개했다. 장근석이 고흐의 명화를 집에 걸어둔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갤러리 카페를 찾는 손님도 부쩍 늘었다. 장근석의 팬들은 트위터·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장근석이 #헤이리마을 #갤러리카페 #헤이리스 에서 구입한 명화”라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을 알리고 있다.

장근석의 바통은 배우 박서준이 이어받았다. 지난 6월 반 고흐 인사이드를 주최·제작하는 세중· 미디어앤아트는 “국내에서 호평 받은 자국의 문화기술 콘텐츠가 해외 시장에서도 통할지 그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 전세계 관광객이 즐겨 찾는 제주도에서 투어 전시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중화권에서 인기있는 한류스타 박서준과 함께 한국의 새로운 한류 콘텐츠를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박서준을 반 고흐 제주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고 밝혔다. 제주도 전시에서는 반 고흐의 작품뿐만 아니라 반 고흐 특유의 강렬한 화풍으로 탈바꿈시키는 ‘인터랙티브 포토’로 박서준을 직접 그린 듯한 이색적인 이미지 등도 관람할 수 있다.

박서준이 지난해 주연으로 참여한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는 지난 여름 중국 최대 동영상 사이트 르티비(Letv)에서 단독 방영돼 조회수 1억2000만 뷰, 시청자 평점 9.2를 기록했다. 박서준의 중국 공식 웨이보 팔로워 수도 2주 연속 5만 명 이상씩 늘고 있다. 9월 19일에는 직접 ‘반 고흐 인사이드 제주’ 전시장을 찾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게재했다. 전시장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관람하고 체험하는 모습이 포착돼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박서준이 홍보대사로 임명되면서 “전시가 열리는 제주도를 방문한 국내외 관광객들이 문화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셈이다. 자신을 박서준의 팬이라고 밝힌 한 인스타그래머는 “#반고흐인사이드 난 언제 가보나 제주도 울배우 홍보중엔 가봐야 할텐데 #홍보대사 #박서준 #언제나박서준 #보고싶다요”라는 글을 남겼다.

 
스타가 전시 홍보 대사 맡는 사례도 늘어
스타가 전시의 홍보 대사를 맡거나 오디오 가이드에 참여하는 등 그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배우 이제훈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전시회의 오디오 가이드에 목소리를 재능기부했다. 오디오 가이드란 전시회장에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작가에 대해 설명해 주는 안내 서비스다. 이제훈은 “평소 미술 전시회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고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역시 기대했던 전시회였기에 오디오 가이드로 전시회에 함께 할 수 있어 기쁜 마음”이라고 참여 소감을 전했다. 그는 고흐·고갱·세잔·르누아르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에 얽힌 이야기와 ‘풍경화’를 통해 인상주의를 소개하는 전시 구성과 차분한 목소리가 어울린다는 호평을 받았다. ‘JO기자의 일상리포트’이라는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는 한 블로거는 “도록은 비싸서 못샀지만 ‘조금만 뒤로 물러서서 감상해 보시겠어요?’라고 이제훈씨가 권유하신 그림은 샀다”라며 앙리 에드몽 크로스의 <바다 너머의 석양(Sunset over the Sea)> 작품이 그려진 엽서를 소개했다.

현대미술작가들과 손잡고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한 스타도 있다. 일명 ‘지드래곤 전시회’, <피스마이너스원: 무대를 넘어서(PEACEMINUSONE: Beyond the Stage)>는 지난해 6월 9일부터 8월 2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다. 지드래곤 자신이 직접 뮤즈(muse)가 돼 국내·외 현대미술가들과 협업한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였다. 예술가들의 스펙트럼도 꽤 넓었다. 손동현 작가는 지드래곤이 좋아하거나 영감을 받은 힙합 아티스트들을 소재로 문자도를 그려 전시했다. ‘사진 조각가’ 권오상은 지드래곤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수집해 이어 붙여 성 미카엘 대천사 모습의 동상을 만들기도 했다.

지드래곤은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을 매개로 사람들이 예술을 친숙하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드래곤은 JTBC <뉴스룸>에서 “상업화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밝히기도 했다. 상업화 논란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 아트테이너들의 행보는 더 분주해질 전망이다.

임채연 기자 yamfler@joongang.co.kr·양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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