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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오디세이 2016 참가자 릴레이 기고 <15> 연해주에서 한민족의 미래를 열자

중앙일보 2016.11.25 01:00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평화 오디세이가 돌아본 연해주는 한민족의 역사와 뗄 수 없는 곳이다. 1863년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이주한 이래 한인 이주가 계속 늘어갔고, 일제강점기에는 토지를 빼앗긴 농민이 대거 이주했다. 겨울에 두만강이 얼면 지척의 거리일 뿐 아니라 지형·토질·식생 등이 우리나라 중남부 지역과 흡사해 이주가 더욱 빠르게 늘어났다. 이들은 ‘지신허’ ‘연추’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한인 마을을 형성해 살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신한촌’을 세웠다.

애국지사의 망명과 이주가 줄을 이은 연해주는 조직적인 항일운동의 거점이 됐다. 1908년 최재형·이범윤·이위종 등은 연추에서 ‘동의회’를 결성했고, 이듬해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12명의 동지는 왼손 무명지를 끊어 조국 광복에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했다. 이 맹세는 안 의사에 의해 1910년 봄 뤼순(旅順) 감옥에서 지켜졌다. 이범진·이준·이상설·이위종-잊을 수 없는 헤이그 밀사사건의 주인공들이다. 이범진은 1911년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자금으로 내놓은 후 조국의 절망적 상황에 저항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죽어서라도 조국에 가고팠던 이상설의 유해는 동해로 흐르는 스위픈강에 뿌려졌다.

이어 의병부대 ‘13도 의군’과 독립군 양성을 위한 ‘권업회’가 창설되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광복군정부’가 수립됐다. 1919년 연해주에 최초의 임시정부인 ‘대한국민회의’가 세워지고, 그해 상해임시정부와 통합됐다. 3·1운동을 계기로 연해주 한인들의 독립운동이 요원의 불길같이 확산되자 이를 크게 겁낸 일제는 1920년 봄 연해주 한인 학살에 나서 살인과 방화를 자행했다. 신한촌에서만 300명 이상이 죽었고, 항일운동의 대부 최재형도 순국했다.
블라디보스토크 한적한 곳에 위치한 신한촌 이주기념비.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블라디보스토크 한적한 곳에 위치한 신한촌 이주기념비.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슬픈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스탈린은 연해주의 한인을 강제 이주시켰다. 일본과 내통할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였다. 총 17만여 명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실려 연해주에서 6000㎞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향했다. 굶주림과 공포 속에 열차가 도착한 곳은 반(半)사막 지대인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인근 지역이었다. 이주 직후 1만2000명이 사망할 만큼 삶이 처참했지만 생명력은 강인했다. 척박한 땅에 버려진 이들은 소비에트 최고의 모범집단을 일궈내면서 살아남았고, 소련 해체 직후인 93년 고려인 명예회복 법안이 채택돼 연해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현재 연해주의 고려인 5만여 명 중 3만여 명이 그들이다.

지금 겪고 있는 세계 경제의 어려움은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무엇보다 2008년 이후의 경제위기는 1929년 대공황보다 훨씬 충격이 크고 깊다. 대공황은 과잉 설비와 수요 부족이 문제여서 거시정책 등에 힘입어 1940년대에 어느 정도 호전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본격적인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2008년 경제위기는 본질이 다르다. 70년대 중반부터 누적돼 온 버블과 이에 따른 가계·기업·정부를 망라한 과잉부채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 문제는 고통이 따르는 구조조정 외에는 뾰족한 해법이 없을 뿐 아니라 벌어서 빚을 갚아야 하니 시간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70년대에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정부 역할 축소와 시장 기능 확대를 기치로 성장과 세계 교역 확대에 크게 기여했으나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는 위기를 촉발시키고 균형과 형평에도 실패했다. 신자유주의는 결국 세계 경제를 위험 속에 몰아넣었고,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 그러나 새로운 경제 질서는 아직 방향조차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 개별 국가 차원을 뛰어넘어 문제 해결의 장을 열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바로 연해주다. 한반도에서 번영과 평화공존을 추구해야 할 남한과 북한, 극동 개발을 침체된 경제의 돌파구로 삼고 있는 러시아, 태평양 진출 거점을 갈구하는 중국, 대륙으로의 전초기지에 목마른 일본, 환태평양 경제협력에서 빠질 수 없는 미국이 지역 공동협력을 마련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가치도 크다. 가까운 미래에 북극항로의 거점이 되면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 거리를 수에즈 운하보다 40% 단축한다. 또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비롯해 한반도·만주·몽골·중국을 연결하는 철도 네트워크의 완성점이다. 이와 함께 만주대륙의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 러시아의 가스자원 통로와 항만물류 거점 등이 어우러지는 광활한 지역공동협력의 전초기지이자 미래 인류문명의 신 실크로드라 할 수 있다.

연해주 일원에서 다국 간 협력을 기반으로 생산·물류·도시 등 미래를 위한 거대한 투자가 이루어져 기존 사고를 뛰어넘는 새로운 성장 에너지가 창출된다면 이곳은 전쟁 없는 세계 경제 발전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 석 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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