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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12월호] "백 번 양보한다 해도 당대표까지만 했어야 할 인물"

온라인 중앙일보 2016.11.26 00:01
2004년 김무성·유승민과 함께 ‘원조 친박’, 2007년 대선 때 MB 지지선언과 함께 탈박(脫朴)
“다음 대통령은 새누리당에서 나오면 안돼… 야당은 국민이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후보 내야”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은 ‘원조 친박’이었으나 탈박 후 박근혜 대통령의 비판자로 돌아섰다. 전 전 의원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당대표 시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중앙포토]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은 ‘원조 친박’이었으나 탈박 후 박근혜 대통령의 비판자로 돌아섰다. 전 전 의원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당대표 시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중앙포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민심이반이 가속화되고 있다. 하야(下野)·탄핵(彈劾) 같은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가운데 ‘원조 친박’에서 ‘반박’의 선봉으로 돌아섰던 전여옥(57)

전여옥 전 의원이 옆에서 지켜본 ‘박근혜 대표’

전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전 전 의원의 어록이 회자(膾炙)될 정도다. 그는 17대 대선을 8개월 앞둔 2007년 4월 “박근혜 대표 주변 사람들은 무슨 종교집단 같다”며 박근혜 대통령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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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옥 전 의원은 2012년 19대 총선 이후 ‘조용히’ 살아왔다. 낙선과 함께 정계를 떠나 범인(凡人)으로 돌아갔다. 4년여 동안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서다. 박근혜 대표 시절이던 2004~2006년 2년 동안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전 전 의원은 당시 김무성 사무총장, 유승민 대표 비서실장과 함께 ‘원조 친박’으로 불렸다. 그랬던 그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되는 후보라고 생각한다”며 박근혜 후보의 곁을 떠났다. 전 전 의원은 2012년 초에는 <i전여옥-전여옥의 私, 생활을 말하다>를 출간해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월간중앙>이 11월 7일 오후 서울 목동의 한 커피숍에서 한때 ‘박근혜의 입’으로 불리던 전 전 의원과 만났다. 그는 “최근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지만 대부분 거절했다. 이미 정계를 떠난 사람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 좀 부담스럽다”며 말문을 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예견됐던 일”
19대 총선 낙선 이후 소식이 뜸했는데.
“아들한테 집중하면서, ‘육아’에 전념했다. 정치를 했던 8, 9년 동안 아이가 상처를 많이 입었다. 새벽 5시에 나가서 경로당·산악회 등 지역구 행사에 참석하고 집에 들어오면 밤 12시였다. ‘저녁 먹었니?’, ‘영어학원 다녀왔니?’ 정도 묻는 게 전부였다. 지역구 어느 단체의 이사장
님이 감기 걸리신 것은 챙기면서도 정작 내 아이는 돌보지 못했다. 지난 4년간 공부도 많이 하고 여행도 많이 다녔다. 뜻 깊은 시간들이었다. 국회에 있을 때 미처 보지 못했던 교육문제·청년문제 같은 것을 현장에서 많이 보고 느꼈다.”

전 전 의원은 최근에 <흙수저 연금술>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머리말에서 “아들 꿀단지에게 늘 미안한 엄마다. 그러나 사랑만은 다른 엄마들 못지않다는 것을 꼭 알게 해주고 싶었다. 나의 넘치는 사랑으로 아들의 꿀단지를 채워주고 싶었다. 많은 것을 잘 견뎌준 꿀단지를 위
해 이 책을 썼다. 엄마의 고마움을 담아 이 책을 나의 아들 꿀단지에게 준다”고 적었다.

현역의원일 때와 비교해보면 얼굴의 인상도 좀 달라진 것 같다.
“다들 그런 얘기를 한다. 이런 난국(亂局)에 좀 죄송한 말이지만 여의도를 떠난 뒤로 마음이 참 편해졌다. 국회의원 할 때는 운전기사가 딸린 차를 타고 편하게 다녔지만 힘든 부분도 많았다. 한마디로 자유가 너무 없었다.”
2004년 박근혜 대표가 주요 당직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승민 비서실장, 박근혜 대표, 김무성 사무총장, 전여옥 대변인.

2004년 박근혜 대표가 주요 당직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승민 비서실장, 박근혜 대표, 김무성 사무총장, 전여옥 대변인.

‘최순실 게이트’로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이런 일을 예견했었나?
“예견됐던 일이다. 옆에서 지켜본 박근혜 대표는 지성 부족, 순발력 부족, 어휘력 부족, 콘텐트 부족이었다. 비선(秘線)의 결정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황당한 일들이 많았다. 백 번 양보해서 당대표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대통령이 돼선 안 될 인물이다. 일본의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총리,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지성이 빈약한 편이긴 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정상적인 사고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인물이다. 모든 것이 비정상이다.”

박근혜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최순실 씨의 존재를 몰랐나?
“김무성 전 대표도 ‘최순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사람들이 말하지 않았던 것은 박근혜 대표가 미래권력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 인기와 지지를 거부할 수 없었기에 오히려 이용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결국 ‘문고리 3인방’도 머슴에 불과했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그 점은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이 되기 전과 후로 나눠야 할 것 같다. (고 이춘상 씨를 포함한) 당시 4인방은 말수가 적었다. 안봉근 수행비서만 의원들과 접촉했다. 가끔 의원들이 ‘대표에게 얘기 좀 전해달라’고 하면 안 비서는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라고 했다. 철저하게 정윤회·최순실 씨의 심부름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MB정권 후반기에 들어서 박근혜 의원이 ‘여의도 대통령’이 되면서 그들도 완전히 변했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의원들이 4인방을 접대하기에 바빴다.김용갑 전 의원이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 뒤로는 그들의 전화 받는 목소리부터 달라졌다. 거만이 흐르더라. 아마도 3인방은 자신들과 최순실 씨,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를 움직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 (실제로) 그렇게 했다. 대통령 되기 전에 3인방이 종범(從犯)이었다면 지금은 공범(共犯)이다.”
 
“모든 것이 비정상… 자기최면에 걸려 있어”
당대표를 거쳐 대통령에까지 오른 인물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나?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권력의지 때문이라고 본다. 박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콘텐트가 없다’는 말과 ‘수첩공주’라는 말이다. 그걸 보면 자신의 역량에 대해 스스로도 아는 것 같긴 하다. 박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최태민 씨가 박 대통령에게 세 번이나 편지를 보내서 꿈에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나는 아시아의 지도자가 될 너를 위해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더 이상 슬퍼하지 마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희생했다는 말을 들었다면 펑펑 우는 것이 정상 아닌가? 그런데 아시아의 지도자라는 말에 감격하는 모습을 보며 머릿속이 하얘졌다. 또 2002년에 김정일을 만났을 때 그가 ‘2세끼리 잘해보자’고 했다며 뿌듯해 했다. 상설면회소 설치를 제외하고 김정일이 (우리측 요구를) 들어준 것이 없는데도 자기 부탁을 다 들어줬다며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자기최면에 걸려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들의 탐욕도 ‘최순실 국정농단’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배지를 달기 위해 국민을 속인 것이다. 야당에도 엄청난 정보가 있었을 텐데 역시 입을 다물었다. 국민의 ‘감성적 투표’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 어린이 의약품 지원 활동을 해온 ‘유럽-코리아재단’ 이사 자격으로 2002년 5월 방북했다. 그는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 소개했다.

 

최순실 씨가 고친 것이다. 최순실이니, 고영태니, 차은택이니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단어가 ‘통일대박’ 아닌가? 한마디로 B급, C급들이 밥 먹으면서 한 얘기가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다. 혼(魂)이 비정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 위원장과의 만남은 5월 13일 백화원 영빈관 회의실에서 속기사 1명이 배석한 가운데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박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대화 내용을 2004년 외신 인터뷰에서도 밝혔다. 박 대통령이 “(7·4 공동성명을 발표한 남북 지도자들의) 2세로서 평화정착에 노력하자”고 했더니 김 위원장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최태민 씨와 박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들은 적이 있나?
“그렇다. 국가정보원 관계자도 과거 안전기획부에서 만든 자료를 근거로 확인해줬다. 타자기로 쳐서 만든 그 자료는 두꺼운 책만 했다. 그게 여의도에 돌아다녔고, 웬만한 사람들은 다 읽어봤을 것이다. 박근혜 대표가 한 일간지와 인터뷰할 때 기자가 최태민과 관련해 ‘그렇게 전횡을 저지르고 부정을 했는데…’라고 물었다. 그러자 박 대표의 목에 파란 힘줄이 솟으면서 부들부들 떨렸다. 기자가 당황했다. 박 대표가 ‘저한테 고맙게 해주신 분’이라고 하더라. 그때 나는 ‘아, 이건 보통이 아니구나.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2년 동안 ‘박근혜의 입’ 역할을 하면서 특별한 경험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 다 말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점은 가까이서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원들과도 원천적으로 접촉과 대화가 없었다. 오죽하면 박근혜 대표가 물을 잘 마신다고 해서 (국회 본청 내) 정수기 앞에서 기다리는 의원들이 있었을까?”
 
“최순실·정윤회 오만불손하기 그지없더라”
최순실·정윤회 씨의 존재를 언제부터 알았나?
“95년 대구방송(TBC)에서 토크쇼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TBC에서) 당시 야인이지만 인기가 높았던 박 대통령을 섭외했다. 그런데 한눈에 봐도 ‘상궁’ 느낌의 여자 2명이 박대통령을 따라다녔다. 그 여성들은 TBC 사장과 박 대통령, MC인 내가 함께한 식사자리에까지 끼어들었다. 담당 PD도 들어올 수 없었던 자리였다. 한 명은 최순실 씨였고 또 한 명은 그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목소리가 엄청나게 크고 당당했다. 교양 없고 오만불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작가에게 ‘저 사람 누구냐’고 물었더니 ‘최순실이잖아요’라고 했다. 2000년쯤 한 여성지에 인터뷰 기사를 쓰기 위해 박근혜 의원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만났다. 시커멓게 생긴 한 남자가 인상을 팍 쓴 채 앉아 있었다. 여비서들도 오만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섭외를 도와준 후배 기자가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그런데 ‘선배, 그래도 정윤회가 OK 해
서 인터뷰가 성사된 거예요. 정윤회를 통하지 않고는 박 의원과 전화통화도 못해요. 이번에도 세 번이나 전화해서 겨우 OK 받은 거라니까요’라고 하더라.”
2004년 3월 16일 한나라당에 입당한 전여옥 씨가 홍사덕(맨 왼쪽) 원내대표, 최병렬 대표(왼쪽에서 셋째), 이상득 사무총장(맨 오른쪽)의 환영을 받고 있다.

2004년 3월 16일 한나라당에 입당한 전여옥 씨가 홍사덕(맨 왼쪽) 원내대표, 최병렬 대표(왼쪽에서 셋째), 이상득 사무총장(맨 오른쪽)의 환영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요즘 인터넷에 ‘전여옥 어록’이 회자되고 있다. 지금 상황과 대비해보면 신기할 정도로 맞아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이던) 2012년 1월의 일이다. 지역구민들과 보좌관들이 19대 총선 공천을 걱정해줬다. 일부는 ‘박 위원장은 큰 정치를 할 사람인데 반대편을 노골적으로 자르겠느냐’고 위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박근혜를 모르느냐’며 이미 주변정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6일 동안 잠도 자지 않은 채 의원회관에서 <i전여옥-전여옥의 私, 생활을 말하다>를 미친 듯이 썼다. 박 대통령이 열 받아서라도 최태민 씨와 관계를 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정말 박 대통령이 잘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출간 이후 온갖 비난에 시달린 것은 물론이고 신변에 위협까지 당했다.”

박근혜 진영에서 이명박 진영으로 옮긴 뒤 배신자 논란에 시달렸는데.
“각오했던 일이기에 잘 견딜 수 있었다. 이준석(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같은 젊은 친구들이 홍위병(紅衛兵)으로 나서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진실을 알고 진실을 얘기했다. 어떻게든지 견뎌야 했고 견디려고 노력했다. 정치적으로 공과(功過)는 있었겠지만 돈 문제는 깔끔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 이전에 박 후보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본질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길을 가다 보면 누군가 다가와서 ‘복 많이 받으실 거예요’라는 말을 걸어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최태민 씨는 이단종교에서 하는 것과 똑같이 했다. ‘집을 나와라. 형제들과 인연을 끊어라. 재산을 바쳐라. 나만 믿어라.’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성장이 정체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외국에 나가면 한국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한국은 고속성장을 이뤘다. 급하게 벽돌을 쌓아 올리다 보니 빈틈이 많았는데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벽돌 하나를 빼버린 셈이다.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권력은 유리그릇이다. 잘못하면 깨지고 국민이 다친다.”

 
“설마 김기춘 실장이 ‘통일대박’이라고 했겠나”
최순실 씨 혼자서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일이 가능했을까?
“매우 간단하다. 최순실 씨가 고친 것이다. 최순실이니, 고영태니, 차은택이니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단어가 ‘통일 대박’ 아닌가? ‘대박나세요’라는 말은 개업집에서나 하는 덕담이다. 한마디로 B급, C급들이 밥 먹으면서 한 얘기가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다. 혼(魂)이 비정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통일에 관해 명언(名言)이 나왔다면 최순실 씨 배후에 누군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해볼 수 있다. 설마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통일 대박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을까?”
 
전여옥 전 의원은 여의도를 떠나면서 금배지를 뗐지만 그 대신에 자유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의도에서 나온 뒤 만나는 사람마다 ‘참 편해 보인다’고 하더라”고 했다.

전여옥 전 의원은 여의도를 떠나면서 금배지를 뗐지만 그 대신에 자유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의도에서 나온 뒤 만나는 사람마다 ‘참 편해 보인다’고 하더라”고 했다.

3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전 전 의원의 아들이 사회적 배려 대상자 자격으로 자사고에 입학한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됐었다.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얼마 안 돼 그 기사가 나왔다. 왜 이 시기에 이 기사가 나올까 의아했다. 나는 결혼을 늦게 했기에 아이도 늦게 얻었다. 더구나 정치를 하다 보니 (진학 등과 관련한)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고교 진학을 앞둔 중3때였다. 담임선생님이 ‘국어·영어·수학 성적이 좋으니 사배자 자격으로 진학시켜보자’고 제안했다. ‘혹시 특혜라 고 하면 어떡하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조건이 되기 때문에 특혜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더구나 그 자사고는 정원의 40%가량이 미달이었다. 그래서 입학시켰는데 아이가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아이와 상의 끝에 자퇴를 결정했다.

검정고시를 통해 고교 졸업장을 받았고, 지금은 학력인정 정비학교에서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우고 있다. 얼마 전 아이가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서울대는 못 갔더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교는 갔을 것’이라며 웃었다.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모든 외신 기사의 첫 문장은 ‘dictator’s daughter(독재자의 딸)’로 시작한다. 그런데 국민이 독재자의 딸을 선거권력으로 세탁해준 것 아닌가. 독재자의 딸이 이제는 ‘Shaman’s friend(무당의 친구)’가 됐다. 독재자의 딸이며 무당의 친구가 이 나라의 얼굴이 될 수 있겠는가?”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사태 수습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의지가 워낙 남다르기 때문이다. 또 수습이 아니라 대수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여당은 죽어야 산다. 사즉생(死卽生)인 것이다. 다음 대통령은 새누리당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은 국민 볼 면목이 없다. 야당은 4년 전 대선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왜 문재인 후보를 찍을 수 없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야당의 생각에 동의하기 어려운 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는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국민이 믿을 수 있는,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후보를 내야 한다. 지난 4월 총선을 봐라. 새누리당에서 ‘진박 감별사’ 어쩌고 하지 않았나? 국민이 더 이상의 모멸은 참지 못했기에 그런 결과(여소야대)가 나왔던 것이다. 국민 스스로가 이 상황을 넘어가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의정활동 가운데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동의대 사태 때 흙수저 경찰과 전투경찰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 감금했던 학생들은 민주화 세력이 됐고, 감금당한 경찰들은 반민주 세력이 됐다. 경찰들은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했다. 국회의원이라면 밝힐 것은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일로 인해 국회에서 폭행까지 당했지만 지금도 보람으로 생각한다.”
전여옥 의원이 2007년 7월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 뒤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전여옥 의원이 2007년 7월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 뒤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89년 부산 동의대 시위진압 과정에서 숨진 경찰관과 전투경찰 7명에 대해 1인당 1억여 원의 정부 특별보상금이 2013년 지급됐다. 시위 학생들은 2004년 민주화운동가로 인정받아 보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폭력시위 현장에서 법질서를 지키려다 희생된 경찰의 유가족들은 그로부터 9년이 더 지난 보상금을 받았다. 보상금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한나라당 전여옥·이인기 전 의원 등이 발의한 ‘동의대 사건 등 희생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전 전 의원은 2009년 2월 27일 국회 본청 앞에서 법률개정 추진에 항의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한 여성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날 낮 12시30분께 전 의원은 본청 1층에서 출입구로 향하던 중 부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공동대표 이모 씨 등 여성 5~6명으로부터 머리채를 잡히고 얼굴(눈)을 맞았다.
 
나라 망신, 젊은 세대가 다시 겪지 않게 해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을 어떻게 평가하나?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을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의 일이다. 기획팀에서 박 후보를 영국의 수상이었던 마거릿 대처 이미지로 띄우자고 건의했다. 그런데 박 후보는 몹시 기분 나빠했다.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라고 하더라. 2010년 12월 한나라당 모 중진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박 대표는 자신을 대통령(후보)이 아닌 세습군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1차 대국민담화(10월 25일)를 보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예상은 했지만 저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저렇게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것이 있구나 했다. 2차 대국민담화(11월 4일)에서는 자신을 세습군주로 여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자회견도 없이, 기자들에게 질문조차 받지 않고 돌아서는 모습을 보면서 창피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리 서툴러도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줄 정도의 자질은 있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기자회견 횟수는 총 158회, 연평균 20회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10회(연평균 26회)였다. 기자들이 지치고 지겨워할 때까지 질문을 받는다. 박 대통령은 고작 5회(연평균 1.25회)다. 질문도 거의 받지 않는다.
2009년 2월 국회에서 테러를 당한 뒤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는 전여옥 의원. [중앙포토]

2009년 2월 국회에서 테러를 당한 뒤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는 전여옥 의원. [중앙포토]

방송기자, 정치인, 작가 등 여러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여의도를 떠난 뒤 4년 동안 엄청난 변화 속에서 큰 성장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치인으로 살았던 삶보다 큰 의미와 만족을 느꼈다. 사실 인터뷰도 책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거의 하지 않았다. 얼마 전 모 일간지에 기고를 했던 것은 과거에 그 신문에서 내 원고를 담당했던 분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2년 전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도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 특파원에게 인터뷰 요청이 몰렸지만 모두 거절했다. 한국인으로서 그런 인터뷰에 차마 응할 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보수층을, 지지자를 배신했다. 나라 망신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냉철하게 (이 사태를) 봐야 한다. 과거에 박근혜 대표를 수행해서 미국 등 외국에 나가면 모든 외신 기사의 첫 문장이 ‘dictator’s daughter(독재자의 딸)’로 시작했다. 모욕적이다. 그런데 국민이 독재자의 딸을 선거권력으로 세탁해 준 것 아닌가. 그러면 잘했어야 했다. 독재자의 딸이 이제는 ‘Shaman’s friend(무당의 친구)’가 됐다. 독재자의 딸이며 무당의 친구가 이 나라의 얼굴이 될 수 있겠나? 어느 누가 그런 사람과 얘기하고 만나주겠나. 다들 웃을 것 아닌가. 우리는 다른 나라가 상상할 수도 없는 전쟁도 겪었고, 베트남전쟁에도 참가했다. 피를 흘리며 민주화 투쟁도 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너무 마음 아파하고 상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
리나라가 몇 단계 내려갔지만 다시 점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끄러운 일이 젊은세대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글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정리 김준석 인턴기자 사진 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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