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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사태 석 달…항로 못 찾는 현대상선

중앙일보 2016.11.24 01:00 경제 1면 지면보기
“현대상선이 세계 최대 해운동맹 2M(머스크·MSC)으로부터 ‘퇴짜(spurn)’를 맞았다.”

정부 ‘세계 5위’ 공언 불구 정상화 지지부진
한진해운 알짜 자산은 대한해운 품으로
글로벌 해운동맹 2M가입도 성과 안 보여

미국 유력 해운 전문지 JOC가 지난 18일(현지시간) 화주들에게 보낸 머스크의 설명문을 토대로 게재한 기사의 한 문장이다. 해운업은 몇몇 대형 회사가 동맹을 맺어 항로를 공유하기 때문에 동맹에 가입하지 못하면 해외 영업이 어려워진다. 현대상선과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즉각 “명백한 오보로 현재 최종 가입을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머스크는 보도 이후 “현대상선과 다른 방식의 협력 가능성도 살펴볼 수 있다”며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2M 가입이 절실한 한국 정부와 현대상선의 사정을 알고 주도권을 쥐려는 고도의 협상 전략인 듯하다”고 말했다.
이는 국내 1위 한진해운이 8월 말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국제사회에서 작아진 한국 해운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지난 7월 현대상선이 2M과 공동운항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때만 해도 산업은행은 “구속력 있는 가입합의서이기 때문에 사실상 가입에 성공한 걸로 봐도 된다”고 말했다.

해운업계에선 세계 1~2위 해운사인 머스크·MSC가 현대상선과 동맹을 맺으려는 이유 중엔 세계 7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을 견제할 목적도 있다고 봤다. 그러나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상황이 달라졌다. 유일 국적선사인 현대상선(세계 14위)의 해운동맹 가입 여부에 따라 한국 해운업의 운명이 달라질 형편이 됐다는 걸 해외 해운사가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성급한 한진해운 지원 중단 결정으로 국내 해운업이 공멸 위기에 처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상선을 세계 5위 선사로 키우겠다”는 정부와 채권단의 의지와는 달리 현대상선의 경영정상화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법원이 14일 실시한 한진해운의 미주·아시아 노선 매각 본입찰도 마찬가지다. 애초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인수하겠다”(8월 31일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고 천명했다. 그러나 막상 입찰에서는 SM(삼라마이다스)그룹 계열의 중소형 해운사인 대한해운이 현대상선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해 낙찰받았다.
금융권과 해운업계에선 책임지지 않으려는 채권단과 채권단 눈치를 보는 경영진이 책임을 떠밀면서 생긴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주인 없는 회사의 한계인 셈이다. 정부와 채권단의 ‘과욕 후유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현대상선의 조속한 회생이라는 성과를 내기 위해 충분히 여건을 검토하지 않은 채 2M 가입과 한진해운 자산 인수를 공언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는 6월 용선주·사채권자와의 채무재조정 협상 때도 감지됐다. 당시 채권단은 “7월 유상증자 때 채권을 주식으로 출자전환하기로 했다”며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그러나 “증자 후 바로 팔 수 있도록 일반공모를 해 달라”는 용선주·사채권자의 요구를 받아들인 사실이 7월 유상증자 공시 때 드러나 과도한 혜택 제공 논란에 휩싸였다. 채권단과 용선주·사채권자만 참여하는 사모 형태의 증자를 하면 보호예수 규정 적용을 받아 6개월간 주식을 팔 수 없다. 반면 공모를 하면 대주주인 채권단만 보호예수 제한을 받을 뿐 용선주·사채권자는 일반투자자로 분류돼 아무 때나 주식을 팔 수 있다.

현대상선이 정상화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한진해운의 빈자리는 외국선사가 빠르게 채우고 있다. 부산항만공사가 집계한 올해 10월 한 달간 부산항 컨테이너 환적화물(중간 항만에서 다른 선박으로 옮겨 싣는 화물) 처리량을 보면 전년 동월 대비로 한진해운은 54.6%, 현대상선은 10.9% 줄었다. 반면 2M의 처리량은 13.2%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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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국내 해운업계가 공멸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정부와 채권단이 획기적인 해운업 경쟁력 확보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준수 서강대 경영대 석좌교수는 “대형선박 일변도에서 고속·친환경 선박 운행으로 전략을 바꿔 해운업의 ‘비즈니스 클래스’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현대상선 경영진의 독립 경영을 보장하는 것이 경쟁력 확보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이태경·이승호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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