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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광장의 희망, 의회의 책임

중앙일보 2016.11.24 21:07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오늘의 조국 현실은 근대 공화주의를 열었던 인류 선각들의 ‘비통한 낙관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이 만든 현실은 비통하기 그지없으나 광장이 뿜어내는 함성은 조국의 미래를 낙관하게 만든다.

광장이 열어준 국가 대개혁 기회
광장의 희망은 의회의 책임으로
촛불 이후의 미래를 제시해야
그렇지 않으면 광장은
대통령 징치한 뒤 의회 혼낼 것


 대한민국은 지금 국법 집행을 거부하는 대통령의 유례없는 농성전·진지전으로 인해 국민 대 대통령, 헌법·국법질서 대 대통령이라는 이중 대치 상황을 맞고 있다. 전자가 존재 가능한 정치적 대결이라면 후자는 헌법과 국법의 최종 수호자가 법치와 민주공화정 자체에 저항하는 예외 상황이다. 국법의 최고 표상이 국법 적용 절차를 거부하는 자기모순 국면이다.

 그러나 오늘의 핵심 문제는 혼돈의 현실 자체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과연 이 현실을 순조롭게 넘어설 수 있는 지혜와 역량을 갖고 있는가이다. 모든 문제는 감당 못할 자들에게는 (넘지 못하는 장벽이기에) 고난이지만, 능히 감당하는 자들에게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단련이기에) 축복이다. 이 난관을 평화롭게 뛰어넘는 역량을 세계에 증명함으로써 오늘의 시련을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축복으로 바꾸자. 책임은 대통령과 의회다.

   먼저 대통령이다. 두 번의 100만 촛불, 100만 시위 동안 대통령의 진실 고백과 참회의 육성은 없었다. 외려 역공과 반격을 가하고 있다. 실정 이상의 충격이다. 일반 국민은 물론 자신의 최고 지지계층과 지역에서조차 압도적 다수가 하야와 탄핵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이 객관적 민의다. 그의 통치 행위는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 ‘중대한 위법 행위’ 또는 ‘중대범죄’를 구성하는 선서 위배, 헌법 위반, 뇌물, 반역, 권력 남용, 협박, 의무 해태, 준법 거부 중 반역을 제외한 전 부분에 해당될 정도로 위중하다,
 대통령의 과제는 분명하다. 국민 탄핵 상태에서 임기를 마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라를 위해 더 무슨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는가? 부친과 자신의 명예 회복은 가능할까? 더 많은 진실과 추함이 드러나고 더 강한 법률 집행 과정을 통해 더욱 심한 명예 실추와 국가 갈등, 국정 혼란과 국격 추락만 기다리고 있다. 한 사람의 징벌 문제로 인한 국정 공백으로 나라가 계속 나락으로 빠져들어도 좋은가? 진실 고백과 참회, 국정 권한 이양, 조기 사임의 순서를 밟은 뒤 사후의 명예 회복을 꾀하는 편이 나라와 자신을 위해 훨씬 낫다. 인간의 공적 생명은 육체적 생명보다 훨씬 길며, 사후엔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탄핵 절차 요구는 옳은 길인가? 국민 탄핵 상태에서 의회와 헌법재판소는 ‘국민 합의’ 수준의 ‘퇴진’ 민의와 반대되는 반공화적·반민주적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대통령은 그것을 기대하는가? 대통령·집행부의 반헌법적 국정 파괴를 입법부와 사법부가 용인해 줄 때 국가의 누가 국민에게 준법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기관들이 대통령의 반헌법적·반법치적 통치 행위를 추인하는 결정을 내릴 때 삼권 분립의 민주적 근거는 도전받을 것이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던 정당은 훨씬 더 심각한 탄핵 사유가 존재하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탄핵을 요구해야 법리와 이치에 맞다.

 의회의 과제는 명확하다. 대통령(집행부)의 통치 행위가 정당성 자체를 도전받아 이른바 ‘정상정치’가 ‘헌법정치’로 상승될 때 국가 정치는 시민화·의회화·사법화의 세 갈래 길로 들어선다. 광장의 폭발은 전형적인 시민화였다. 그러나 광장정치는 제도정치로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의회화는 시민화를 반영해 대통령에 대한 연합재·교정재·대체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입법부와 집행부(대통령)로 나뉜 국민 주권의 이원정당성 때문이다.

 무엇보다 의회, 특히 야당은 총리 추천, 장관 임면, 내각 통할을 제안한 대통령의 권한 이양을 적극 활용해 의회 주도의 과도내각·연립내각·비상내각을 구성해야 했다. 정상정치라면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불가능한, 광장으로 인한 헌법정치의 비상국면이 제공한 권력 분산과 연립정치 실현의 기회였다. 민의의 대세를 볼 때 국정 주도권과 주요 정책의 중지·수정·향방은 분명했다. ‘사실상의 퇴진’ 국면을 놓친 실기였다. 둘째는 검찰과 특검을 통한 징치와 교정 역할이었다. 최후는 사법화로서 탄핵 추진을 통한 대체재 역할이었다. 그러나 사법화는 승패가 명쾌한 반면 길고 위험하며 실익이 적다.

 정상정치에서 헌법정치로 이행하면 시민화·의회화·사법화의 삼면 압박으로 대통령 임기 보장은 의미를 상실한다. 소위 ‘서류상 대통령’이다. 민주주의 역사를 볼 때 선진국일수록 시민화와 의회화·연합화로, 후진국일수록 시민화와 대체화·사법화로 달려 나간다. 광장이 열어 준 국가 대개혁의 절호의 기회를 엄중 직시해 광장의 희망은 의회의 책임으로 연결돼야 한다. 촛불 이후의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광장은 대통령을 징치한 뒤 의회를 혼낼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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