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페셜 칼럼D] 노벨상과 기업가 정신③ - 2006년 화학상, 로저 콘버그 -

중앙일보 2016.11.21 16:21
2006년 노벨 화학상은 유전자 즉 DNA 안에 들어있는 정보가 어떻게 RNA로 전달되는지를 밝힌 공로로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의 로저 콘버그에게 주어졌다. 1953년에 DNA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진 후 60년대에는 DNA를 주형으로 하여 어떻게 RNA가 만들어지며 정보가 전달되는지, 즉 ‘전사(轉寫)’ 과정이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박테리아와 같이 간단한 생명체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였다. 인간처럼 핵을 가진 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체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전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30여년의 추가 작업이 필요했다. 워낙 흥미롭고 중요한 분야였기 때문에 뛰어난 인재들이 경쟁적으로 연구했고, 흥미로운 결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콘버그가 단독으로 뽑힌 것이다. 그의 수상은 여러 차원에서 주목을 끌었다.

먼저 노벨상 제정 이후 6번째 부자(父子) 수상인 경우이다. 그의 아버지 아서 콘버그는 DNA 복제에 관련된 효소를 분리하여 195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사람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생화학계의 거장이었다. 12세이던 로저는 스톡홀름의 수상식에 참석했었다. 아버지는 DNA로, 아들인 로저는 RNA로 노벨상을 받으니 가히 ‘핵산 가족’이다. (핵산은 DNA와 RNA 같은 물질들의 화학적 명칭이다.)

로저는 아서 콘버그의 첫째 아들로서 하버드대학 화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교수로 있던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를 받았으며, ‘노벨상 공장’으로 잘 알려진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LMB에서 포닥을 했다. 당시 스승은 1982년 노벨상을 받은 아론 클루그였고, 연구 성격상 1962년 노벨상을 받은 프란시스 크릭과도 교류했다. 1978년 스탠포드 대학에 자리를 잡은 후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계속 그 위치를 유지하면서 살았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게 살아 온 것이니 굳이 표현하자면 과학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사람이다.

다음 관전 포인트는 결과를 발표한지 불과 5년 만인 2006년에 상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의 성과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2001년에 RNA 중합효소의 구조를 밝힌 것이 수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의 노벨상이 결과 발표 후 짧게는 10년, 길면 수십 년 후에나 주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보기 드문 초고속 수여였다.

2006년은 RNA의 해이기도 했다. 콘버그가 RNA 중합효소 구조를 밝혀 화학상을 받았는데, 생리의학상은 ‘RNA 간섭’ 현상을 발견한 크레이그 멜로와 앤드류 파이어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즉 노벨위원회가 생명 현상 조절에서 RNA의 중요성을 총체적으로 인정한 해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점은 로저 콘버그가 화학상을 받은 데 대해 일부 저명 화학자들이 “그게 왜 화학이냐?”라고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사실 1990년대 들어서 상당수 노벨 화학상이 생명과학을 화학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로저 콘버그 역시 화학과를 졸업하고, 화학물리 분야에서 박사를 받은 사람이지만 연구의 소재가 생명체였던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의 질시 어린 투정이었다.

콘버그는 순수 학술연구를 하는 사람이지만 실용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왔다. 그의 기업 활동은 놀라울 정도로 활발하다. 2008년에 코크리스탈 제약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것을 비롯해서 크로마덱스, 오프론, 쎄네틱 바이오사이언스, 옾탈리엑스, 프로탈릭스 바이오쎄라퓨틱, 패시픽바이오 사이언스, 옵코헬스, 테바 등 10개가 넘는 스타트업 혹은 중대형 기업들에서 이사나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것이다. 가히 기업가 정신의 과학자(entreprenurial scientist)인 셈이다. 이 회사들의 사업 영역은 의약, 식물세포 배양, 식품 혹은 의약품 소재, 염기서열 분석, 안(眼)질환 치료제 등으로 다양하다. 그의 동생 토마스에 따르면 “로저는 그의 학술연구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하면 최대한 넓은 범위에서 기업들과 협력해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들은 기초과학을 실세계와는 거리가 먼 분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대학에서는 실험 성과의 실용화 노력을 마치 외도(外道)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정부가 기초과학에 조건 없이 장기간 지원해야 나라의 과학이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초과학이 전적으로 국민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그들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으려면 과학이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뭔가도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뼛속까지 기초과학자이면서 기업 활동에 적극 참여한 콘버그의 삶은 우리 과학자들에게 현실 참여의 좋은 본보기를 제시한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