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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내년 4월 조기 대선의 악몽

중앙일보 2016.11.24 21:05 종합 34면 지면보기
전영기 논설위원

전영기 논설위원

겪어야 할 일은 어떻게든 겪을 수밖에 없다. 요행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망가뜨린 한국이 속절없이 추락한다. 중간중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닌데 죄다 놓쳐 버렸다. 이렇게 되자 헌법을 갖춘 나라라면 회피하고 싶은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첫째, 조기 대선 가능성이다. 지금 우리 정치는 낭떠러지 근처에 와 있는 폭포수 같다. 쏜살같은 속도로 대선을 향해 빨려 들어가고 있다. 문재인·안철수 캠프 내부에선 내년 3~4월 대선을 대비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선거를 당겨 돌발변수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반기문 없이 문재인·안철수 결전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로 치러져

 두 캠프가 가장 신경 쓰는 주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은 내년 1월 말은 돼야 대선 무대에 오를 수 있다. 따라서 3~4월 대선 일정은 반기문의 출마 의욕을 꺾는다. 그의 선거 역량에 타격을 가할 것이다. 조기 대선은 출마자들에게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정책적인 공부와 체계적 준비, 대중적 노출을 허용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에겐 대통령감을 따지고 관찰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다양한 선택권을 박탈한다. 조기 대선에선 좋은 국가 지도자가 뽑히기 어렵다. 이렇게 뽑힌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반대세력으로부터 끊임없이 정당성 문제에 도전을 받는다. 나라에 안정은 없다.

 둘째로 피하고 싶은 일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등장이다. 야당들은 무엇에 홀린 듯이 허겁지겁 탄핵 이슈에 골몰하고 있다. 그전 단계에서 밟아야 했을 국회 추천 총리는 사라졌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자기에게 유리한 사람을 선출하려고 신경전을 벌이다 물 건너가 버렸다. 대권 욕심은 많은데 협상 능력이 적어서 생긴 일이다. 이 때문에 12월 초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는 순간 박 대통령의 모든 권한은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넘어가게 된다.

 내년 1월께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인용하면 황 대통령 권한대행은 그로부터 60일 이내에 대선 관리자로서 선거 내각을 지휘하게 된다(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에서 탄핵안이 넘어오면 자기 임기인 내년 1월 안에 처리할 의욕을 갖고 있다고 한다). 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은 그때 과연 황교안의 국가 의사결정권과 선거관리권을 군말 없이 인정해 줄까. 황교안은 정치적 기반이 없는 데다 뼛속까지 박근혜 사람이다. 평생 검찰·관료생활만 해 왔다. 그런 그가 국내외 험난한 도전과 대선 정국을 헤쳐 나가긴 쉽지 않다. 야당은 황교안마저 탄핵의 시험대에 올릴지 모른다. 국가가 회생 불능 환자로 누워 버리면 어쩌지, 황교안이 운전대를 잡았을 때 나라가 서 버리면 어쩌지.

 셋째 걱정은 박근혜 권력의 무질서한 소멸이다. 이게 제일 무섭다. 박 대통령이 지금 처한 상태는 작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년보다 나쁘다. 최재경 민정수석과 김현웅 법무부 장관의 항명 사퇴는 외부 공격이 아니라 내부 저항이었다. 박 대통령은 갑절의 충격을 받고 깊숙이 무너져 내렸다. 권력은 나아갈 때 엄중하고 물러설 때 질서를 갖춰야 한다. 권력의 경착륙은 나라를 동강 내곤 한다. 국민이 난폭한 혼란과 충돌에 휩싸일 수 있다. 질서 없는 권력의 소멸은 재앙이다. 가족이 없는 권력자가 권좌에서 내려오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심리 변화나 돌발행동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겪을 만한 일들이라고 반드시 다 일어나는 건 아니다. 인간의 계획적 행동으로 예방할 수 있다. 사전에 정성을 다하고 노력을 쏟아부으면 나쁜 일을 미리 제거할 수 있다. 다른 방법도 있다. 겪어야 할 일들이 벌어졌다고 해도 비관에 안 젖으면 된다. ‘그럴 줄 알았다. 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를 물고 악착같이 맞서면서 상황을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이럴 땐 인간의 결연한 의지가 빛을 발한다. 계획적 행동이든 결연한 의지든 우리의 가슴에 새겨 둘 게 있다. 박근혜의 실패가 한국의 실패가 되게 해선 안 된다는 것. 박근혜의 실패와 한국의 실패 사이에 방화벽을 쳐야 한다는 것. 어떻게 만든 대한민국인데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는 것.  

전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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