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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확산 ‘제2 메르스 사태’ 될라

중앙일보 2016.11.24 17:33
충남 천안시 동면 동산리의 한 오리농장. 1만여 마리 오리를 기르는 이 농장 주인 A씨는 24일 오전 떼로 죽은 오리를 발견했다. A씨는 “23일 오리 10마리가 폐사해 설마 했는데 이날 아침에 90여 마리가 더 죽어 신고했다”고 말했다. 신고를 받은 충남가축위생연구소에서 죽은 오리를 간이 검사했더니 조류인플루엔자(AI) 양성 반응이 나왔다. 천안과 인접한 충북 진천에서도 이날 AI 발생 사실이 확인됐다. 이날까지 충북에서만 살처분한 닭·오리는 54만1500마리에 이른다. 천안 풍세면 봉강천변 철새 분변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처음 검출된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AI가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농민 피해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김재수 장관 주재로 가축방역심의회를 열어 전국 가금류 관련 시설과 차량을 일제 소독하기로 결정했다. 농축산검역본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공동 점검반을 구성해 소독 실태를 점검한 다음 결과에 따라 전국 규모의 ‘일시 이동 중지(스탠드 스틸)’ 명령을 내릴 계획이다.

지자체 움직임도 분주하다. 전원권 충북도 농정국장은 “음성·진천은 가금류 농장이 밀집해 있어 방역대 예찰지역을 기존 10㎞에서 15㎞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내년 4월까지 농가 오리 입식 승인을 50%로 줄이는 ‘겨울철 종량제’도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남도는 방역 강화 대책에 따라 모든 축산차량을 대상으로 관내 28곳에 설치된 거점소독시설에서 소독 후 소득필증을 휴대하도록 했다. 소독필증을 휴대하지 않은 차량은 관내 도축장에 진입할 수 없다. 특히 이번 AI가 인체 감염 우려가 있는 H5N6형으로 확인됨에 따라 모든 시·군에서 인체감염대책반을 운영 중이다.

이미 제주·경남·경북을 뺀 나머지 권역은 AI에 뚫렸다. 충북대 모인필(수의학) 교수는 “현재 번지고 있는 H5N6형은 중국에서 인체 감염자 사망 사례가 나올 만큼 이전에 국내에서 발생했던 AI 유형에 비해 전염성이 강하고 폐사율도 높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을 휩쓰는 H5N6 유형 바이러스는 중국·베트남·라오스·홍콩 정도에서만 발생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 판단만 남아있을 뿐 이 명단에 한국이 추가되는 일은 시간 문제다. 메르스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방역 후진국으로서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카톨릭대 의대 백순영(미생물학) 교수는 “똑같이 철새가 날아들지만 중국·베트남과 달리 유럽·일본 같은 선진국에서 최근 AI 대규모 확산 사례가 나오지 않는 것은 철새 이동 경로 추적, 예찰(미리 관찰), 전수 검사에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발생 후에야 뒤늦게 소독, 살처분에 돈을 쏟아붓는 현재 한국의 방역체계가 문제란 주장이다.

문제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가축 질병에 취약한 밀집 사육▶정부·지자체 재정·인력 미비▶부족한 정부 지원에 희미해진 농가 신고·방역 의식^국경을 오가는 동물감염병에 대한 범정부 연구 부족 등을 지적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늑장 대응에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10월 28일 첫 검출 이후 정부의 조치가 처음 나온 건 11월 11일이다. 그마저도 ‘철새 주의’ 단계 경보를 발령하고 예찰 지역을 지정하는 수준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은 “대학에 시료 검사를 의뢰하고 최종 결과를 확인받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농식품부는 해명했지만 2주간을 허비했다는 말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가축방역 위기경보 상향, 국무총리실 주관의 범정부 대책 회의 등 정부 대응은 번번이 ‘뒷북 조치’에 그쳤다. 또 백순영 교수는 “‘익혀 먹으면 괜찮다’는 식의 당국 대처는 너무 안이하다”며 “호흡기 바이러스 특성상 인체 감염 위험이 크지 않지만 중국 사례도 있는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인체 감염병에 준하는 차단 방역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천안·진천·무안·=조현숙·신진호·최종권·김호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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