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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국민이 맡긴 권력을 대통령이 독점해서야

중앙일보 2016.11.24 01:00 종합 32면 지면보기
채인택 논설위원

채인택
논설위원

분노의 계절이다. 대한민국은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대통령 중심제의 극단적인 폐해를 목격하고 있다. 대통령이 ‘고장’ 나니 온 나라가 혼란을 넘어 숫제 마비 상태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이다. 대통령 중심제는 이론상 강력한 리더십으로 정국이 안정되고 국가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분단국가에서 안보를 유지하고 경제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공무원이 주권자인 국민이 아닌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의사에 따라 움직일 우려도 크다. 이제 보니 공무원은 물론 여당 정치인까지 대통령만 바라본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야당·시민세력과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추구할 필요성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불통, 일방통행, 국회 무시 등은 제도에서 비롯한 고질병으로 풀이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시대를 통해 대통령제의 폐해를 지긋지긋하게 겪었다. 선출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통령은 사실상 전제군주나 다름없이 국민 위에 군림했다. 이런 기억이 있는데도 1987년 개헌 합의 당시 민주화 지도자들까지 나서서 이 제도를 존속시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그 자리에 오르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할 것이라는 착각과 욕심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87년 헌법’ 이후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선출된 대통령들도 대부분 쓰라린 기억을 남겼다.

일부에선 ‘사람이 문제지, 제도가 무슨 문제냐’라는 주장도 한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제도는 인간의 욕망을 이성적 수준으로 누르고 통제하는 장치다. 제도가 제대로 붙잡지 않으면 누가 대통령을 맡아도 비대한 권력이 사달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역사로 이미 드러났다. 지금의 상황은 우리에게 대통령제와 작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일깨운다. 하야든 탄핵이든 대통령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개헌과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불행한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또 있다. 선거에서 이긴 개인이나 정당이 정부 운영권을 독점하는 ‘승자 독식’ 제도다. 선거에서 진 정당은 정부 운영에 직접 참여할 수 없다. 이런 제도 아래에선 겨우 50% 정도의 국민을 대표하는 세력이 정부를 독점 운영하게 된다.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가 정부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고 사회적·정치적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민주주의에선 승자 독식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포기하고 일정 수준의 득표를 한 모든 정당을 정부 운영에 참여시키는 모범적인 민주국가도 있다. 바로 스위스다. 스위스는 모든 주요 정치 행위자(정당)가 모두 정부 운영에 참여하는 독특한 분권형 정치제도를 운영한다. 7명의 각료가 합의제로 정부를 운영하는데 5개 정당이 2:2:1:1:1로 자리를 나눈다. 선거에서 1등을 하든 5등을 하든 모든 정당에 국정 운영권을 나눠주니 정부는 유권자의 80% 이상을 대표한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각료 중 한 명이 1년씩 윤번제로 맡아 의전 정도나 담당한다. 이러면 정부 효율이 떨어진다고? 인구 840만 명의 스위스는 세계 2위의 부자나라로 번영하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15년 국제통화기금(IMF) 통계 기준으로 8만603달러에 이른다.

정치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이 없으면 국방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히틀러도 쳐들어오지 못했던 철옹성의 나라가 스위스 아닌가. 스위스는 대표적인 무장영세중립국이다. 어떤 동맹도 맺지 않고 전 국민이 총을 들고 자력으로 나라를 지킨다. 상당수 지역사무는 주민들이 모여 직접 민주주의로 처리한다. 결국 국가를 운영하는 것도, 국토를 지키는 것도,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도 권력자가 아니고 결국은 국민임을 보여주는 제도다. 왜 우리는 이런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는 말인가? 대통령 탄핵을 위해 야권 3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비박계가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 최고권력자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오직 국민의 뜻만 따르고 국민을 위하는 정치만 한다면 우리도 이런 정치를 충분히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대정신은 분권적 국가 개조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채 인 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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