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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초에 부딪힌 아베 외교…트럼프는 TPP 탈퇴, 푸틴은 강공

중앙일보 2016.11.24 17:06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미국이 빠지면 의미가 없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이곳을 순방 중이던 아베 신조(安倍晋三)일본 총리는 내외신 회견에서 미국이 TPP에 머물 것을 촉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에 대한 메시지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 바로 직후 영상 메시지에서 TPP가 “미국에 재난이 될 우려가 있다”며 탈퇴를 분명히 했다. 그것도 내년 1월의 취임 첫날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트럼프를 만난 아베로선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아베는 트럼프를 만난 직후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추켜세운 터였다. 아베가 미국 대선 전에 TPP 국내 비준 절차에 들어가고 페루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참가국과의 단합에 나선 것은 트럼프에 대한 압박용이었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미·일 주도의 TPP는 체결 12개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6개국 이상이 비준하면 발효된다. 하지만 미국의 GDP 비중은 60%이나 되는 만큼 트럼프 계획대로라면 물 건너간 셈이다. TPP를 통해 중국 주도 무역 질서를 견제하려던 아베의 구상도 동시에 흔들리게 됐다. 아베노믹스(아베 경제정책)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아베는 TPP를 통한 규제 완화와 농업 개방을 성장 전략의 축으로 삼아왔다. TPP가 발효하면 약 13조6000억엔(142조3471억원)의 GDP 증대와 79만5000명의 고용이 이뤄질 것이라고 일본 정부는 추산한 바 있다. 야당에선 아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제 1야당인 민진당의 야마노이 가즈노리(山井和則) 국회대책위원장은 ”TPP 발효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며 ”아베 총리는 이렇게 된 상황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공을 들여온 쿠릴 4개섬(북방영토) 영유권 협상도 암초에 부딪히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강경 입장을 고수하면서다. 아베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협력으로 4개섬 반환을 끌어낸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푸틴은 20일 아베와 만나 영토 반환 대신 4개섬에서의 양국간 공동경제활동 방안을 제안했다. 별도의 회견에선 ”쿠릴 4개섬은 러시아 주권이 있는 영토“라고 못박았다. 러시아는 구나시리와 에토로후의 2개섬에 이동식 지대함 미사일 시스템까지 배치했다. 푸틴의 이런 입장은 트럼프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의 뜻을 밝혀온 만큼 일본을 통해 서방의 제재망을 헝클어뜨릴 필요가 줄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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